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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Aug 05. 2024

오늘은 신나는 체육대회

나는 운동회가 싫었다.

 오늘은 우리 학교 체육대회 날이다. 요즘은 전체 학년이 같은 날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학년별로 각각 다른 날에 한다. 그런데 금도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 운동회 날은 그 마을의 잔칫날이기도 해서 한 날에 전교생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게임도 하고 학교에서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여튼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한 학년에 1반부터 8반까지 있는데 운동장은 학급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아서 학년별로 날짜를 정해서 한다.

 어느 해는 지역 종합운동장에서 하고 어느 해는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데 그게 이유가 있다. 학교 예산이 충분하면 종합운동장, 예산이 없으면 학교운동장에서 하는 것이다.

 학년 당 여덟 반이 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까지 가려면 버스를 임차해서 가야 하는데 여덟 대의 버스를 빌리는 데 임차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는 학교 예산이 마땅치 않은지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기로 결정이 됐고 아침부터 레크리에이션 업체가 오디오장비와 게임도구들을 운동장에 펼쳐 놓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운동회나 체육대회 날에는 전날부터 교사들이 힘을 모아 옥상이나 조회대에 노끈을 연결하여 운동장에 만국기를 걸어 놓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김밥 한 줄을 먹은 후 아이들이 할 게임을 준비하며 동요 크게 틀어놓았다. 즐거운 노랫소리에 맞춰 학교 정문에는 솜사탕을 포함한 갖가지 먹을거리와 장난감을 파는 상인들이 분주하게 꼬마손님들 맞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운동장에 만국기를 걸만한 농구대나 기둥이 없어 만국기를 설치할 수가 없고(시설 안전문제) 동요도 틀어 놓지 않는다. 동요를 크게 틀어놓다가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우리 집까지 크게 들른다. 소음 때문에 할 일을 못한다.'며 가정집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도 민원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청군과 백군을 구분하느라 아이들은 파란 옷에 파란 헤어밴드, 흰 옷에 흰색 헤어밴드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별로 특색 있는 단체티를 입는다. 어느 반은 Korea Army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어느 반은 맥도널드 로고가 있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었다. 또 어느 반 티셔츠에는 '멀바?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반별 티셔츠에 꽤 자부심 가진다.

 아침부터 신난 아이들은 서로 '선블록을 얼굴에 발랐네, 못 발랐네.' 하며 들뜬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갖가지 게임을 즐기며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유머와 장난에  아이들도 모처럼 실컷 웃는다. 백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청팀 아이들 중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다. '줄다리기는 어쩔 수없다. 백팀에 천하장사들이 많은 걸 어쩌겠니.' 라며 우는 아이들을 달랜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점심을 먹고 벌게진 얼굴을 시원하게 달래줄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금세 행복이 묻어난다. 역시 아이들의 단순함이란!


 아이들을 보니 나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이럴 때 나는 초등교사라는 이 직업이 감사하다. 병원을 가지 않아도 약을 먹지 않아도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에 나의 어두운 과거가 힐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같이 어린 시절의 힘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직업을 추천하고 싶다. 굳이 학교라는 곳 말고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많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30년 전이니 학생 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 많은 학생들이 한 날에 모두 모여 운동회를 했으니 운동장이 넓었나 보다.

  아직도 운동회를 싫어했던 나의 어린 마음이 선명하다. 몇 학년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도 2학년에서 3학년쯤일 듯하다. 한복을 입고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어 남녀 짝이 되어 여자가 앉아 있으면 남자가 뒤에서 여자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 서고개를 돌려 마주 보는 동작이 있는 춤을 추었다.

 부모들은 자녀를 찾으러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 사이사이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자녀를 발견하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띄우 사진을 찍었다.

  예상했겠지만 내 사진을 찍으러 내 앞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까짓 사진은 솔직히 별 거 아니었다. 혹시 미리 사진을 찍었거나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내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 것은 으레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 터트리기 이후이다. 그 옛날에도 치킨을 포장해 오고 바나나와 갖가지 과일, 심지어 김밥과 잡채까지 펼쳐 놓은 돗자리를 부러워하며 교실로 들어가 할머니 손에 있는 보자기를 건네받았다.  보자기 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주먹밥과 고춧가루 양념으로 대충 버무린 단무지뿐이었다. 운동장에 차려진 화려한 음식에 비더없이 초라한 할머니의 음식을 먹는 것도 싫었지만 실은 돗자리가 없어서 교실에 가서 밥을 먹  수치스러웠다.(그때는 돗자리 없는 게 그렇게 창피했다.)

 다행히 교실엔 운동장보다 사람이 적었 하필 나의 음식을 불쌍하게 식구가(누군지도 모르는) 나에게 과자와 음료수를 권했. 어린 나이에도 알량한 자존심이 있는지 '배불러요'라는  거절을 해 버렸다. 물론 건조한 나의 대답비해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느꼈지만 말이다.


그 옛날의 아팠던 나의 마음은 지금의 아이들로 인해 치유되었다. 때때로 아이들이 내뱉는 황당하지만 그래서 더 웃긴 말들이 나를 '빵' 터지게 .  담임교사가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해 주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치료제가 된다. 미술치료, 상황극 치료, 약물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지만 소중한 나의 월급과 더불어 때때로 웃음과 눈물을 주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나는 오늘도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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