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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Apr 01. 2024

이 구역의 도친자는 나야.

도예에 미친 자.

지난날, 청치마에 호되게 당한 나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 날은 도예수업이 끝나고 청첩장모임이 있다 보니 너무 편하게 입고 가기가 그래서 그나마 불편하지 않은 통이 넓은 청바지와 검은 골지니트티를 입었다. 셔츠를 입고 싶었는데 물레를 하려면 팔을 걷어야 하다 보니 셔츠보단 티 종류가 편했다.



오늘은 가자마자 물레를 돌릴 생각이었다.

유튜브에 구독해 가며 챙겨보는 물레영상이 있는데 보다 보니 나도 만들어보고 싶은 모양이 점점 늘어났다.

매번 원형컵만 뽑아냈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원형컵을 완벽하게 뽑아내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저번의 처참함을 다시 회복시키고도 싶었다. 오늘은 정말 집중해서 물레를 돌려봐야지.


그렇게 결심을, 마음을 한껏 다져가며 공방문을 열었다.



선생님과 매타임 마주치는 회원님과 인사를 하고 재빠르게 환복을 하고 나와 먼저 스티로폼에 보관하고 있던 기물들을 확인했다. 어느 정도 말라있긴 했지만 조금 더 말라야 할 것 같았다. 


오히려 좋아.


좀 더 건조될 수 있게 꺼내둔 뒤, 바로 물레를 돌리기 위해 도구들을 세팅했다.



 매번 물레를 돌리려고 하면 긴장되었는데 오늘은 설렜다. 빨리 물레를 돌려보고 싶었다.



너무 들떴었나, 세팅이 끝나고 소지를 준비하는데 평소보다 조금 많이 소지를 떼어내게 되었다. 

아차, 하는데.


'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하셨네요?'



선생님의 말에 살짝 동공이 흔들렸다. 바로 들켜버렸어. 그래도 애써 덤덤한 척 웃어 보였다.


'아, 실수로... 근데 해볼게요...!'



그래, 언제까지 작은 양으로 할 수 없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해보자.


이글거리는 마음으로 눈앞의 소지를 바라봤다. 저, 결심했어요. 오늘 정말 마음먹었어요.


양손에 물을 묻혀 중심 잡기를 시작했다. 확실히 평소보다 양이 많아 흙이 더 단단하게 느껴져 힘이 더 많이 들어갔다. 그래도 선생님이 알려주신 삼각형 기법과 힘을 주는 포인트를 계속 생각하며 반복해서 중심 잡기를 했다. 중간중간 선생님이 코칭해주시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자세가 편하게 잡혀서 그런가 전보다 힘이 흙에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 중심이 점점 잡히는 게 보여요. 흙이 조금 풀어진 느낌이 나나요?'


'음... 네. 조금요...!'


확실히 반복할수록 소지가 점점 부드럽게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지난 시간 내가 만들어놓은 기물들을 보고 잠시 생각하신 뒤 말하셨다.


'음, 이번에는 조금 더 높게 뽑아보는 연습을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 내가 만든 기물들은 다 낮은 편이었다. 컵이라기보단 잔에 가까운 높이라고, 사실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한 번 높게 뽑아보자.



오늘은 겁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사실 공방문을 열기 전부터 살짝 은은하게 돌아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첫 시작부터 너무 힘을 줘버렸더니 첫 번째 기물은 생각보다 큰 사이즈로 만들어버렸다.

컵이라고 하기도, 그릇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사이즈.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굽깎기 할 때 얘를 먼저 깎으면 되니까!


그렇게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두 번째 기물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손 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아주 선명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흙이 움직이고 모양이 만들어지는 게 눈에 보이고 손에 느껴졌다.

이번엔 내가 원데이클래스 때 만들었던 머그잔처럼 만들고 싶어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올려보았다.


평소에 만들었던 것들보단 높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다음엔 더 높게 끌어올려봐야겠어.


하지만 2개를 만들었다 보니 남은 소지의 양이 적었다. 그래서 연습 삼아 접시를 만들어보았다. 어차피 남은 소지로 해보는 거니까 망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첫 시도, 꽤나 만족스럽게 나왔다.

접시는 내가 구독한 유튜버의 물레영상을 떠올리며 해보았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모양이 잡혀서 신기했다.


오늘 뭐야? 오랜만에 물레의 축복이 내려진 건가?


