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바욘에서 생장까지 험난한 여정
나는 MBTI를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지만 새로운 모임이나 젊은(?) 어린 친구들이 많은 모임에 가면 대화의 물꼬를 MBTI로 틔우는 경우가 많아 이따금 억지로 억지로 테스트 해 보곤 했었다.
그러다 MBTI 유형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질문이라며 P인지 J인지 알아보는 질문으로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J,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지않고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P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이 날이 오기 전 까진.
순례자의 길(프랑스길)은 빠리로 IN을 한 경우, 대개는 루르드에서 생장으로 가 시작하거나 바욘을 거쳐 생장으로 가서 시작하게 된다.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성모 발현지로 성지가 된 루르드를 통해 생장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고 있었고, 유튜브나 인터넷에서는 바욘을 통해 생장을 가는 길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바욘이 좋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하루 묵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추천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바욘에서 하루를 묵고 생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장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싶진 않았고, 생장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면 마드리드에서 1박만 가능하거나 파리에서 1박만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바욘에서 바로 생장으로 가 순례자여권을 발급받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지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나보다. 그런 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들 생장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하루를 보낸 뒤 출발하는 글들 뿐이었다. 관련된 글을 하나 딱 찾았는데 순례자 협회(?)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산행이 익숙하지 않다면, 익숙하다해도, 바욘에서 생장을 거쳐 당일 론세스바예스로 가는건 추천하지 않는다라는 글 뿐이었다.
청개구리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영상에 나온 바욘이 너무 예뻐서였을까. 바욘에는 너무 묵고 싶었고, 생장에서는 왠지 묵고 싶지 않았다.
교통편을 검색했는데, 새벽 6시39분에 바욘에서 생장 가는 기차가 있었다. 이걸 타고 가면 8시 이전에 생장에 도착할 수 있고 그러면 생장 도착한 뒤 하루 묵고 떠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떠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차를 예매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빠리에서 바욘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데 내일 바욘에서 생장가는 기차가 취소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줄줄이 비엔나처럼 그뒤의 일정에 대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바욘에 내리면 역무원 또는 역에서 일하는 분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취소가 확실한건지부터.
4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서 바욘에 도착했다. 바욘은.... 비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선 영상처럼 이쁘지 않았다.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듯 했다. 담배를 하나 피려는데 여기저기서 담배를 달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정해지자 마음먹었었지만 쉽지 않았다. 담배를 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와중에 한국 형님 두분을 만났다. 그두분이 내게 기차대신 대체편으로, 셔틀버스로 가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씀 해 주셨다. 오! 그럼 아직 희망은 살아있는건가. 생각했다.
아무튼 겨우 담배를 하나 피고서 역에 들어가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취소가 맞는건지 취소가 됐다면 혹시 대체버스가 있는건지.
답을 듣는데 30분은 걸린거 같다.
결론은 내일 기차표와 같은 시각에 나오면 버스가 광장 앞에 있을거라고 했다.
6시39분 맞냐고 10번 물었다.
확신에 찬 Yes를 들었다.
오! 프랑스 국철 괜찮은데! 생각했다.
저녁이 되자 비가 을씨년스럽게 많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욘은 제대로 구경도 못했는데, 100유로 가까이 준 숙소도 별로였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피려고 할 때 마다 정말 거짓말처럼 여기저기서 한까치만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00명은 만난거 같다.
그리고 그다음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찍 나왔다.
6시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순례자의 길을 걸으려고 나온 것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 사실 사람들 자체가 몇 없었다.
불안했다.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역무원도 없었다.
내가 영어를 거지같이 했나 생각했다.
거기 역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 말을 걸었다. 혹시 생장 가냐고.
둘 빼고 아니라고 했다.
오 다행이다. 그래도 둘이라도 찾았으니 버스 있는게 맞겠지.
아무튼 6시39분 버스는 없었다.
없었다.
안좋은 기억만 잔뜩 남긴 기분이었다.
결론은 다음 기차편(8시52분)이 버스로 대체되었고, 그 버스를 타고서 생장으로 갈 수 있었다.
아무튼 이글은 위의 정보를 알리기 위함이다.
기차가 취소되면 대체편으로 버스가 배정된다. 그런데 버스가 배정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런 경우 취소문자가 온다. 취소문자가 오면 취소다. 대체버스 없다.
오른쪽 사진 Departs의 8시52분 기차편을 보면 오른쪽 끝에 버스 모양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버스로 대체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왼쪽 그림 6시39분 기차편 오른쪽 끝에는 아무 그림이 없다. 그럼 아무것도 없는거다. 기차가 오는 경우에는 기차 그림이 뜬다. 하하하.
루르드로 갔어야 했는데. 처음 본 그 책에 나온대로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과 앞으로 꼬여있는 일정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8시52분 기차는 과연 예정대로 올 것인가부터 그기차가 취소되면 다음 기차는 열두시가 넘어서인데 나는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생장에서 하루 묵는걸로 하고 첫 3일간 예약했던 숙소는 다 취소해야되는건가. 게다가 생장에 도착하고서는 비바람이 더 거세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시작부터 험난했다. 시작하는게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순례자의 길에만 집중했었어야 했는데 바욘이니 빠리니 몽셀미셸이니 다 집어치우고 순례자의 길에만 집중했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과 만약 그날 론세스바예스를 못가면 어떡할지에 대한 고민들로 전날 바욘행 기차를 탄 순간부터 그 고민만 했다.
아쉽다.
그 소중한 순간을 그런 생각들로만 가득 채웠어야 했다는 사실이.
결론적으로는 그날 론세스바예스에 가지못했다면 더 힘들어졌을거란 사실이다.
그리고 그날 만나게 된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을거다. 그날 이후 순례자의 길 내내 함께 했던 인연들을.
결론은 이러하다.
바욘에도 하루 계실거라면, 생장에서도 하루 주무세요. 꼭.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