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답니다. 친하던 안 친하던, 싫어하던 안 싫어하던 되도록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대하기로요!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지요. 40년 넘게 불합리한 일을 보면 쓴소리를 내뱉고 (어느 드라마 대사에서 그랬던가. '나도 누군가에겐 X새끼일 수 있다.'라고, 내가 생각할 때는 불합리한 일을 그 사람이 생각할 땐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안 친한 사람 앞에서는 잘 웃지를 못했는데 결심 한 번에 곧장 흐린 눈을 하고 미소를 장착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런 다짐을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끔씩 싫은 티를 냈거나 짜증을 낸 후에는 이전과는 달리 반성을 한다는 것이에요. 더불어 새 다짐과 함께! '다음엔 진짜 못 본 척, 못 들은 척해야지. 그리고 웃어야지.'
선생님은 올해 몇 학년을 맡고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담임 대신에 전담을 맡으셨나요? 저는 교사생활을 하며 여러 번 전담(담임을 안 맡고 한 교과를 맡아 여러 반을 가르치는 것)을 희망했지만 그때마다 '우주초태양반오로라 선생님은 담임을 하셔야 돼요.'라는 말에 주야장천 담임만 했어요.
그런데 올해 저의 간절한 사정에 5학년 영어 전담을 맡게 되었어요. 제가 들어가는 학년은 5학년이고 1반부터 7반까지 수업을 들어가요. 노란 바구니에 영어교과서, 학습지, 약간의 젤리(아이들에게 줄 보상)를 넣고 각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하고 있지요.
3월에는 약 200명의 학생들 이름을 못 외워 각 학급의 출석부를 출력해서 들고 다니며 외웠어요. 이름을 빨리 못 외워 답답하니 수업 시간에도 얼굴과 이름을 비교하며 몇 번씩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확인했어요.
담임을 했을 때는 28명 정도의 아이들을 매일 보기 때문에 금방 외웠는데 5학년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3번 들어가고 학생 수도 많아서 잘 안 외워졌어요.
이름도 어찌나 비슷한 이름이 많은지.... 여학생의 경우에는 채윤, 채연, 채원, 시은, 은서, 서은이가, 남학생의 경우에는 연우, 지후, 윤우, 지우, 시우 등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어요.
예를 들어 3반에 들어가서 지우를 부르면 "저, 지우 아닌데요. 지후인데요." 하거나 6반에 들어가서 채원이를 부르면 다른 아이가 "제가 채원이고 쟤는 은서예요."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더구나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름을 외우는데 제일 오래 걸렸어요.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 눈이랑 머리스타일로 외우는데 머리스타일이 비슷한 여자 아이들은 헷갈려서 잘 안 외워졌기 때문이에요.
20년 전의 교실이나 지금의 교실이나 변하지 않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학생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딴짓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즉시 이름을 불러서 집중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빨리 외우려고 노력했어요.
4월 중순이 되자 아이들 이름을 거의 다 외워서 수업 시간에 바로바로 이름을 불러 집중시키며 수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수업을 하다가 딴짓하는 아이에게는 "ㅇㅇ야, 여기 봐.", "집중!", "어? ㅇㅇ야, 여기 안 보네?", "ㅇㅇ, 대답해 보세요. 대답 못하네. 집중 안 하고 있었어!"라고 지적합니다.
아직은 덜 친해진 학기 초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런 말들에 아이들은 화를 내거나 삐치지 않아요.(틀린 것이 창피해서 우는 아이들은 간혹 있었어요.)
교사가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해서라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아니에요. 저는 얼굴표정이나 말투가 엄격하고 단호한 편이거든요. 영어선생님 무섭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지요.
저는 숙제검사도 꼼꼼히 해서 안 한 학생은 끝까지 시켜요. 또, 고집을 피우는 학생이 있으면 고집을 꺾기 위해 시간을 애써 투자하기도 해요. 그래서 한 번도 자상한 선생님이란 소리는 못 들어봤어요.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저의 단호한 모습에 거부감을 안 느끼고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일까요? 아마도 교사와 학생 간의 래포가 잘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의 농담과 유머를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해요. 저는 교실에 들어가면 먼저 웃는 얼굴로 크게 인사합니다.
"Good morning.", How are you feeling today?" "Today's lunch menu is 한우마라탕 and 조각케이 크니까 힘을 내서 Let's start."(비루한 나의 영어실력 같으니라고! 요)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말과 행동을 해요. 영어수업을 지루해하거나 영어가 어려워서 아예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위해 말과 행동으로 재미를 주어 수업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지요.
심지어 할머니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할머니 역할도 하고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어 아저씨 역할도 하며 상황극을 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저를 친근하게 생각해요. 아이들의 리액션에 흥이 난 저는 더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빅재미를 줍니다.
물론 가끔씩 이런 저의 모습에 현타가 올 때도 있어요.(초딩언어: 안물안궁, 어쩔티비로 말추임새를 하며 역할극을 하는 나의 모습을 남편이 본다면?! 우웩.) 하지만 저를 보고 재밌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함까지 느낄 정도예요.
저와 아이들은 웃음으로 래포를 형성했기 때문에 저의 잔소리나 지적을 달게 수긍하는 것 같아요. 물론 기가 센 아이거나 평소 말 안 듣기로 소문난 아이들은 한두 번 삐딱하게 굴거나 버릇없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때뿐, 웬만하면 우리의 웃음에 스며들어 미소를 짓거나 피식거린답니다.
아이들의 세상과 어른들의 세상은 많이 다르겠지요. 하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재미있고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할 거예요.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는 사람보다 옆에 있으면 같이 즐거워지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지 않겠어요?!
상대방이 불쾌한 말을 하면 이에 질세라 더 불쾌한 말로 맞받아치지 않기로 했어요. (옛날에는 더 불쾌한 말로 상대방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른 미소를 장착하고(살짝 입이 파르르 떨리더라도 민망해하지 말고!) 저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상대방이 계속 무례하게 군다면 그다음의 상황은 상대방의 몫으로 넘기는 것이지요.
웃는 얼굴로 정중하게 말하는데 계속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무식한 사람과 싸우면 누가 이기겠어요? 당연히 무식한 사람이 이기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자신의 행동이 결코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최고 당당하고 목소리도 우렁차서 늘 싸움에서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제 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불쾌함은 그 사람의 것으로 남기고 저는 그 자리를 떠납니다.
자, 이제 웃읍시다. 웃으며 잘 말하는데도 상대방이 무례하게 군다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납시다.
씩씩거리며 흥분하는 무식한 사람과 무슨 대화를 더 하겠어요. 그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알맞은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저의 정신건강을 지키기로 합니다.
episode 1.
한 학생이 소리 높여 말했다. "선생님, 00 이가 다음 시간 영어라니까 개에바라고 했어요." 나는 개에바의 정확한 의미는 몰랐지만 부정적이라는 것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개에바? 자, 개에바영어시간입니다. 개에바노트에 쓰세요. 개에바칠판 보세요. 개에바연필 들고 확인문제 풀어요. 개에바 영어 수업 끝났어요. "Have a good day. bye." 그날 개에바라고 말한 학생의 귀에서는 피가 날 정도였다.
하~~ 웃기지도 화나지도 않는 영어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