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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Apr 22. 2024

오래 보아야 예쁘다.

그것도 아주 아주 아주 오래.


금요일, 오랜만에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게까지 이야기하며 놀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잠에 빠졌다.



그런데 나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아주 초롱초롱 눈이 잘 떠졌다.


오늘 드디어 제대로 된 컵을 만들어볼 생각에 신났던 것 같다. 빨리 가서 잔뜩 만들어놓았던 기물들의 굽깎기를 하고 싶었다. 



아, 그전에 시간이 부족해 못했던 것들 먼저 해야겠다. 너무 말랐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기대와 설렘, 걱정을 안고 공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걸어가기에 날씨가 꽤나 더워졌다. 거의 초여름 날씨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겹겹이 걸쳤던 겉옷들은 한풀한풀 풀어헤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렇게 힘겹게 공방에 도착했다.

더위에 취약한 나에게 오늘의 날씨는 이미 나를 녹초로 만들기 충분했다. 벌써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안돼, 정신 차려.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래도 공방은 지하층에 있어 바깥과는 다르게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해진 흙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있는 이곳. 녹초가 되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깎을 기물들이 많았기 때문에 물레성형은 안 하고 바로 굽깎기 준비를 했다.

항상 스티로폼 박스를 보관하는 곳이 있는데, 선생님이 내 박스들을 꺼내 항상 내가 앉는 가운데 자리에 미리 놓아두셨다. 상자는 2박스나 있었다. 저번에 많이 만들긴 했구나. 

미리 꺼내놔 주시고 자리도 맡아주신 선생님의 배려에 살짝 감동받은 건 안 비밀.

바로 감사의 인사를 선생님께 드리고 자리에 앉아 시간이 부족해 미처 깎지 못했던 기물들 먼저 꺼내 들었다.



2주 전, 화병과 손잡이 없는 잔을 깎았을 때 미처 못 깎았던 기물이 2개가 있었다. 작은 항아리모양 기물과 살짝 애매한 모양의 그릇.



우선 살짝 애매한 모양의 그릇을 먼저 꺼냈다. 사실 물레성형했을 때 되는대로 만들었던 거라 모양이 마음에 들진 않았었다. 굽깎기를 하다가 망쳐도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아서 먼저 꺼내긴 했는데, 굽깎기를 만약 성공한다면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고민했었다. 그러다 내가 구독해서 보는 유튜브 영상 중 하나에 아이디어를 얻어 그렇게 모양을 내보기로 했다.



항상 첫 번째 굽깎기는 실패했어서 조마조마했는데, 기물이 적당히 잘 말라있어서 그런지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잘 깎여졌다.



뭐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처음으로 실패 없이 성공적으로 굽깎기를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단계를 진행해 볼 차례였다.

영상에서 봤던 것을 참고해서 헤라와 창칼을 이용해 무늬와 모양을 다듬어주었다.

꽃모양으로 다듬어보았다.

헤라를 이용해 테두리 부분을 선으로 나눠 표시한 후 창칼을 이용해 V자 모양으로 잘라내었다.

마무리는 언제나 그렇듯 물먹은 스펀지로 부드럽게 다듬어 매끄럽게 만들어주면 된다.

혹여나 망칠까 소심하게 잘라내긴 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그냥 원형으로 되어있을 때보다 훨씬 예쁜 것 같았다. 



'시도해 보길 잘했다.'



평소보다 시간을 많이 들인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시간을 오래 들이면 들일수록, 정성을 쏟으면 쏟을수록 도자기는 더욱 아름답게 태어난다.



아직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남은 기물을 깎고 컵을 만들 준비를 해야 했다.

남아있던 작은 항아리모양 기물을 들었다. 이건 남은 소지로 연습 삼아 만들어본 거였어서 크기가 매우 작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입구가 좁아서 그랬는지, 물레판에 고정이 잘 안 되었다.


떨어지지 말라고 흙반죽으로 크게 고정시켜 놓았는데도 돌리다 보면 자꾸 거기서 벗어나 튀어나왔다.



깎아보기도 전에 결국 모양이 망가져 반죽통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이럴 땐 빠르게 단념해야 한다.


