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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Apr 29. 2024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물레가 깃든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


이번 수업도 토요일에 진행이 어려웠다.

따사로운 봄이 다가와서 그런가 좋은 소식들이 봄바람을 타고 들려왔고 뜻깊은 자리를 축하해 줄 기회가 늘어갔다. 나도 기꺼이 참석해서 그들의 앞날을 행복으로 빌어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오후반차를 쓰고 물레수업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이 날이 여유로울 것 같아서 오후반차를 미리 신청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다.

일들이 몰려들어 아, 그냥 반차를 취소해야 하나 싶었는데 또 그럴 순 없어서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회사를 나왔다.

은행도 들렀다 가야 했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어 생각보다 더 늦게 공방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미 내 몸과 정신은 지칠 대로 지친, 아주 푹 익어버린 파김치 같은 상태였다.


매번 공방문을 여는 것이 즐거웠는데 오늘따라 유독 공방문이 무겁게 느껴졌다.

매번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오늘은 그저 천근만근,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런 생각과 마음이 들었다는 것에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선생님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저번에 미처 하지 깎지 못한 기물들을 먼저 꺼내 들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기물들이 마르는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졌기 때문에 먼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릇과 잔이 스티로폼 박스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둘 다 밑가새로 넉넉하게 떼어냈던 것들이어서 크게 굽깎기에서 망칠 거 같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큰 사이즈인 그릇을 먼저 집어 들었다.


굽을 어떻게 깎을지 고민했는데 회사 그릇 중 얄상한 그릇 모양이 예뻤던 게 기억나서 그렇게 깎아보기로 했다.


확실히 많이 깎아내야 하긴 했는데 그래도 넉넉하게 떼어낸 만큼 원하는 모양을 잡아가며 깎아낼 수 있었다.

만족스럽게 깎아내고 남아있던 작은 사이즈의 잔을 물레판 위에 올려두었다.


둘 다 모양이 비슷했기 때문에 이것도 시리즈라고 해야 하나 세트 같은 느낌으로 깎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그릇과 잔 세트.


오늘 유독 많이 지쳐있다 보니 집중이 잘 안 되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그거치곤 만족스럽게 나와서 기뻤다.

사실 망칠까 봐 굽을 많이 안 깎은 것도 있었다. 얇게 깎을수록 무게가 가벼워져서 좋은데, 오늘은 그렇게 하면 바로 구멍엔딩을 맞이할 거 같아서 조금 두텁게 깎기도 했다.



굽을 다 깎았으니 남은 시간은 물레성형을 하기 위해 도구들을 세팅하고 소지를 적당히 잘라 물레판 위에 올렸다.

이것도 만들어보고, 저것도 만들어봐야지 했을 만큼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는데 오늘은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말을 걸어주셨다.



'오늘은 뭐 만드실 거예요?'


'음, 사실 모르겠어요. 어떤 걸 하는 게 좋을까요.'



나사가 풀린 듯 멍하니 고장 나있는 나를 보시던 선생님은 고민 끝 한 가지 제안을 주셨다.



'그럼 크고 길게 뽑아보는 연습 해보시겠어요? 사실 그게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게 가능해지면 이제 못 만드는 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선생님의 말에 삐걱이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레판 위에 놓여있는 소지를 보았다.



크고. 길게.



렉이 걸린 컴퓨터에 입력값을 억지로 집어넣듯 웅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크고 길게 하기엔 소지양을 너무 적게 준비한 것 같았다. 그래도 우선 해보자.

크지도 길지도 않은 첫 시도

나름 크고 길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었다.

결국 전에 만들던 것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사이즈로 2개가 완성되었다.


첫 번째 만들 때 나름 넓게 밑바닥을 잡고 깊이 구멍을 팠다고 생각했는데 기벽을 올리다 보니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든 기벽을 끌어올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금방 한계가 왔고 더 이상 하면 벽이 너무 얇아질 것 같아서 저기서 마무리 지었다.


두 번째 만들 때는 남아있는 소지양이 많지 않아서 밑바닥을 좁게 잡은 뒤 아까보다 더 깊게 구멍을 파내려 갔다. 그 결과 조금 더 벽을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사실 저건 거의 망했다고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피곤했다 보니 정신력이 자꾸 떨어졌는데 그러다 한 번의 실수로 중심이 무너졌었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어찌어찌 수습해 보았지만 겉모양만 그럴 듯 보일뿐 아마 속은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 같았다. 중심이 잘 안 잡힌 상태에서 기물을 만들면 건조하는 과정에서 균열이 가 금이 생길 수 있다고 했었다.



