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있지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요. 저는 대화나 회의를 할 때 아는 내용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내용을 전문가처럼 알거나 하지는 않아요. 들은 적이 있거나 조금 알면 입이 근질거려 아는 내용을 주절 주절대었죠.
그 대화에 참여하면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실은 '나도 그거 알고 있는데..'라는 지적 허영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반면에 저의 남편은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이 나와도 입을 쉽게 열지 않아요. 종종 그 모습을 보고 제가 남편에게 물어요. "저거 틀리지 않아? 가서 말해주지 그랬어? 틀렸다고!"
그럼 남편은 귀찮다는 듯이 말해요. "아녀~나도 잘 몰라. 바뀌었나 보지."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게 맞을 수도 있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게 틀릴 수도 있다면서요.
저는 그런 남편이 이해가 안 가고 답답했어요. "바뀌었어? 한 번 내가 찾아봐야지." 저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남편의 말에 인터넷을 한참 뒤집니다. 그리고는 "안 바뀌었는데? 자기 말이 맞잖아." 열심히 찾아서 알려줬는데도 남편은
"그려."하고 끝입니다.
그냥 대화에 굳이 끼어서 아는 척하기도 싫거니와 본인 말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 말을 안 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가 저의 남편의 굳은 신념이거든요. 저는 그동안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답답하기도 했고요.
'아니, 왜 가만히 있어? 회의에서 내 생각과 다르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지, 그리고 그것은 아니라고 말해야지. 사회는 '예스'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발전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말하는데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라며 저의 의견을 피력해도 남편은 '알았어. 자기는 그렇게 혀.'라고만 말할 뿐 바꿔보겠다는 마음은 1도 없지요.
선생님은 어느 쪽이신가요? 저랑 비슷하신가요?아니면 저의 남편이랑 비슷하신가요? 물론 양쪽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굳이 택한다면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신가요?
그런데 요즘 제가 변했어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니 제 생각이 전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젊었을 때는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읽은 것을 기억해 내어 자신 있게 그것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요즘에는 제가 아는 것이 맞는지 틀린 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분명히 책이나 뉴스에서 그렇게 봐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시 가서 확인하면 다를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대화나 회의를 할 때 되도록 말하지 않고 들으려고 해요.
또 한 가지는 제가 의견을 내도 제 생각대로 실행이 안 되더라고요. 제가 무슨 힘이 그렇게 대단하게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힘써도 안 바뀌어요. 권력이 있는 사람이 말을 해야 바뀌는 것을 많이 봐서 이제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하기가 싫어졌어요.(말을 해서 뭐가 제대로 바뀌어야 말 할 기운이 나죠.)
회의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 그야말로 답정너인 거예요. 그러니 제가 말한다고 바뀌겠나요?
나이를 먹을수록 젊을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좌절도 하고 상처도 받으면서 또 인정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슬프게만 생각하지도 않아요. 알았던 것들도 깜박하기도 하고 한 시간 전에 읽었던 내용도 기억이 안 나니 일부러 노력을 안 해도 아는 척을 안 하게 되니 전투력이 사라져 다툼이 줄었어요.
이전에는 '네가 맞다, 내가 맞다.' 하며 열띠게 토론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반대입니다.'라고 적극적으로 말했어요. 그러면 몇몇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기도 했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요.
이제 더 이상 저는 삼척동자는 안 하려고 합니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다 안 하고 모르는 척, 그동안 몰라서 용감했던 나를 반성하며 동시에 열심히 전투한 나를 칭찬도 해 주고요.
episode 1.
"선생님, 원어민교사 관련하여 000000 이거, 9월에 안 하셨어요."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바로바로 일처리를 하는 나의 성격상 했을 것 같았지만 요즈음 나는 나의 기억력을 믿지 않는다. 이전의 나라면 바로 "아니에요. 그거 했을걸요." 했겠지만 말이다.
"아, 그래요? 제가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바로 확인을 했는데 9월에 내가 한 것이 맞았다.
"계장님, 그거 제가 9월에 했어요. 한 거 캡처해서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어머, 그래요? 잠시만요...... 선생님, 진짜 9월에 한 게 있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의 기억을 믿지 않고 있으며 더욱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