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 trainer
Oct 29. 2024
가을 하면 독서의 계절을 연상한다는 친구를 만나 어제는 즐겁게 입씨름을 했다. 내 반론인즉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非讀書之節이라는 것. 물론 덥지도 춥지도 않은 秋夜長에 책장을 넘기는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디 그 길이 종이와 활자로 된 책에만 있을 것인가. 이 좋은 날에 그게 그것인 정보와 지식에서 해방될 수는 없단 말인가. 이런 계절에는 외부의 소리보다 자기 안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제격일 것 같다. (법정 <무소유> '비독서지절' 중에서)
따스한 햇살에 선선한 바람 부는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 책 읽기를 권하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글귀를 보다 문득 이게 맞는 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매달 대여섯 권의 책을 읽는 나도 사실 가을이 되면 가슴에 바람이 불어 한 권 읽는 것도 힘이 든다. 맘을 다잡고 책을 펼쳐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보다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계절이란 스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많은 이들이 밖으로 구경을 떠나고 시험준비하는 몇 사람만이 자리를 지키는 한적한 도서관, 불청객처럼 그 틈에 끼어 독서하다 집중이 안될 땐 밖에 나가 공원을 산책하며 가을 향기에 취해 사색에 잠겼다. 그리고 공원 안에 있는 연꽃을 1주일 간격으로 사진 찍으며 변해가는 모습들을 관찰했다. 제 역할을 다하고 스러져지는 꽃이 마치 정점을 지나 저물어 가는 내 인생인 듯하여 더 애착이 갔다.
꽃이 질 때가 필 때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순리를 따라 지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날이 꺾이는 연꽃에게 배우며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스님의 표현을 좇아 앞으로의 가을은 보다 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다. 모처럼 느긋한 산책자가 되어 걷는 사이 어느새 노을이 곱게 물들어 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칠세라 걸음을 멈추고 급히 셔터를 눌렀다. 아,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내 생의 가을이 붉게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