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아가셨다"
동생의 말에 후련함이 묻어 있었다.
아빠는 늘 아들과 딸을 그리워했고, 그런 아들을 어려워도 했다. 한 남자에게는 짝사랑이었고, 다른 한 남자에게는 증오로 남은… 그런 부자 관계였다.
애지중지 아들을 평생 짝사랑만 하다, 결국 고백도 못 해보고 아빠는 떠났다.
"나는 아빠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누나만 우쭈쭈 하잖아.
누나가 최고잖아. 맞잖아!"
가끔 아빠 이야기가 나올 때면, 동생이 하는 말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살았을 동생이 안쓰럽다가도,
아빠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 동생이 야속해 "니도 좀, 그만해라" 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빠가 니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내만 보면, 니 얘기했다!"
"나는 모르지. "
퉁명스러운 동생의 대답에,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다.
아빠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딸인 나만 알고 있었다. 아들의 안부를 딸에게 묻던 아빠였다.
"범이, 아직도 그 직장 다니고 있나?"
"사귀는 사람은 있고?"
"결혼 안 한다나?"
"어디 아픈 데는 없제?"
고3 시험기간이었다.
그날따라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졸지도 않고 공부를 했다. 모처럼만에 고3 같았던 나에게 취한 채 집에 가는 셔틀버스에 앉아 있었다.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자 음성 메시지 하나가 뜬다.
"응? 음성 메시지? 뭐지?"
"누나!!! 누나!!! 빨리 집에 온나! 빨리!!!!"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에 몸이 얼어붙었다.
"뭐야! 공부도 안 하는 게, 왜 하필 오늘.... 공부는 한다고 해가지고!!! " 독서실에서 멀지 않았던 집을 가는 동안 내 탓에 탓을 더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새벽녘의 골목길을 요란스럽게 뛰었다. 집 앞 골목길에서 바라본 우리 집은,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와 다르게 고요했다.
“이 새끼, 장난친 거 아냐?”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센 말이 튀어나왔다. 차라리 이 상황이 동생의 장난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부엌 한편에 주황색 조명이 켜 있다.
얕은 불빛에 비친 우리 집은... 지옥이었다.
깜깜한 안방 바닥에, 엄마는 흐트러진 머리로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아 있었고, 지옥의 맛을 오롯이 혼자 견뎌낸 동생은 고개를 떨군 채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두운 거실 한편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빠는 나를 보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엄마...."
"…어... 왔나?..."
"뭔데? 무슨 일인데?"
"범이한테 가봐라. 많이 놀랐을끼다"
"뭔데!!!!! 왜 이러는데!!!!!"
"돈... 돈 때문이지..."
식당에서 홀서빙을 했던 엄마.
"대구 이모"로 불렸던 엄마는 손님에게는 친절하고, 야무지게 일도 잘하는 만능 직원이었다. 좁은 강릉 바닥에서 엄마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으며, 소위 말하는 몸값을 올리며 식당을 옮겨 다녔다. 물론,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엄마는 나, 동생, 아빠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우리 집 가장이었으니까…
엄마 덕분에, 강릉 첫 집인 방 2칸의 좁디좁은 반지하방에서 2층 단독 주택의 각자 방이 있는 햇볕 드는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직을 반복하던 아빠도 택시 회사에 들어가며, 마침내 가정통신문에 ‘부 직장명'에 써낼 수 있는 아빠의 직장이 생긴 평범한 가족의 형태를 갖췄다.
그게 문제였을까...
개인택시가 아니었던 아빠는 매일 사납금을 내야 했다. 사납금은 택시 기사가 회사에 당일 소득의 일부를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사납금이 채워지는 날보다, 사비를 털어 채워 내야 하는 날이 잦았던 아빠.
아빠의 사비는 엄마의 식당 유니폼이라 할 수 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나왔다.
혹여나 남편이 또 일을 그만둘까 걱정이었던 아내는, 남편의 사납금을 채워주는 것을 택했다.
