짜릿해, 늘 새로워...!
나는 도예수업을 매주 토요일 낮에 받고 있는데, 이번에는 지인 결혼식과 이후 일정들이 있어 토요일에 수업을 받기가 어려웠다. 수업을 한 주 미룰 수도 있긴 했지만 나는 당장이라도 물레를 돌리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하다 평일 연차를 쓰고 도예수업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쌓여있던 약속들을 차곡차곡 숙제 풀듯 해치우고, 그 사이중간중간 마음이 힘든 일도 있었지만 도예수업을 받을 생각만 하면 기운이 났다. 물론 평일에 연차를 쓴 것도 한몫했지만.
그렇게 다시 또 도예수업날이 왔다.
남들 다 출근하고 일할 때 느긋하게 일어나는 여유가 우선 좋았다. 기분 탓일까 오늘따라 유독 날씨도 포근하고 따뜻한 것 같아, 미세먼지가 조금 있는 듯했지만 상관없어, 나의 마음은 청정하기 그지없었다.
괜스레 예쁜 옷을 입고 싶었다.
좋아하는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고 그에 어울리는 청치마를 입었다. 정말 바보같이. 아무 생각도 없이.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여유롭게 공방까지 사뿐사뿐 걸어갔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방문을 열고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앞치마를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스티로폼박스를 가져와 저번 수업 때 깎지 못한 기물들을 꺼냈다.
선생님이 바로 해보시겠어요? 아니면 다시 설명해 드릴까요? 물어보셔서 다시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기물들을 만져보시곤 작게 중얼거리셨다.
'조금만 더 마르면 좋을 것 같은데... 우선 다시 시범 보여드릴게요.'
평일이라 주말 때보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 여유롭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평소보다 좀 더 세심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시고 보여주셔서 나도 더욱 집중하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굽깎기 시범이 끝나고 남아있는 다른 기물들을 만져보시던 선생님이 다시 한번 중얼거리셨다.
'음, 근데 조금 더 마른 다음에 하면 굽깎기가 더 잘 될 것 같긴 하거든요.'
'그러면, 물레를 먼저 조금 돌리고 나중에 굽깎기 하는 게 좋을까요?'
'네! 그게 좋겠어요.'
내가 먼저 꺼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오늘 물레 돌릴 생각이 없었다. 굽 깎는데 시간이 꽤 들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기도 했고, 사실 힘들지 않았어서. 그것만 하고 싶었는데... 생각지 못한 상황에 살짝 당황했고 사실 긴장되었다. 그 감각이 벌써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주 만에 돌리는 물레인데, 잘할 수 있을까...?
몸이 긴장에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도예수업 첫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굽깎기를 하기 위해 단출하게 준비했던 도구들에서 물레를 돌리기 위한 도구들로 점점 채워졌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심호흡을 하며 다스리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무언가 나를 방해했다.
바로 청치마.
물레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쩍벌상태가 되는데 빳빳한 청치마가 그걸 막은 것이다.
'응~ 못 벌릴게~'
망했다. 나는 정말 망했다. 어쩌자고 나는 청치마를 입고 온 것인가. 마음 같아선 정말 벗어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여자분들밖에 없는데 벗어버릴까란 생각을 정말로 3초 정도 하긴 했다.
근데 차마 체면이 있어 그러진 못하고, 다행히 앞치마가 굉장히 길게 떨어지는 타입이어서 치마를 최대한 위로 올리고 앞치마로 안 보이게 가렸다.
하지만, 최대한 올린다고 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자세가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다.
다리자세가 불편하니 다른 자세도 불편해졌다. 몸을 굽히는 정도가 불편했고 팔을 고정시키는 것도 뭔가 제대로 안 되고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물레를 돌렸다.
그리고 역시나 처참했다. 힘이 제대로 모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중심을 잡지 못한 소지는 나의 눈동자처럼 그렇게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보셨는지, 선생님이 다시금 오셔서 말씀하셨다.
'잘 안되세요? 중심 잡기 하는 거 다시 한번 봐드릴까요?'
구원의 목소리에 나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하려니 잘 안되네요. 그리고 오늘 제가 복장을 너무 잘못 입고 온 것 같아요...'
'아...'
약간의 탄식이 있긴 하셨지만 착하신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며 나를 격려해 주셨고 내가 하는 중심 잡기를 보며 손의 위치나 힘을 주는 부분에 대해 다시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선생님의 코칭에 여전히 자세는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점점 아까보다 중심이 잡혀가는 게 보였다.
그렇게 겨우 중심이 잡힌 소지를 성형하기 시작했다. 중심 잡기에서 헤매버리니 성형을 하는데도 이게 맞나 겁이 났다.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찌어찌하고 벽을 끌어올리는데 뭔가 어긋남이 느껴졌다.
이게 아닌데.라는 감각이 자꾸 손끝에 남았다.
선생님이 다시 한줄기 빛처럼 나에게 내려와 말을 걸어주셨다.
'잘하시고 계신데 지금 물레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벽면을 끌어올릴 때는 속도를 조금 줄여서 끌어올리는 속도랑 맞추는 게 중요해요. 안 그러면 힘분배가 제대로 안 돼서 벽이 울퉁불퉁해져요.'
다시 한번 시범 보여드릴까요? 하시길래 나는 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좀 구해주세요.
