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화 May 01. 2024

독백, 나의 회고록. 12.

우리 집 뚱딴지.


내가 어렸을 때, 아마도 초등학생 즘. 우리 집은 종종 강아지들을 임시 보호했었다.

주로 이모나 고모 친구들의 부탁이었다. 그들은 잠시 맡길 곳을 필요로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친척들이 한동네에 가까이 붙어살았고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우리 집은 항상 집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제격이었다.

무엇보다 나와 동생이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작고 귀여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기뻤고 헤어짐은 항상 슬펐다. 그러한 반복 속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보호를 맡게 되었다.


이모의 친구가 데려온 작은 갈색 강아지는 경계심이 무척이나 많았다. 사람을 무서워했고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모는 우리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이 강아지는 이전 주인한테 학대를 받아서 사람을 무서워해. 특히 어른남자를 무서워하니까. 너희도 너무 겁주지 말고 조심이 대해줘.’

이모의 친구는 학대사실을 알고 급하게 이 아이를 구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이모의 도움으로 잠시나마 새로운 주인을 찾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돌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어떻게 때릴 수가 있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이 크고 초롱한 눈망울을 한없이 굴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보며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가 괘씸했다. 이 아이가 당한 것처럼 나도 그 남자를 몽둥이로 힘껏 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아이를 대해줬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컸는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손을 씻고 나서 베이비로션을 발랐다. 그리고 웅크리고 있는 그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그 아이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강아지한테 함부로 다가가면 안 돼. 먼저 교감을 해야 해. 어디선가 들은 그 말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그 아이의 코 앞에 두었다. 내 냄새를 맡고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킁킁 냄새를 맡던 그 아이는 이내 내 손을 부드럽게 핥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연 것 같아서 정말 기뻤다. 나는 이 벅찬 소식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 동생과 사촌애들이 부러워했다.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다. 나는 베이비로션을 바르고 손냄새를 맡게 한 다음부터 마음의 문을 연 것 같다고 알려줬다. 그 이후로 동생과 사촌애들 손은 베이비로션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관심 없어했다. 동생과 사촌애들은 실망했다. 정말 베이비로션 때문이 맞냐고 나를 다그쳤다. 나는 의아했다. 베이비로션이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다른 게 있었던 건가 생각하다가 이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어쨌든 이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었으니까.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이 아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뚱딴지. 동생의 아이디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마음의 문을 열었으니까. 그렇게 작고 귀여운 갈색 강아지는 우리 집 뚱딴지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방에 있던 나에게 동생이 급하게 달려들어와 말했다. ‘딴지가 도망갔어.’ 문이 열린 틈을 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는 거였다. 나는 동생에게 어디로 갔는데? 물었고. 동생은 모른다며 성질을 내고 찾으러 나가자고 했다. 성격 급한 동생이 먼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안일하게 동생이 잘 데리고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금방 돌아오지 않아 불안해진 마음에 바깥으로 나갔다. 동생이 어디 있지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데 저 멀리 동생이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 밑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놀란 나는 동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나를 발견한 동생이 몸을 일으켜 나를 다그쳤다. 왜 빨리 나오지 않았냐고. 얘 차에 치일 뻔했다고.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정신이 번쩍 들며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은 됐고, 얘가 놀랐는지 차 밑에 숨어서 나오질 않는다고 언니가 얘 좀 불러보라고 했다. ‘얘 언니 좋아하잖아. 언니가 부르면 나올지도 몰라.’ 그 말이 나를 더 무겁고 아프게 눌렀다. 나는 자리에 수그려 앉아 박수를 치며 이름을 불렀다.

‘딴지야. 딴지야 이리 와.’

최대한 부드럽고 밝은 소리를 내며 이름을 불렀다. 나의 목소리가 닿은 건지 천천히 차 밑에서 나온 그 아이는 내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내 품 안에 안긴 이 작고 연약한 아이를 앞으로 책임지고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만을 바라보는 이 아이를. 차고 넘칠 정도의 사랑으로 보듬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딴지는 나를 시작으로 점차 우리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마음을 열었고 엄마에게도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싫어했다. 아빠의 곁에 가지 않았고 아빠가 움직이면 흠칫 놀라거나 짖었다. 딴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아빠였지만 그래도 미움을 받으니 싫었던 것 같다. 아빠는 딴지에게 정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모 친구는 좋은 주인을 찾지 못했고 딴지는 점점 우리에게 소중한 가족이 되어갔다. ‘그냥 너희가 키우는 건 어때?’ 이모는 딴지와 잘 놀고 있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좋아! 나와 동생은 아주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를 설득시키는 건 어려웠지만 불가능은 아니었다. 딴지는 우리가 돌보고 책임지겠다고. 앞으로 엄마가 하는 말 다 잘 듣겠다고. 엄마는 못 이기는 척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것인 아닌 앞으로 함께할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커갈수록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야 했고 가끔 친구들과도 놀아야 했다. 우리의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딴지가 혼자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대소변을 잘 가리던 똑똑했던 아이가 점점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계속해서 울부짖는다고 이웃집에서 주의해 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딴지는 눈에 띄게 나만 따랐다. 내가 없을 때만 동생이나 엄마에게 다가가고 내가 있으면 다른 가족들은 무시한 채 내 곁에만 있었다. 동생은 그런 딴지를 얄미워하면서도 좋아했다. 그리고 여전히 딴지는 아빠 곁으로 가지 않았다. 행여나 만지려고 하면 짖거나 입질을 했다. 아빠는 더 이상 딴지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딴지를 보는 엄마의 시선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불안은 눈앞의 현실이 되어 우리를 덮쳤다.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할 거 같아. 할머니네 아는 친구분이 시골에서 농장을 하며 사신대. 다른 강아지들도 많대. 이렇게 텅 빈 집에 갇혀 사는 것보단 넓은 들판에서 뛰어노는 게 딴지를 위한 길이야.’ 우리는 일주일 내내 대성통곡을 했다. 어떻게든 엄마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엄마는 완강했고 이번에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딴지를 떠나보내던 그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책임지기로 했는데 사랑으로 보듬어주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고 나약하기만 한 어린 내가 너무 좌절스러웠다. 딴지도 어렴풋이 눈치챘다고 생각한다. 마치 처음 만났던 날처럼, 내 품 안에 안겨 있던 딴지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눈동자. 그 모습에 나는 더욱 펑펑 울었고 딴지가 떠나가는 마지막 모습을 볼 용기가 없어 방 안으로 숨었다. 혹시나 싫어져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를 미워할까? 원망하겠지?


나는 아직도 딴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우리가 조금 더 늦게 만났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라면 모든 다 해줄 수 있을 텐데. 맛있는 간식도 잔뜩 사주고, 산책도 많이 시켜주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남겨두었을 텐데. 사실 그게 제일 아쉬웠다. 딴지의 사진을 많이 남겨두지 못한 것. 한 장의 폴라로이드. 그게 딴지가 담긴 유일한 사진이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잠들려고 누우면 자연스럽게 팔베개를 해. 그러면 너는 어느새 내 근처로 와 자연스럽게 거기에 자리 잡고 누워 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주겠지.

나는 아직도 가끔 너를 닮은 갈색 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딴지야’라고 불러. 아니 사실 그냥 푸들만 보면 ‘딴지야’라고 튀어나와. 아직까지 입에 붙어있을 만큼 너를 불렀던 날들이 내 안에 남아있어.

너는 과연 나를 계속 기억해 주었을까?


우리 집 강아지. 우리 집 뚱딴지. 너는 영원히 오래도록 나의 가족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