그런 아내의 속을 눈치챈 남편은 택시 운행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12시간 식당일을 하는 아내는 그런 남편의 비밀 시간을 알턱이 없었다.
하루에 엄마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등교 전, 밤 10시 퇴근 후 잠깐 뿐이었다. 짧은 시간, 오늘은 어쨌니 저쨌니 이야기 속 아빠 이야기가 나왔다.
"그 시간에 아빠 집에 있었는데."
"어? 아빠가 그때 집에 왜 있어?
택시 운전할 시간인데."
"아닌데, 아빠 맨날 집에 있는데"
"...."
그렇게 아내는 남편의 비밀시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지옥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른 날과 별반 다름없이 아내에게 사납금을 부탁한 남편. 속이 썩어 문들어질 대로 문들어진 아내는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닫힌 안방 문 넘어, 아내의 울분 섞인 넋두리가 터져나았다. 동생은 여느 날처럼 아빠, 엄마가 부부싸움을 하나보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외마디 비명은 건너방에 있던 동생을 한걸음에 달려가 안방문을 열게 했다.
아내는 유능했고, 남편은 무능했다.
아내의 잔소리는 남편을 위축시켰고, 자격지심은 아내에게 손을 대게 했다. 열다섯 사춘기 동생은... 아빠의 민낯을 봐버린 거다.
그날 이후,
동생에게 엄마는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고 , 아빠는 입에도 올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나 또한 처음 본 아빠의 살기 가득한 눈빛이었다.
말투, 몸짓, 눈빛에서 마저 다정함이 묻어났던 그랬던 아빠였다. 그런 나의 다정한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원망과 열등감에 가득 찬 아빠이자 남편의 모습만 보였다.
낯설어진 관계에 아빠는 일 자리를 다시 찾아보겠다며 대구로 가버렸다. 어찌 보면 그 일로 자연스럽게 네 식구에서 3:1로 편이 나눠져 버린 가족의 형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동생과 나는 알수 없었던 부부의 정이 엄마와 아빠를 살아가게 했다. 대구에서 일자리를 잡은 아빠는 명절이면 강릉을 왔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 남편을 먹이려 아내는 최고급 양양 송이를 준비해 놓는다.
그랬다. 나와 엄마는 그날의 아빠를 품었고, 동생은 도려냈다. 오죽하면, 아빠 부고 소식에 동생 지인들이 "아버지 계셨어?"라고 물었다 한다.
지독한 놈.
하지만 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날의 지옥을 혼자 견뎌낸 사춘기 동생에게
왜 아빠를 그토록 미워하냐고... 말 조차 할 수 없다.
"이제 편하다.
사람들이 아버지 뭐 하시냐고 물으면,
나는 아빠가 뭐하는지 모르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할 말이 없었거든. 근데, 이제는 '돌아가셨어요' 하면 되잖아. ... 잘 돌아가셨다."
동생 말에 엄마가 말했다.
"우리 아들 말이 맞다. 나도 이제 걱정이 없다"
이제야 말하지만, 어디 아파서 갑자기 연락 올까 봐..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깜짝깜짝 놀랐는데.
아프지 않고 잘 갔다. 아파서 병원에 오래 누워 있었으면 , 니네 힘들게 했을 거다. 니네 아빠한테 그게 제일 고맙다. 니네 힘들게 안 하고 가서...
그래서 고맙다 인사했다.
잘 가줘서... 고맙다고"
아빠 장례를 마친 그날 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빠를 보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엄마와 동생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마음이 쓰렸다.
우리 아빠는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죽음 앞에 '잘'
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었을까...
잘 돌아가셨다, 후련함을 말하던 동생이 장례가 끝난 지 2주쯤 지났을 무렵 전화가 왔다.
"누나, 시간 있나?"
"왜?"
"내 지금 병원이다..... 뇌출혈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