원데이클래스 때처럼 선생님은 옆에서 같이 잡아주시면서 손 감각을 일깨워주셨다. 울퉁불퉁 모난 부분들을 최대한 매끄럽게 잡아주셨다. 그렇게 떠나보낼뻔한 컵 하나가 무사회생되었다.
저번 수업 때 중요성을 아주 느꼈던 밑가새 사용법도 다시 한번 알려주셨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지, 보면 알겠는데 막상 내가 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다. 이것도 계속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흙자름줄로 좀 더 깔끔하게 자를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나는 그냥 흙자름줄을 팽팽하게 댕겨 잡고 쓱 밀었는데 그것보단 살짝 말듯이 줄을 넣어 잡아준 뒤 물레를 살살 돌려 안 쪽으로 당기 듯 잘라주는 게 더 깔끔하게 잘린다고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일깨워준 손 끝 감각에 두 번째 성형할 때부턴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
중심 잡기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안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3번의 작업이 끝났다.
아직 손에 익지 않긴 하지만 선생님이 알려준 밑가새 방법으로 기물을 떼어내니 전보다 더 깔끔하게 모양이 나오는 것 같았다.
물레를 더 돌리기엔 오늘 복장이 영 물레를 돌릴 복장도 아니었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을 것 같아서 자리를 정리한 후 굽깎기를 하기로 했다. 기물도 어느 정도 적당히 말라있었다.
저번에 첫 시도에서 대차게 망했기 때문에 왜인지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망해도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은 기물을 먼저 집어 들었다.
역시나. 대차게 망해버렸다. 사실 예상은 했었다. 왜냐하면 이 기물도 바닥을 얇게 떼어낸 것 같았으니까.
내가 깎을 수 있을 게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냥 연습용으로 뚫려도 좋으니 감을 익히자라는 마음으로 굽깎기를 하긴 했는데, 그래도 저렇게 깔끔하게 구멍이 나버리니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쓰라리긴 했다.
화분으로 써도 나쁘진 않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어림도 없지. 바로 반죽통행으로 보냈다.
계속 보면 마음만 아프니까.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고 두 번째 기물을 집어 들었다. 남은 2개의 기물들은 정말 마음에 들었기에 어떻게든 잘 깎아서 살리고 싶었다.
그 마음을 한껏 담아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이곳에는 나와 내 눈앞에 돌아가는 물레판밖에 없는 것처럼.
확실히 첫 시도가 대차게 망하긴 했지만 감각을 많이 일깨워준 것 같긴 했다. 걱정보다 만족스럽게 잘 깎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최대한 조심조심,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깎아내고 깎아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걱정과 우려 속에서 남은 2개의 기물을 모두 만족스럽게 깎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을 위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각인도장이다.
내가 만든 도자기라는 걸 표시해 두어야 공방에서도 헷갈리지 않고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 만들면 꼭 표시해 두라고 하셨었다. 그렇다고 이름을 적기엔 너무 직설적이고 예쁘지도 않으니까, 고민을 조금 했다. 그래, 어차피 나는 계속 도자기를 만들 거니까 이참에, 겸사겸사 나만의 로고를 만들어 아크릴도장으로 제작했다.
생각보다 로고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기뻤다. 나의 이니셜을 따서 내가 그린 도안으로 만든 로고.
앞으로 나의 도자기들에 남겨질 각인.
사실 저기서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채색욕심이 들었던 나는 과감하게 도전해 보았고, 그 결과는.
아주 처참하게 망해버렸다. 첫 번째 잔은 그래도 나쁘진 않았는데, 두 번째 저 그릇을 칠할 때 욕심을 내버렸고 어? 이게 아닌데, 아주 망할 것 같은데 느끼면서도 칠하다 보니 돌이킬 수가 없어졌다. 엉망이 된 그릇을 보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는 작은 잔은 채색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한 게 제일 예쁠 것 같았다.
채색하기 전 선생님이 유약종류가 다양하게 있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짙은 유약으로 잘못된 채색을 덮을 수 있는지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 부끄러우니까 다음에.
그렇게 마무리정리를 하고 다음 수업을 기약하며 선생님과 인사 후 공방을 나왔다.
오늘도 3시간을 꽉꽉 채웠고,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쉽지만은 않았다.
'감각, 응 사라질게~'
'중심, 응 안 잡힐게~'
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 감각이, 이 닿을 듯 말 듯 알쏭알쏭한 물레가, 도예가 익숙해지고 있다.
그저 오늘도 열심히 했고, 즐거웠어. 그래, 그거면 된 거지.
자연스럽게 나의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스며들듯 더욱 소중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바깥은 바람이 세게 불긴 했지만 햇빛은 여전히 포근하고 하늘은 푸르렀다. 그게 마치, 아주 달콤하고 행복한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오늘은 연차를 쓰면서 까지 온 도예수업날이었다.
가는 길에 계속 눈여겨보던 꽈배기집에서 찹쌀꽈배기랑 찹쌀팥도넛을 사 먹어봤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에 나는 아무 저항 없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이제는 잡히지 않아도, 풀리지 않아도 기분이 좋을 수 있어.
그렇게 그저 나는 계속해서 잡고 다듬고 깎을 뿐이다.
나에게 물레는 언제나 짜릿하고, 늘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