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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Apr 26. 2024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이 무식한 게 아닐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친하던 안 친하던, 싫어하던 안 싫어하던 되도록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대하기로!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40년 넘게 불합리한 일을 보면 쓴소리를 내뱉고 (어느 드라마 대사에서 그랬던가. '나도 누군가에겐 X새끼일 수 있다.'라고, 내가 생각할 때는 불합리한 일 그 사람이 생각할 땐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안 친한 사람 앞에서는 잘 웃지를 못했는데 결심 한 번에 곧장 흐린 눈을 하고 미소를 장착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다짐을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끔씩 싫은 티를 냈거나 짜증을 낸 후에는 이전과는 달리 반성을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새 다짐과 함께! '다음엔 진짜 못 본 척, 못 들은 척해야지. 그리고 웃어야지.'


 나는 올해 담임을 안 하고 영어전담교사를 한다. 교사생활을 하며 여러 번 전담(담임을 안 맡고 한 교과를 맡아 여러 반을 가르치는 것)을 희망했지만 그때마다 '우주초태양반오로라 선생님은 담임을 하셔야 돼요.'라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담임만 했다.

 물론 담임을 하면 좋은 점도 많다. 학급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부심을 가지고 보람도 많이 느낀다. 또 때때로 나의 친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아이들이 주는 순수함과 엉뚱함이 치료제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담임 힘든 점도 많다. 담임으로서의 고유 업무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아이들의 다툼, 학교폭력 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꼭 전담을 해보고 싶었다. 안 가본 길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로!

 내가 맡은 학년은 5학년이고 1반부터 7반지 수업을 들어간다. 노란 바구니에 영어교과서, 학습지, 약간의 젤리(아이들에게 줄 보상)를 넣고 각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고 있다.

 3월에는 약 200명의 학생들 이름을 못 외워 각 학급의 출석부를 출력해서 들고 다니며 외웠다. 이름을 빨리 못 외워 답답하니 수업 시간에도 얼굴과 이름을 비교하며 몇 번씩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확인했다.

 담임을 했을 때는 28명 정도의 아이들을 매일 보기 때문에 금방 외웠는데 5학년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3번 들어가고 학생 수도 많아서 잘 안 외워졌다.

 이름도 어찌나 비슷한 이름이 많은지.... 여학생의 경우에는 채윤, 채연, 채원, 시은, 은서, 서은이가,  남학생의 경우에는 연우, 지후, 윤, 지우, 시우 등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다.

 예를 들어 3반에 들어가서 지우를 부르면 "저, 지우 아닌데요. 지후인데요." 하거나 6반에 들어가서 채원이를 부르면 다른 아이가 "제가 채원이고 쟤는 은서예요."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구나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아이들 경우에는 이름외우는데 제일 오래 걸렸다.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 눈이랑 머리스타일로 외우는데 머리스타일이 비슷한 여자 아이들은 헷갈려서 잘 안 외워졌기 때이다.

 이름을 알아야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학생들 이름을 바로바로 불러 집중을 시킬 수 있다. 20년 전의 교실이나 지금의 교실변하지 않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4월 중순이 되자 아이들 이름을 거의 다 외웠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필요하면 바로바로 이름을 불러 집중을 시키며 수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을 하다가 딴짓하는 아이에게는 "ㅇㅇ야, 여기 봐.", "집중!", "어? 여기 안 보네?", "대답해 봐! 집중 안 하고 있었어!"라고 말한다.  아직 덜 친한 학기 초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이런 말에 아이들은 성을 내거나 삐치 않는다.(린 것이 창피해서 우는 아이들은 간혹 있다.)

 교사가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니다. 나는 얼굴표정도  말투도 단호하다. 결코 자상한 얼굴표정이거나 친절하게 들리는 말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나의 단호한 모습 거부감을 안 느끼고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일까? 아마도 나와 래포가 잘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들어가면 웃는 얼굴로 크게 인사한다. "Good morning.", How are you feeling today?" "Today's lunch menu is 한우마라탕 and 조각케이크니까 힘을 내서 Let's start."(비루한 나의 영어실력 같으니라고!)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말과 행동을 한다. 영어수업을 지루해하거나 영어가 어려워서 아예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위해 말과 행동으로 재미를 주어 수업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할머니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할머니 역할도 하고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어 아저씨 역할도 하며 상황극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나를 친근하게 생각한다. 나는 또 아이들의 리액션에 흥이 나서 더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빅재미를 준다.

 물론 가끔씩 이런 나의 모습에 현타가 올 때도 있다.(초딩언어: 안물안궁, 어쩔티비로 말추임새를 하며 역할극을 하는 나의 모습을 남편이 본다면?! 우웩.) 하지만 나를 보고 재밌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함까지 느낄 정도이다.

 나와 아이들은 웃음으로 래포를 형성했기 때문에 나의 잔소리나 지적을 달게 수긍하는 것 같다. 물론 기가 센 아이거나 평소 말 안 듣기로 소문난 아이들은 한두 번 삐딱하게 굴거나 버릇없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때뿐, 웬만하면 우리의 웃음에 스며들어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의 세상과 어른들의 세상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재미있고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는 사람보다 옆에 있으면 같이 즐거워지는 사람을 더 좋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불쾌한 말을 하면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더 불쾌한 말로 맞받아치지 않기로 했다. (옛날에는 더 불쾌한 말로 상대방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른 미소를 장착하고(살짝 입이 파르르 떨리더라도 민망해하지 말고!) 나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도 상대방이 계속 그러면 그다음의 상황은 상대방의 몫으로 넘기기로 했다. 웃는 얼굴로 정중하게 말하는데 계속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불쾌함은 사람의 것으로 남기고  불쾌함 내가 갖고 와서는 된다.

 무식한 사람과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당연히 무식한 사람이 이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자신의 행동이 결코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 때문에  싸움에서 이긴다.  휴~어쩔 수 없다.

 자, 이제 웃자. 웃으며 잘 말하는데도 상대방이 무례하게 군다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자.

 씩씩거리며 흥분하는 무식한 사람과 무슨 대화를 더 하겠는가. 그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알맞은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나의 정신건강을 지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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