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화 Apr 15. 2024

위기는 또 다른 기회.

오히려 좋아?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빨리 물레를 돌리고 싶어서.


저번 수업에 너무 아쉬운 점들이 많았어서 오늘 수업에서는 다시 한번 최대한 감각을 살려보고 싶었다.

원통 만드는 영상도 틈틈이 반복해서 보고 창칼로 기벽 잘라내는 방법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였나 평소보다 눈이 빨리 떠졌다. 잠이 다시 오지 않아서 그냥 일찍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도 날씨가 좋으니까 공방까지 걸어가야지, 걸어가면서 마음을 다잡아야지.



그렇게 또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공방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점심시간이어서 공방은 텅 비어있었다. 선생님도 잠시 자리를 비우신 것 같았다. 

뭔가 몰래 온 손님 같아서 괜스레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물레를 돌려야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도구세팅을 순식간에 끝내고 거의 나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편안한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긴 원통을 뽑아내기 위해 평소보다 소지양을 늘려서 했다. 소지양이 적으면 크게 할 수 없으니까, 중심 잡기가 힘들어질지라도 이제는 어느 정도 소지양을 늘려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왜 이렇게 긴 원통을 뽑아내려고 하냐면, 바로 컵의 손잡이를 만들고 붙이는 작업을 배우고 싶어서다.



저번에 선생님한테 손잡이 다는 거 알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면 컵의 모양을 갖출 수 있게 조금 긴 원통을 만들어보는 걸 먼저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컵의 몸체를 만들고 거기에 붙일 손잡이를 만들어보자고.



하지만 저번 수업 때는 그렇게 긴 원통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손잡이 만드는 작업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니 오늘은 기필코 컵의 몸체를 만들고 말리라.




집중해서 중심 잡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그런가 확실히 저번 수업 때보단 수월하게 작업이 되었다. 소지는 두 동강 날 기세도 없이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끌어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매번 밑면을 좁게 만들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넓게 잡아 깊게 구멍을 파 들어갔다.

속도에 유의하며 천천히 섬세하게 바닥을 평평히 다듬었다. 이제 중요한 작업인 기벽을 끌어올려야 했다.


천천히 집중해서. 물레의 속도와 손의 움직임, 손가락의 힘에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기벽을 끌어올리기를 반복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어요. 이상하게 잘 안 되는 날.'

'대신 이상하게 잘 풀리는 날도 있으니까요!'



저번 수업 때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이 바로 이상하게 잘 풀리는 날인 것 같았다.




꽤나 만족스럽게 컵의 모양을 갖춘 기물이 완성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족스럽게 완성된 기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덧 자리로 돌아오신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하면 나에게 다가오셨다.



'오! 이번엔 높게 뽑으셨는데요! 이 정도면 컵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계속 이렇게 높게 뽑아보는 연습 하시고 다음에 같이 손잡이 만드는 작업 해보면 될 것 같아요.'



정말이지, 반갑고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또 새로운 과정을 배울 수 있어.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말대로 오늘은 계속 원통을 뽑아내봐야지.



처음부터 소지양을 평소보다 많이 했기 때문에 두 번 정도 기물을 더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원통으로 기물을 뽑아내고, 마지막 남은 소지로는 그릇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릇으로 만드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원통으로 뽑아내기에 모양이 잘 안 잡힌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릇모양으로 선회했다. 어쩔 수 없었던 거긴 했지만 꽤나 마음에 들게 나오긴 했다.

꽤나 마음에 드는 오늘의 첫번째 물레성형.


저번에 굽깎기를 두 번 다 실패하고 마음이 꺾여서 그만했기 때문에 오늘 굽 깎을 기물들이 조금 있긴 했다.

바로 굽을 깎을까 고민했는데 오늘 물레감각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대로 그만 두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고민은 시간만을 늦출 뿐. 바로 두 번째 소지를 물레 위에 올렸다.



이번에도 나의 목표는 원통. 굽깎기에서 구멍엔딩을 낼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여유분을 넉넉하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기껏 물레성형해서 만들었는데 굽깎기 다 실패해서 손잡이 만드는 작업 못 하면 마음 아플 것 같았으니까.



두 번째 시도도 방심하지 않고, 최대한 흙의 감각을 느껴가며 부드럽게 풀어주고 집중해서 성형을 했다.

이번에는 창칼로 윗부분을 도려내는 연습도 하고 싶었어서 최대한 높게 끌어올려보고 윗부분이 너무 얇아진 것 같으면 잘라내는 연습을 했다.



창칼을 쥔 손이 흔들리지 않게 왼손으로 오른손을 지지해 주는 것이 좋다. 왼손검지는 기물을 바깥면 쪽에 두고 물레 속도는 너무 빠르지 않게 해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창칼을 안에서 바깥쪽으로, 왼손검지가 창칼 끝에 닿게 넣으면 된다. 역시나 쉽지 않았는데, 창칼이 들어가는 속도가 꽤나 중요했다. 아주 살며시 조심스럽게 천천히 들어가야 한다. 한 번에 너무 칼을 깊이 쑤시거나 속도를 빠르게 하면 바로 뒤틀려서 울퉁불퉁 못나게 잘려진다.



