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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Jul 15. 2024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되게 중요하지도 않지만 안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얼굴은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서 큰 지렁이와 실지렁들이 미간과 팔자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결혼하기 전, 미인은 아니었지만 키가 아담하고 얼굴이 귀염상이라 인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인기는 바라지도 않지만 늙어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이 나이에 그때의 얼굴과 몸을 가지면 어떨까 잠깐 상상했는데 그것도 많이 어색하다.

  20대, 30대를 그리워하면서 '그때는 귀엽고 인기 좀 있었는데...'라며 지금의 나를 비하하 나이 듦을 한탄하다니... 하, 이 어리석음 가득한!


 구차하지만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내가 이렇게 외모에 집착하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예전에(어리고 귀여웠을 때)는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것 같다. 아니, 분명 친절했다. 마트에서, 영화관에서, 백화점에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내가 묻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하고  사소한 나의 물음에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학교에서 동료교사들의 친절한 말과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 친절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때는 원래 그런 거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릴 때의 나보다 더 예의 바르고 성숙해졌건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보다 확실히 덜 친절해졌다. 애써 미리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묻는 말에 대답하는 직원의 얼굴 귀찮음이 묻어 난다.

 처음에는 이런 대접에 당황하고 민망하여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곤 했다. 그러나 처음이 그렇지 여러 번 이런 '덜 친절', 혹은 '불친절'을 겪으니 내성이 생겼다. 그때 느꼈던 기분과 그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를 남편에게 흉보는 것으로 증을 풀면 그만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지 않은가! 몇 번, 종종, 아니 자주 '덜 친절'을 경험하니 이제는 친절한 언행을 받았을 때 감동을 느끼고 감사함을 끼게 되었다.

 아! 그때였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 원피스에 구두에 화장도 곱게 한 날, 이왕 좀 꾸몄으니 백화점에 들러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직원들이 나의 묻는 말에 얼굴 한가득 친절한 미소로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 친절에 감동받아 립스틱을 기분 좋게 하나 샀다.

 그리고는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 생선을 보는데 남자직원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오징어를 몇 마리 사는데 서비스라고 바지락을 몇 개 넣어주고 묻지도 않은 '생선요리 맛있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겉모습의 중요성을 몸소 달았다. 


  여기서 남자들만 여자의 외모를 보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쁜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괜히 탈코르셋이나 외모강박, 외모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심지어 아이들도 예쁜 선생님을 좋아한다.(물론 예쁜데 불친절하면 싫어하겠지만.)

 교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선생님, 예뻐요.', '선생님, 20대 같아요.'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가 말이다.

 내가 예쁘다는 아이들의 말은 거의 거짓말이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아이들이 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오늘은 자유시간을 달라거나 시험을 다음 주로 미뤄 달라거나 할 때 종종 예쁘다는 립서비스를 한다.)

 심지어 1학년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무조건 예쁘다고 한다. 원로선생님이 1학년 담임을 하셨을 때 원피스를 자주 입으시고 머리에 리본 핀이나 리본 밴드를 하셨다.

  어느 날, 그 반 아이들이 급식실에서 '우리 반 선생님은 공주 같아.'라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나이 든 선생님이어도 곱게 단장하시고 출근하시니 아이들 눈에도 예쁘게 비췄 것이다.

 출근하는 이유가 또 늘었다. 예쁜 옷 화장품을 사서 출근하기 싫은 날에 새로 산 예쁜 옷을 입어야겠다. '이 옷 입고 가면 오늘도 아이들이 예쁘다고 해 줄라나?'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럼 신기하게도 출근할 맛이 난다고나 할까!



 어느 글에서 보았다.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다. 그래서 어느 날엔 나이에 안 어울리게 아이유가 입었다는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뉴진스가 샀다는 분홍색 핸드폰 케이스를 사기도 한다.

 할머니가 되어도 원피스를 입고 분홍색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카페에 갈 것이다. 그리고 키오스크로 시그니처 음료를 주문한 다음 선글라스를 쓰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것이다.

 힙한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면 나중나중에 그 카페 야외테이블, 거기! 선글라스를 쓰고 시그니처 음료를 먹고 있는 나를 보러 오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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