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나는 체육대회

나는 운동회가 싫었다.

오늘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 체육대회 날이다. 요즘은 전체 학년이 같은 날에 한 번에 하지 않고 학년별로 날짜를 잡아서 따로 한다. 뭐 그래도 여전히 작은 시골학교는 전교생이 한 날에 운동회를 하고 운동회가 또 그 마을의 큰 행사이기도 해서 마을 사람들도 학교로 와서 게임도 하고 급식실에서 잔치국수도 먹는다.

하여튼 현재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한 학년에 1반부터 8반까지 있고 운동장은 학급 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아서 큰 학교답게 학년별로 다른 날에 체육대회를 한다.(요즘은 운동회보다는 소규모 체육대회가 대세이다.)

어느 해는 지역 종합운동장에서 하고 어느 해는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데 그게 이유가 있다. 학교 예산이 충분하면 종합운동장, 예산이 없으면 학교운동장에서 하는 것이다.

학년 당 여덟 반이 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까지 가려면 버스를 임차해서 가야 하는데 여덟 대의 버스를 빌리는 데 임차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는 학교 예산이 마땅치 않은지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출근을 하는데 아침부터 레크리에이션 업체가 오디오장비와 게임도구들을 운동장에 펼쳐 놓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운동회 전 날에는 교사들이 저녁 늦게까지 옥상이나 조회대에 노끈을 연결하여 운동장에 만국기를 걸어 놓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아이들이 할 게임을 준비하고 동요도 크게 틀어놓았다. 즐거운 노랫소리를 벗 삼아 학교 정문에는 솜사탕을 포함한 갖가지 먹을거리와 장난감이 펼쳐졌고 구경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나는 이런 풍경이 왜 이렇게 좋은지(남편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늙어서 그렇다나 뭐라나 남편답게 남편스러운 말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운동장에 만국기를 걸만한 농구대나 기둥이 없어 만국기를 설치할 수가 없고(시설 안전문제) 동요도 틀어 놓지 않는다. 동요를 크게 틀어놓았다가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학교 옆 아파트와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도 민원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급별로 단체티를 입고 신나게 복도를 걷는다. 어느 반은 Korea Army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어느 반은 맥도널드 로고가 있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었다. 또 어느 반 티셔츠에는 '멀바?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반별 티셔츠에 꽤 자부심 가진다.

아침부터 신난 아이들은 서로 '선블록을 얼굴에 발랐네, 못 발랐네.' 하며 들뜬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갖가지 게임을 즐기면서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유머와 장난에 아이들도 모처럼 실컷 웃는다. 백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청팀 중의 몇 명이 눈물을 흘린다. '줄다리기는 어쩔 수없다. 백팀에 천하장사들이 많은 걸 어쩌겠니.' 달래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벌게진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금세 행복이 묻어난다. 역시 아이들의 단순함이란!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이럴 때 나는 초등교사라는 이 직업이 감사하다. 병원을 가지 않아도 약을 먹지 않아도 나의 어두운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나와 같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과 지내는 직업을 추천하고 싶다. 굳이 학교라는 곳 말고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많으니까.


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30년 전이니 학생 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 많은 학생들이 한 날에 모두 모여 운동회를 했으니 운동장이 꽤 넓었을 것이다.

아직도 운동회를 싫어했던 나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도 2학년에서 3학년쯤 인 것 같은데 한복을 입고 남녀 짝이 되어 여자가 앉아 있고 남자가 뒤에 서서 서로 고개를 돌려 마주 보며 춤을 추는 단체 무용을 했다.

부모들은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 사이사이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자녀를 발견하면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띄우며 사진을 찍었다.

예상했겠지만 내 사진을 찍으러 내 앞에 온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까짓 사진은 솔직히 별 거 아니었다. 혹시 미리 사진을 찍었거나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었다.


내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으레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 터트리기 이후였다. 운동장 한편에 치킨이며 바나나와 갖가지 과일, 심지어 김밥과 잡채까지 돗자리에 펼쳐 놓고 먹는 다른 가족들을 보는 것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에 비해 나는 할머니 손에 있는 보자기를 건네받아 할머니와 교실로 들어왔다. 보자기 안에 들어있는 변변찮은 음식을 꺼내 먹는 것도 싫었지만 실은 누구에게는 흔한 그 돗자리가 없어서 교실에서 밥을 먹 것이 창피했다.(그때는 돗자리 없는 게 그렇게 창피했다.)

다행히 교실엔 운동장보다 사람이 적었는데 하필 나의 음식을 불쌍하게 본 한 식구가(누군지도 모르는) 나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권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알량한 자존심이 있는지 '배불러요.'라는 말로 거절했다.


그 옛날의 불우했던 나의 마음은 지금의 아이들로 인해 치유되고 있다. 때때로 아이들이 내뱉는 황당하지만 그래서 더 웃긴 말들이 나를 '빵' 터지게 하곤 한다. 담임교사가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해 주는 아이들이 있고 담임교사가 아플 때는 병원에 가라고 걱정하며 위로해 주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큰 치료제가 된다. 미술치료, 상황극 치료, 약물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작지만 소중한 나의 월급과 더불어 때때로 웃음과 눈물을 주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나는 오늘도 행복한 사람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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