저 아이는 아마 금이 가겠지?



너무나도 눈에 보이는 결과에 마음이 살짝 아려오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다시 소지를 준비해 물레를 돌릴 준비를 했다.


제발 정신 차리고, 집중해 보자.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내 정신력은 자꾸만 무너져갔고 무너진 정신력은 고스란히 물레에 담겼다.



평소보다 중심을 잡아가는데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자꾸만 무너지는 정신력에 중심도 자꾸만 무너져갔다.


겨우겨우 중심잡기를 하고 밑바닥을 다 잡고 구멍을 파내려 가고 넓히고.


밑바닥을 다듬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자꾸만 평행이 맞지 않는 거 같았다. 내정신처럼 자꾸만 기울어있는 거 같았다.


얼추 평평해졌다 싶어지면 기벽을 끌어올렸다. 여기서는 정말 아차 하면 끝나는 거기 때문에 자꾸 흩어지려고 하는 정신력을 억지로 긁어모아 기벽을 올리는데 쏟아냈다.



길게, 길게, 길게.



뽑아내는 거에 집중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이번 물레성형 작업.

세 번째 만든 것도 역시나 한계가 금방 찾아왔다.


조금 더 끌어올려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느낌이 그러면 망할 거라고 경고를 주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역시나 소지양을 너무 적게 한 것 같았다.



오늘 너무 피곤하고 집중이 안 되다 보니 많은 양의 소지를 하기엔 약간 겁이 났다.

지금 상태처럼 무거운 소지들이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울퉁불퉁 뒤틀릴 것 같았다.



눈앞에 남아있는 소지를 내려보았다. 이 정도의 소지로 얼마큼 끌어올릴 수 있을까. 비슷하거나 더 낮을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해 보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뿐이었다.



그렇게 4개의 기물이 완성되었다.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게 없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다 보시고 말하셨다.



'어떠셨어요? 그래도 길게 뽑아보신 거 같아요.'


'너무 어려웠어요, 선생님. 정말 쉽지 않네요 물레는. 이게 저의 한계였어요.'



넋이 나간 듯 탁하게 풀린 내 눈동자에 선생님은 다정한 시선을 보내주셨다.



'괜찮아요. 원래 이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에요. 계속하시다 보면 또 금방 손에 익게 될 거예요. 이건 연습만이 답이거든요.'


아 그리고, 저번에 만드신 거 초벌 나왔어요. 시간 괜찮으면 이것도 다듬고 가세요.


라고 선생님은 분위기를 바꾸듯 밝게 이야기해 주셨다.



사실 이미 많이 지쳐있어서 정신이 반쯤 나가있긴 했는데, 또 초벌로 나온 나의 피, 땀, 눈물을 보니 어떻게든 끌어올려서 다듬고 가고 싶었다.



물레의 뒷정리를 마친 뒤, 사포를 들고 테이블에 앉아 내가 만든 기물들을 보았다.

또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고 애정이 샘솟았다.


열심히 매끄러워지도록 사포질을 했다.



총 3개였는데 이번에는 심혈을 기울여 다듬었기 때문에 꽤 팔이 아팠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이 아이들은 아름답게 더욱 빛나게 태어날 테니까.



더욱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다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의 체력과 정신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어떻게 다듬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정도 매끄러워진 기물들을 보며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물 먹은 스펀지로 마무리 작업을 해주었다.



각각 어울릴 만한 유약을 골라 연필로 표시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선생님과 다음을 기약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공방을 나왔다. 어느새 밖은 꽤 어둑해져 있었다.

배가 고팠다. 시간은 벌써 저녁식사 때였다.



오늘 하루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물레를 오롯하게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게 물레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서.



내가 자주 친구들한테 하는 말이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건강을 위해 헬스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헬창이라고 부를 만큼 꽤나 진심으로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헬창이란 단어에 부합하고 싶어서 종종 장난식 드립으로 저 말을 했었다.



오늘 물레를 하면서 느꼈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물레.'



체력도 중요하지만 역시 물레를 하려면 정신이 건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집중해서 모든 걸 느끼고 쏟아내야 하는 작업이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멘탈케어도 잘해야겠어.

물레 하는 날은 컨디션을 최대한 좋게 하고 와야겠어.



내 삶은 어느새 물레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다.


물레는 그래, 내 삶의 낙. 나의 생애에 중심이 되었다.



건강한 정신. 건강한 물레.

나는 계속 힘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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