다만 마지막에 만든 접시는 모양은 괜찮았지만 남은 소지양이 부족했는데 내가 너무 깊게 파버려서 밑바닥이 너무 얇게 남겨졌다. 굽을 깎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닌 정말 흐물흐물 이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과감하게 반죽통에 버렸다.



빨리 다음 물레를 돌리고 싶었다. 쉬는 시간 없이 물레판 위를 한번 정리한 후 바로 아까 떼어내고 남은 소지를 가져와 바로 물레를 돌렸다.



아까보다 소지양이 적어서 중심 잡기도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물레가 돌면 돌수록 나도 더욱더 은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눈에 조금씩 광기가 서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높게 올려보자.

첫 시도처럼 너무 사이즈를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밑면을 피고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럽게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진짜 조금씩 야금야금 끌어올려보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여태까지 중 제일 높게 올라왔다.


이대로 컵으로 할까? 그러기엔 좀 높게 올라와서 약간 고민을 했다. 그러다 영상 속에서 보았던 모양을 잡아주는 걸 해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영상 속 손놀림을 떠올리며 물레의 회전속도와 흙의 감각에 집중하며 모양을 잡아보았다.


'어? 된다.'


정말 영상처럼 모양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그 과정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안돼. 참아. 우쭐하지 마.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모양이 나왔을 때 바로 작업을 멈췄다. 과유불급. 욕심은 금물이다.

괜히 더 도전했다가 돌이킬 수 없어질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기물을 떼어내니 하나 더 만들어볼 수 있을 정도의 소지가 남았다.


그래서 이번엔 아까 실패해 버린 접시를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 완성.

아까보다 많은 양의 소지여서 생각보다 크기가 커지긴 했는데 얼추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었다.

살짝 원형이 찌그러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여기서 더 찌그러진 모양으로 만드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일부러 연출한 것처럼.


고민하긴 했는데 그다음 작업인 굽깎기가 걱정되어서 그냥 두었다.


앞으로 물레 돌릴 날은 많으니까. 한 번에 다 할 필요는 없어.


우선은 오늘 만든 것만으로도 굉장히 뿌듯하고 또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즐거운 물레시간을 마치고 이제 드디어 굽깎기의 시간이었다.




여태 두 번의 굽깎기 날이 있었는데 매번 첫 시도는 실패했었다.

그리고 오늘도 왠지 그럴 거 같았다. 매번 한 번에 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단 말이지.

그래서 이번에도 연습용으로 할만한 기물을 먼저 손에 잡았다.



그리고 역시나 첫 시도는 망해버렸다. 깎으면서 바닥이 너무 얇아진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점점 아래로 푹 꺼지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못 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어느 정도 연습하다가 내가 뚫어버렸다.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다음부터가 사실 본격적이었어.



두 번째 굽깍기를 할 때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통통 두드려가며 소리를 들어가며 바닥을 깎고 옆을 깎아내려갔다. 중간중간 선생님이 오셔서 같이 소리를 들어봐 주고 어느 정도 더 깎으면 될지 알려주셔서 더욱 수월하게 깎을 수 있었다.



"진짜 잘 깎으셨는데요!'


선생님이 봐주시면서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수줍게 웃으며 구멍 뚫린 첫 시도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청 집중했어요. 첫 시도는 망해버렸거든요...'


'괜찮아요!  그럴 때도 있는 거죠, 그래도 이번 거는 정말 잘 깎으셨어요.'



맞아요, 그럴 때도 있는 거야, 매번 잘할 순 없는 거야. 선생님의 '괜찮아요'는 언제나 힘이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깎아 무사히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기물의 굽깎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큰 실수 없이 무사히 잘 깎아내려가는데 옆에 계시던 회원님한테 칭찬까지 들었었다.


'굽 진짜 잘 깎네요! 엄청 깔끔하고 예뻐요.'


'그런가요? 우아, 감사합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려는 걸 힘들게 내려 감췄다. 오늘 뭔가 계속 잘되는 거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방심해 버렸다.

8:45 그대는 하늘나라로. 날아가버린 마지막 기물.

그렇다... 거의 다 깎고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해 고정시켜 두던 흙반죽을 떼어내고 아랫부분을 깎고 있었는데 이때 물레속도를 너무 빠르게 하면 안 됐었는데 기분이 들뜬 나머지, 빨리 끝내고 싶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속도를 올리게 되었고 결국 원심력을 견디지 못한 기물이 물레판에서 벗어나 날아가버린 것이다.


