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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Jun 30. 2024

독백, 나의 회고록. 14.

2022년 10월 29일.


‘나의 고통을 내뱉으며 써 내려간 글이 나를 살리기도 하지만, 타인을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하죠.’


추천사 속 이 문구에 마음이 울려서 나는 이 책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놀랍게도 항상 나를 울리는 글을 쓰신 분이 준비한 책이었다.



글쓰기 주제가 ‘슬픔’인 날이었다. 그분의 글은 이 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자정이 멀지 않은 주말 밤이었다. 핸드폰 진동 소리가 계속 웅웅 거리고 울렸다. 언론사별 속보 알람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읽자마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밖에서 여유를 즐기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려 휴대폰을 켰기 때문에, 자꾸만 고이는 눈물이 난감스러웠다. 글을 뒤이어 읽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분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날, 나는 운명처럼 이 책을 만났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소중히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책을 피기까지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그 분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책을 다 읽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피기 전까지는.


나는 책의 저자처럼 그날을 직접 겪은 사람도, 그분처럼 그날에 관련된 글을 쓴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저 그날을 안전한 방에서 ‘본’ 사람이었으니까.



그날은 나와는 거리가 먼 날이었다. 핼러윈데이. 멋있고 웃기고 획기적인 코스프레들. 모두가 기대하고 기다리던. 그날.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나는 그냥 언제나처럼 방구석 침대에 몸을 뉘었고 그대로 인스타에 들어갔다. 이번엔 어떤 획기적인 코스프레들이 나올까 궁금했을 뿐이었다. 돋보기를 누르니 여기저기 코스프레영상과 이태원실시간 영상들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누르게 된 영상을 보고 나는 뉘었던 몸을 다시 일으키게 되었다.


누군가 어그로를 끌기 위해 이런 심한 농담을 하는 거라고 맨 처음에 생각했다. 설마 아닐 거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바란 것처럼 관련 영상들을 계속해서 보고 넘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갈수록 자극적인 영상들이 인스타를 가득 채워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인스타를 껐다. 휴대폰을 뒤집고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폭주하기 시작한 생각들에 나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생방송 뉴스를 찾아보았다. 그렇게 제발 희망적인 브리핑이 있길 기다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뉴스를 껐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인스타에서 본 영상이 자꾸 선명하게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의 처절하고 애처로운 울음소리와 사이렌소리가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그날 이후가 나는 더 참담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 떠나간 그들은 그 온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도마 위에 올랐다. 그들의 추모에 정당성이 붙었다. ‘자기들이 놀다가 죽은 건데 적당히 좀 해. 그러게 누가 그런데 가래?’ 그들의 유가족들에게도 그 화살은 돌아갔다. 진상규명을 원하는 그들에게 ‘결국 돈 때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런 진흙탕 같은 글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점점 인터넷을 안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날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없을 거라고 그저 그렇게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분의 글을 읽었던 날, 그리고 이 책을 펼친 날. 나는 다시금 그날 내 방구석 침대로, 인스타를 켜고 그 영상을 보던 그때로 돌아갔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선명하게 그날 느꼈던 내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눈물을 참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 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그날의 당사자도, 생존자도, 관련자도 아닌데. 누군가는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야’라고 할 것 같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책 속에 있었다.


‘사실은, 이 사건을 뉴스로 전해 듣고 간접적으로 겪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생존자예요.’


감히 생존자라는 표현을 붙일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안전한 곳에서 ‘본’ 사람일 뿐이니까. 내가 느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것들은 감히 그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내가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아파하는 것부터가 그들과 내가 욕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뿐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무언가 행동할 수 없다. 행동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었다. 모든 걸 떠나서 그들의 죽음에 나는 아직도 이렇게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당신들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되었다고. 저자가 들은 그 상담사의 대답을 당신들도 들었으면 좋았겠다고.



“아니에요.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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