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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May 13. 2024

돈 벌어야지. 길게~

 지금까지 꾸준히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이 나이 먹도록 모아 놓은 돈이 없다. 여전히 대출을 갚고 있고 저축은 꿈도 못 꾸며(남편은 대출 갚는 것이 저축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돈을 버는 족족 쓰느라 바빴으니 돈이 모일리가 없지 싶다. 더군다나 몇 년 전에 주식으로 손해 보고 또 몇 년 전에 고점에 산 아파트를 저점에 팔아 오 천만 원 손해를 보았다. 그러니 내 통장은 잔고가 '0'원이다.

 그런데도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맛있는 거 다 사 먹고, 좋다는 곳은 다 놀러 다니며 종종 문화생활도 즐기며 살았다. 그렇게 살며 교사라는 나의 직업에 만족하고 삶을 즐기던 어느 날, 교사라는 직업이 싫어졌다.

 생각해 보니 마트를 갔다 온 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된장찌개에 넣으려고 호박을 집었는데 한 개에 3,000원이 넘는 가격표를 보고 알뜰하게 살림하는 사람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양 '물가가 많이 올랐네.' 누구나 아는 말을 쓸데없이 내뱉으며 호박을 내려놓았다.(나의 모습 에서 보던 남편은 '풋'하고 실소를...)

 남편은 호박을 넣어야 맛있다고 사자고 했지만 호박전도 아니고 된장찌개에 넣을 호박인데 굳이 안 넣어도 된다고 설득하였다. 대신에 자신의 몸값을 겸손하게 낮춘 팽이버섯을 감사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넣다.

 그다음 아침마다 갈아먹는 과채소 주스에 필요한 사과를 보러 과일코너에 갔다. 하지만 한 봉지에 만 오천 원 정도 하는(대략 사과 한 알에 2,500원 꼴) 사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꽤 비싼 가격에 살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잘 먹고 건강한 것이 병원비 줄이는 거다.'라며 사과 한 봉지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나서야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동안 먹고 싶은 과일은 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호박 하나, 사과 하나 사는 것에 주저하니 돈을 못 모은 나를 반성하기보다는 작고 소박한 나의 월급에 짜증이 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왕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주변에 과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월 천을 번다고 했다. 그래? 나는 초등이니까 과외보다는 공부방? 한 수업에 10명이면? 하루에 수업 5개를 개설해도 월 천이 안 되는데... 그렇다면 다른 일은 뭐가 있을까?

 요즘에는 아이들이 책을 안 읽어 책 읽는 학원에 애들이 북적북적하다는데 책 읽는 학원을 해 볼까? 일주일에 세 번하고 수강료를 한 달에 20만 원 받으니 60명이면 천 이백만 원이다. 상가에 월세로 들어가서 월세로 150만 원을 내고 보조강사 월급 나가는 거 빼면 얼추 천만 원이 된다. 교사를 그만두고 학원강사로의 도전을 할까 싶어 직장 동료교사와 의논도 하고 아들이 다니는 학원 원장님한테도 물어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런데 계산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머릿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나의 모습 참 징그러워졌다. 그리고 방학의 달콤함을 포기하기에는 그보다 더  꿀 같은 날들은 없을 것 같아서 포기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옆에서 교사 그만두는 것을 극구 말리는 남편 덕(?)에 교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하긴 남편이 말렸든 말리지 않았든 나도 확 내지르기에는 겁이 났다. 그럼 이제는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내내 나의 직업을 혐오하며 우울하게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 직업의 장점을 써 보기로 했다.

 1. 매 달 제 날짜에 월급이 들어온다.(비록 돈이 통장에 스쳐갈지라도)

 2. 방학이 있어서 재충전의 시간이 있다.(이런 말이 있다. 아이들이 폭동 할 때쯤 방학이 오고 엄마들이 폭동 할 때쯤 개학이 온다고.)

3. 아이들과 있으면 즐겁다. 때로는 답답하거나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즐겁다. 아이들한테 얻는 기운과 에너지가 나를 힐링시켜 주기도 한다.

4. 급식이 맛있다. 물론 급식이 맛없는 학교도 있지만 내가 근무한 학교는 그런대로 맛있었다. 지금 다니는 학교는 진짜 맛있고!

5. 나만의 공간이 있다. 아이들이 하교하면 조용한 교실에서 다음 날 수업 준비도 하고 책도 읽고 연수도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집에 가면 가족을 챙기느라 늘 북적대니 나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

쓰고 보니 좋은 점이 많다. 물론 단점도 있지만 이 많은 장점들로 단점을 상쇄시키며 즐겁게 다녀야겠다.


 대학교 다닐 때 겨울에도 기름을 아끼려고 보일러를 잘 안 틀었다. 차가운 냉기가 있는 방에 들어가기 싫어 여기저기(따뜻한 도서관이나 친구 집)를 돌아다니다 자취방에 들어가서는 얼른 전기장판 속으로  들어가서 이불로 온몸을 덮었다.(그때의 습관으로 아직도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당겨 덮어야 포근함이 느껴진다. 더워서 곧 이불을 걷어내지만...) 아침에는 수도가 얼어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서 세수를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어떤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온기가 느껴져 바로 전기장판 속으로 안 들어가도 되고 집에서 두꺼운 양말을 신지 않아도 된다. 샤워기를 틀면 바로 온수가 나오고 욕조에 물을 가득 담아 반신욕을 해도 기름값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제 화장품을 사면 공짜로 주는 샘플을 아껴 쓰지 않아도 되고 값이 좀 나가는 원하는 화장품을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아들이 치킨이나 피자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돈 생각 없이 사 줄 수 있다.

 아들한테 나이키 운동화를 사 주고 금요일 저녁에 치킨과 맥주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니 오래오래 벌 수 있을 때까지 돈을 벌어야겠다. 정년을 하고 할머니가 되어도 용돈 정도는 벌며 살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 누추한 방에서 찬물로 씻고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신세가 되어 아들한테 짐이 되는 엄마가 되기  싫다.

 돈 벌어야지. 길게~ 길게 벌 작정이니 지금은 좀 써도 좋다. 마사지도 받고 피부과도 가고 운동도 다니며 잘 살고 있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 '젊을 때 여행 다닐 걸, 운동할 걸, 하고 싶은  거 할걸.' 이렇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잘 살고 싶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 형편에 맞게 하고 싶은 거 하며 살 것이다. 그러려면 돈 벌어야 한다.

 그리고 참, 물가가 비싸 사람들이 이런저런 재테크를 하는데 그중의 하나로 파테크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파가 너무 비싸서 마트에서 사는 대신에 집에서 키워 필요할 때마다 잘라먹는다는 것이다. 호! 그렇다면, 파테크! 나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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