이제 남은 것들은 컵을 만들기 위해 성형해 두었던 4개의 원통과 2개의 그릇이다.



그릇은 나중으로 미뤄놓고 드디어 컵을 깎을 차례였다.



'이제 컵 깎으실 거예요? 그럼 그전에 손잡이 만드는 거 알려드릴게요!'



컵을 만들 때는 굽을 깎기 전 손잡이를 미리 만들어놓고 나서 하는 게 좋다고 하셨다. 기물과 손잡이의 마름정도가 똑같아야 부착했을 때 금이 안 갈 확률이 높다고 했다. 만약 기물들이 꽤 말라있다면 비닐로 덮어 최대한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해주는 게 좋다. 손잡이의 경우 빠르게 건조시키고 싶으면 석고틀 위에 올려두면 된다. 석고가 수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그 위에 올려놓으면 더 빠르게 건조된다고 했다.

왜인지 아련한 반죽시간.

나무판과 나무틀(막대기), 나무 밀대, 창칼, 물통, 스펀지가 필요하다.

흙반죽을 어느 정도 떼어낸 후 나무판 위에 올려놓는다. 그 양옆으로 나무틀(막대기)을 두고 그 위를 나무밀대로 밀어준다. 나무틀의 두께로 반죽을 맞춰주는 과정인데, 한 방향으로 계속 밀기보다는 한번 밀고 뒤집어서 밀어주고 다시 뒤집어서 밀어주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나무판에 안 달라붙고 쉽게 떼어낼 수 있다.

반죽이 나무틀만큼의 두께가 되었으면 원하는 두께와 크기만큼 창칼로 잘라주면 된다. 정해진 크기는 없지만 참고용으로 선생님이 기본 사이즈로 잘라주셨다. 손잡이를 잘랐다면 양끝도 평평하게 맞춰 잘라준 다음 물먹은 스펀지로 손잡이 위를 감싸듯 잡아준 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모서리를 다듬듯 쓸어주면 된다.

이것도 뒤집어가며 모서리가 부드러워질 정도로 쓸어주어야 한다. 너무 힘이 세게 들어가면 삐뚤어져 모양이 망가지니 주의해 가며 쓸어주어야 한다. 물도 너무 많이 묻히면 반죽이 흐물 해지니 그것도 주의!

나는 원통을 4개 만들었기 때문에 손잡이도 우선 4개 만들었다. 다 쓸 수 있게 될지는 모르지만.

손잡이는 건조 ing-

손잡이가 더 수분이 많았기 때문에 빠른 건조를 위해 석고틀 위에 올려두었다.

이것도 이 상태로 방치해 두면 안 되고 틈틈이 건조상태를 확인해주어야 한다. 기물과 손잡이의 마름정도가 같을 수 있게 양쪽을 확인해 가며 조절해주어야 한다.


컵은 생각보다 더 손과 정성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손잡이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굽깎기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4개를 다 깎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남은 시간 안에 4개를 다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우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우선 눈앞에 있는 기물에 집중했다. 시간 생각하지 말고 하자. 

도자기는 시간을 쏟으면 쏟을수록 아름다워진다. 시간에 쫓겨 대충 마무리 지어버리면 그 결과가 그대로 나와버린다. 아니 오히려 더 안 좋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되도록 시간과 정성을 여유롭게 두고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중간중간 시계를 확인할 때마다 사라져 있는 시간 때문에 마음이 초조해지고 촉박해졌다.

괜찮다고, 급할 거 없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계속 깎고 깎고 깎았다.


그렇게 겨우 3개째 마무리하고 마지막 4개째로 돌입했을 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너무 마음을 놓아버렸나 보다. 물레판 위에 잘 고정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깎는 순간 물레판 위를 벗어나 튀어나가 버렸고 물레테두리에 부딪혀 버린 기물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양이 망가지고 말았다.



뭐, 어쩔 수 없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잘되었어. 어차피 촉박한 시간이었어.

이럴 때가 아니었다. 빨리 손잡이를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할 때였다. 



'선생님, 이제 손잡이 붙이는 거 알려주세요. 참고로 4개에서 3개가 되었답니다.'