알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연습하고 연습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다시 모르겠고 잘 되다가도 안 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최대한 기벽을 높게 올려보고 싶어서 계속 끌어올렸는데, 이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벽이 너무 얇았는지 결국 흐물흐물 우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창칼 연습을 하다가 떼어내고 바로 반죽통 안으로 넣었다. 실패한 거에 미련을 두면 안 되니까. 빨리 보내주고 다음 작업 때 더 조심하며 신경 쓰면 된다.



그렇게 두 번째 물레성형에서도 3개의 기물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대량생산.

중간에 하나 버렸기 때문에 남은 소지양이 애매했었다. 애매한 소지양은 잔을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지막 작업은 작은 잔을 만들었다. 굽을 높게 깎고 싶어서 밑동을 많이 남겨놓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대량으로 생산한 것 같았다. 게다가 원통이 4개나 되어서 굽깎기도 덜 걱정되었다. 그래도 이중 한 개는 성공할 수 있겠지.



물레판 위와 도구들을 한 번 정리하고, 굽깎기 할 준비를 했다.



기물들이 어느 정도 말라있어서 저번보다는 굽깎기가 수월할 거 같았다.


어떤 걸 먼저 할까 고민하다가 그릇 모양으로 만들어둔 기물을 먼저 집어 들었다. 육안으로 봤을 때 밑동을 넉넉하게 뗀 거 같아서 그래도 덜 망칠 거 같았었다.


그렇게 희망에 가득 차서 굽깎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것도 결국 구멍엔딩을 맞이했다.

매번 바닥면이 넓고 평평한 기물들이었던 것과 다르게 이 그릇은 밑면이 좁았다가 점차 넓어지는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옆부분은 충분히 굽을 깎아내기 여유로웠지만 진정한 밑면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 바로. 꼬깔콘 모양처럼 바닥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뭐, 어쩔 수 없다. 예상은 했었으니까.


바로 다음 기물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바로 모양이 있는 기물이었기 때문이다.


저번에 연습해 본다고 만들었던 화병 모양의 기물. 굽을 깎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옆에도 예쁘게 잘 다듬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처음으로 이렇게 굴곡이 들어간 기물을 깎아보는 거니까.



정말 조심스럽게, 조금씩 살살 굽을 깎아갔다. 바닥이 뚫리지 않게 몇 번이나 두드리며 소리로 확인해 가며 깎고 다듬고를 반복했다. 


무사히 굽의 모양을 만들어내고 이제는 옆을 다듬었다. 확실히 굴곡이 있는 부분은 힘들긴 했다. 그늘이 져서 제대로 이쁘고 깔끔하게 깎였는지 확인이 잘 안 되었다.


소리를 들어가며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다듬었다고 느꼈을 때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고정시키기 위해 붙여놓았던 흙반죽을 떼어내고 마무리 다듬기를 했다.



저번에 이러다가 원심력 때문에 기물이 튕겨나가서 망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천천히 살살 돌려가며 기물을 다듬었다.



그렇게 드디어 무사히 완성된 듯싶었다. 그런데 하나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마무리 작업을 할 때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었는지 유독 많이 깎인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입' 부분에.



난감했다. 이것 때문에 버려야 하는 걸까. 이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너무 아쉬웠다.

딱 이 부분만 얇게 깎인 것뿐인데. 딱 이 부분만 어떻게 해본다면.


찰나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 이러면 될 것 같아.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실수커버가 오히려 더 그럴싸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화병 모양에서 물병을 탈바꿈. 오히려 좋아?


유레카였다. 얇아진 부분만 물병의 입구처럼 모양을 만들어주면 되는 거였다. 그 편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고 오히려 좋았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원래 모양대로 했다면 밋밋했었을 것 같았다.

위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되었고 그렇게 뜻밖에 결과를 얻게 되었다. 정말 오히려 잘됐고 너무나도 좋았다.



이 기세를 그대로 살려서 하나만 더 굽깎기를 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바닥이 뚫리지 않게 조심히 굽을 깎아내며 잔의 모양을 만들어가는데 이것도 그냥 매번 똑같은 모양으로 하기 아쉬웠다.



그래, 도전해 보자. 약간의 무늬나 모양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굽을 깎다가 너무 둥글게 깎았는데, 여기를 살려보는 건 어떨까?


그래, 여기까지만 깎고 남은 부분은 조금 더 두껍게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굽깎기를 오늘 하게 되었다. 이렇게 즐겁고 설레며 굽깎기를 한 건 오늘이 처음인 거 같았다.



남아있는 기물들도 굽깎기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정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는 게 매번 이렇게 아쉬울 수 있을까.



공방에서의 시간은 정말이지, 봄날의 벚꽃과 같았다.

너무나도 찰나인데,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하다.


매해 보는 벚꽃인데도 봄마다 기다려지듯, 매주 오는 이 순간이 매번 기대가 된다.



물론 하다 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위기의 순간이 언제나 찾아오지만,

그 순간마저 나에겐 또 하나의 기회가 된다.



또 하나의 기쁨이자,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매 순간이 기대되고 행복으로 가득 찬다.


또 어떤 순간이 나를 찾아올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물레.




이전 10화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