회생이 불가할 정도로 자국이 나고 파여버렸다.


진짜, 정말, 엄청,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누구를 탓해. 나를 탓해야지.

여기까지 힘들게 온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것만큼 아픈 이별이 있었던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아이를 떠내 보내야 했다. 반죽통으로 던져야 했다.



결국 오늘 성공시킨 굽깎기는 단 하나였다.

이번 유일 성공작.


얘도 조금 아쉬웠던 게 다 깎고 각인도장 찍을 때 어디에 찍을까 고민하다가 굽에 한 번 찍어봤는데 내가 너무 세게 눌러서 굽이 조금 휘어졌었다. 깜짝 놀라서 다듬어보긴 했지만 그래도 살짝 뭉개진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앞으론 절대 굽에 찍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작업을 다 끝내고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작업한 기물들도 정리하는데 그런 나를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아직 못 가세요...!'



그 말에 못 박힌 듯 서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맨 처음 굽깎기를 끝냈던 기물들이었다.


'저번에 만드신 거 초벌까지 한 상태예요. 유약 바르기 전에 울퉁불퉁한 부분이나 거친 부분 확인하고 사포질 해주는 게 좋거든요. 무늬가 있는 게 괜찮으면 이대로 하셔도 되지만 좀 더 매끈하게 다듬고 싶으면 사포질 해주는 게 좋아요. 가구 만들 때도 니스칠하기 전에 사포질 하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흠집이 날 수 있으니 최대한 고운 사포로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추가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는데 여기서도 빠질 수 없는 물통과 스펀지이다.

광란의 사포질.

사포질을 다 끝내면 겉에 있는 이물질, 먼지를 닦아줘야 유약이 더 잘 스며들고 예쁘게 코팅된다고 했다.

유약을 바로 하는 거라면 저렇게 스펀지에 물을 묻혀 닦아내면 되는데 나처럼 며칠 뒤에 유약을 하는 경우는 그냥 수도를 틀어 물을 묻혀가며 스펀지로 닦아내도 괜찮다고 했다.


이거 하시고 가셔야 해요. 



나는 그렇게 선생님의 말에 붙잡여 그대로 자리에 앉아 열심히 사포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때는 굽깎기를 배운 첫날이기도 했고 완벽하게 제대로 깎은 것도 아니었어서 표면이 꽤 울퉁불퉁하긴 했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사포질을 했다. 한 개당 거의 10분씩 걸렸던 것 같다.



'진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죠?'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네, 진짜 손이 안 가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전에는, 몰랐을 때는 가구나 도자기나 핸드메이드는 왜 이렇게 비싸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이건... 이건 비쌀 수밖에 없어요... 아니, 비싸다고 할 수도 없어요.' 


내 말에 선생님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공감하셨다. 

이만큼 노력과 시간과 품을 들여 만들었는데 어떻게 저렴하게 팔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정말 내 자식 같은 걸. 손길이 안 간 곳이, 마음이 안 담긴 곳이 하나 없는걸. 



뭔가 더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광란의 사포질로 3개를 다 다듬고 나는 싱크대로 가서 수도를 틀어 물을 묻혀가며 닦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유약을 바를지 선택할 수 있었다. 샘플들이 몇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유약 이름을 기물 밑면에 적어주면 나중에 공방에서 시유를 해준다고 했다. 고심해서 마음에 드는 샘플들을 골라 그중 각각에 어울리는 유약으로 선택했다.



진짜 다했다. 마무리 정리까지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3시간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오늘 정말 오래 있었네요. 피곤하시겠어요.'



그러게요,라고 웃으며 답하긴 했지만 사실 마음 같아선 더 오래 있을 수 있었다. 아니, 있고 싶었다. 전 아직 더 물레를 돌리고 싶어요.

라는 나의 속마음을 차마 꺼낼 순 없었다.




그렇게 길지만 짧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늘어지는 발걸음으로 공방을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하면 할수록 재미있을까. 진짜 하루종일 공방에 살고 싶을 정도였다.



매일 물레를 돌리고 굽을 깎고 그렇게 기물을 만들고 만들고 만들어 가고 싶었다.

이 정도면 조금 미친 것도 같았다.



이 구역에 도친자는 나야.

라고 어딜 가도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지금 도예에 속절없이 빠졌고 점점 차오르는 광기에 은은하게 돌아있는 것 같다.

나는, 도예에 미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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