마지막에 하다가 날아가버렸어요.


라고 덧붙여 설명드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경우 많죠. 해주셨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손잡이를 붙일 때는 마름의 정도가 거의 똑같은 기물과 손잡이로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창칼, 밑가새, 붓, 물통, 스펀지.

어느 정도 건조시킨 손잡이를 원하는 크기만큼 양끝을 잘라 길이를 맞춰준다. 기물에 살짝씩 대보면서 크기를 맞춰보면 좋다. 길이와 위치를 맞췄다면 손잡이 양끝을 창칼 반대편 끝에 달려있는 톱니모양 부분으로 스크래치를 내준다. 그리고 붓을 이용해 양 끝에 물을 발라 컵몸체에 붙일 위치를 잡아본다. 물기 때문에 컵몸체에도 약간 자국이 남는데 그 위를 창칼 끝 톱니모양 부분으로 똑같이 스크래치를 내준다. 그리고 붓을 이용해 그 위에 물을 발라준다. 그래야 접착력이 높아진다.

그리고 다서 손잡이와 컵 부분을 부착시키는데 이때도 주의할 점이 손잡이가 일자로 잘 붙었는지, 평평하게 기울지 않고 잘 붙었는지 확인해 가며 부착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밑가새를 이용해 손잡이와 컵의 이음 부분을 약간 튀어나온 흙반죽 부분을 이용해 문질러 이어준다. 금가보이는 부분이 사라지게 조심조심 꼼꼼하게 문질러 이어주었다면 흙반죽을 가늘게 밀어 뽑아내 이음줄을 만들어준다. 타이밍이 맞아 손잡이와 기물이 잘 부착되었다면 이 작업까지는 안 해도 되지만 한 번 더 부착 부분을 감싸서 흙으로 이어주는 작업을 해주는 것이 더욱 견고하게 손잡이를 부착시킬 수 있다.


붓을 이용해 다시 한번 부착 부분을 물로 발라준 후 얇게 뽑아낸 흙반죽을 감싸 밑가새를 이용해 손잡이와 기물 부분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문질러 펴준다.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면 손으로 문질러 다시 한번 매끄럽게 펴준 후 물먹은 스펀지로 자연스러워지게 다듬어주면 끝이다. 

선생님이 붙여주신 컵.

컵이 어려운 이유가 이렇게 잘 붙여도 손잡이가 갈라지거나 금이 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건조시키는 과정이 정말 중요해서 컵을 만들었을 때는 비닐로 덮어서 아주 천천히 수분이 날아가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손잡이 모양을 어느 정도 유지시켜 주기 위해서 흙반죽을 이용해 사진처럼 아래를 받쳐주어 고정시켜 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부분을 유의해가며 조심스럽게 하나씩 컵 손잡이를 붙여나갔다.

드디어 완성시킨 컵 삼총사.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미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3시간이 뭐야 온 지 거의 4시간은 되어간 것 같았다.



역대급으로 오랜 시간 공방에서 작업을 했다. 확실히 손목과 목, 등, 어깨가 콕콕 쑤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물레성형을 안 해서 뒷정리 시간이 짧았다는 거였다. 

제발 무사히 잘 말라줘.

과연 이 컵 중 몇 개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금이 가서 떨어진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그냥 잔을 계속 만들까? 꼭 손잡이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컵 손잡이 작업은 품과 정성,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그만큼 마음에 들고 예쁘고 정이 갔다. 시간과 정성, 노력은 비례하는 거 같았다.


도자기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들고,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쏟아내야 하는 거였다.

그럼에도 아차 하는 순간, 방심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지고 떠나보내야 하는 거였다.

돌아서서 다시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왜 이 부분을 놓쳤을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내내 어여뻤다.

오래 보면 볼수록 도자기는 점차 아름다워졌다. 그래서 계속계속 보고 싶었다.

아주 오래오래.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매만지고 다듬고 그렇게 눈이 부신 자태로 태어날 수 있게.




이번 작업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또 이렇게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아주 오래 볼 것이다.

아름답고 눈부시게 태어날 나의 도자기들을 위해.


이전 11화 위기는 또 다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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