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애매한 사이에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길을 가다 우연히 오래전에 알았던 지인 A을 마주쳤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윤정 씨?”
“어머, 어떻게 이렇게 만나죠. 잘 지내셨어요? B도 잘 지내죠?”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A의 아들인 B의 안부도 물었다.
“어 그럼, 잘 있어. 근데 중학생 되니까 사춘기가 오는지 가끔 투덜대긴 해. 자긴 요즘 뭐 해?”
“그냥 똑같아요. 애들 챙기고 뭐,,”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아, 치과 예약이 있어서 가는 길이야. 나이 들수록 점점 병원 가는 게 일상이야.”
“얼른 가보셔야겠어요. 다음에 차 한 번 마셔요.”
“응, 내가 한 번 연락할게. 우리 꼭 보자.”
“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인사와 안부 그리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내가 A에게 연락해 차를 마실 확률은 아마 10프로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다음에 차 한 잔 해요.’라는 흔한 거짓말은 어느새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애매한 사이에서 ‘안녕히 가세요.’를 대신해 최소한의 친밀을 표시하는 인사말로 전락해 버렸다. 열에 아홉은 만날 마음이 없는 경우다. A와의 우연한 만남이 반가운 건 사실이었지만 길거리에서 나눈 1분 남짓의 대화 그걸로 충분했고,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다.
만약 한국어 속뜻풀이 사전이 있다면 '다음에 차 한 잔 해요.'는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열탕에 들어갈 때 '아으, 시원하다.'라는 말과 옛날 밥상에 조기가 올라오면 '엄마는 생선 머리가 맛있어.'라는 말과 함께 등재 1순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