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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품 Jun 28. 2024

L1. 내성발톱의 역습

낌새가 이상할 땐 초기에 바로잡아야 한다.

(지저분한 발가락 얘기입니다. 심약자분들은 주의 부탁드립니다.)

작성 : 2024.01.29


엄지 발가락 수난시대

난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엄지발가락 때문에 고생 아닌 고생을 해왔다. 한동안 엄지발가락이 내성발톱때문에 관리대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오른쪽은 괜찮아지고 왼쪽 발가락이 내성발톱으로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걸까..?) 특히 왼쪽 엄지발가락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살 안쪽에 따로 자라는 뾰족한 발톱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늘 때가되면 아파왔다. 개성도 자립성도 강한 이 작은 발톱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항상 발톱을 자를 때 늘 같이 처리할 수 있는 귀요미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3달에 한 번씩 간단히 처리해주면 되는 해프닝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진…


낌새를 눈치채고도 모른 체하다.

2023년 12월 중순에 일본여행을 계획한 나는 여행 일주일 전부터 왼쪽 발가락에 어떤 더러운 기운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드디어.. 때가 왔군…’

이 뾰족한 귀요미 발톱을 제거하려면 원래 발톱이 충분히 자라야 했는데 여행 전에는 그러질 않았기 때문에 적절한 때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여행 후 제거하면 딱이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에선 매일마다 발바닥에 불날정도로 걸어다니느라 발에 무리가 왔고, 왼쪽 발가락이 점점 따가워짐을 느꼈다. 그래서 비상상황임을 인지하고 임시로 발톱을 깎았으나, 영 시원하지 않고 찝찝했다. 분명히 눈에 보이는 뾰족한 발톱은 제거했는데 왜 발이 편안하지 않은걸까 싶었지만 그땐 여행중이었으니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여행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보일러가 고장나는 바람에 약 일주일정도 다른 곳에서 머물러야하는 상황에 닥쳤다. 가족과 친척 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불편하진 않았지만 기괴한 자세로 발톱을 쑤시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편하진 않았다. 발톱 제거를 위해선 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럴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가족끼리 얘기하거나 티비를 보면서 지냈으니 나 혼자 방에 들어가 30분정도 발톱만 만지작 거릴 순 없었다. 그래서 여차저차 2주정도를 미루게 되었다.


심각해지다.

발톱 때문에 왼쪽 엄지발가락이 따끔거리고 욱신한 느낌을 느낀 지 꽤 지났지만, 늘 나 혼자서 관리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껏 사용했던 일자모양의 발톱깎기를 치우고, 뾰족한 발톱깎기를 새로 장만하여 전투에 나가는 장수처럼 당당히 발톱사이로 입장했다. 그러나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계속 고름은 나오는데 예전에 깎았던 부분엔 이미 살이 차올라 진입조차 불가했다. 내가 내 발톱에게 입뺀을 당한것이다. 큰 배신감을 느낀 나는 진상을(사실 엄지발가락 밑 살을)파헤쳐보기로 마음먹고 눈 꼭 감고(봐야 하니까 사실 감진 않고) 살을 막 파기 시작했다. 항상 살 바로 밑에 귀요미 뾰족 발톱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만 긁어내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걷어낼 수 있는 살을 다 걷어냈음에도 ‘발톱’의 ‘ㅂ’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라라 싶더니 그냥 살을 뜯은 자리에 피만 철철 나서 시야가 가려졌다. 일보 후퇴라 생각하며 다음날, 그다음날, 또 그다음날 계속 텀을 두며 수십번 도전했지만 예전처럼 간단히 해결되질 않았다. 그리곤 계속 고통이 지속됐다. 그러다 결국 2024.01.28 저녁에 엄지발가락 전체를 움직이기 어려워짐을 느끼고 진짜 비상상황임을 느낀 나는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수술을 받다.

피부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사실 난 내 엄지발가락 살 안쪽에 뭔가 뾰족한 발톱이 있음을 예상했다. 그래서 전날 밤까지 ‘이건 100프로 수술이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두려움에 떨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인 수술불가, 절단까지 생각하며 정말 복잡한 걱정들이 많았다. 그렇게 병원을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보자마자 ‘아, 이건 수술해야겠네요’라고 하셨고, 뾰족한 발톱이 안에서 파고들어 살을 찌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가 발톱을 계속 깎았더니 그 자리에 살이 차올라 뾰족한 발톱이 자꾸 밑으로 파고들었던 것이고, 더욱이 최근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 걸어다닐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마 발톱이 더 깊이 들어간 것 같다고 진단해주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는지. 결국 당일 바로 수술을 결정했다. 발가락을 수술하는 건 처음이라 많이 걱정됐다. 그래서 원래 간호사분께 말을 붙이지 않는 스타일임에도 “마취가 많이 아픈가요?”라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네…..”라고 하셔서 걱정이 더 많아졌다. 상처부위를 스치기만 해도 아파죽겠는데 거기에다가 뾰족한 바늘을 깊이 찔러넣는다 생각하니 눈물도 찔끔 났다. 그래서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통이라 생각하고 긴장한 상태로 수술에 들어갔다. 마취를 상처부위 근처 두 세곳에 찌르고 발톱을 약간 들어올렸는데 내가 생각한 만큼 아프진 않았던 것 같다. 고통의 정도를 너무 강도 높게 설정해놓고 상상했다보니, 실제로 마취주사가 덜 아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물론 염증이 너무 심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마취주사가 아프긴 아팠다. 하지만 거품물고 쓰러져서 발악할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난 시각적인 것에 약하다보니 눈을 감고 손을 꽉 쥐었더니 눈물 펑펑 흘릴 만큼 아프진 않았다. 그래서 마취가 끝나자 안심이었고, 맘편히 수술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 과정을 다 봐도 된다고 하셨지만, 내 감각 없는 발을 자르고 상처를 휘젓는 모습을 보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안 보고 싶다 했다. 간호사님도 내가 안타까웠는지 “환자분이 너무 아파서 못 보시겠대요..”라고 대변해주셨다 :)


개운해지다.

수술을 할 때 내 발을 찌르던 뾰족한 발톱을 다 제거하고 그 실체를 의사선생님께서 보여주셨는데 가로 1cm, 세로 1.5cm정도의 뾰족뾰족한 발톱이었다. 그것이 내 발을 그렇게나 깊고 오래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발가락 살을 절개했을 때 그 안에 박혀있는 발톱을 봤는데, 정말 단단하고 두꺼워보이긴 했었다. 아주 예쁘게 나를 찌르고 있었다며 수술이 아주 잘 됐다고 말씀해주시니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수술 직후 하루정도는 왼쪽 발가락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조금 절뚝거렸다. 물도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해서 발을 씻지도 못했다. 욕실 슬리퍼를 신을 때, 신발 신을 때 늘 조심조심 신었고 장애물을 피해 움직이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깨닫다.

발가락 하나가 몸 전체의 이동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내 몸 전체가 이상 없이 성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절대 안전불감증에 빠지지 않고 초기에 해결해야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염증 초기에 치료를 받았더라면 덜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은 것은, 낌새가 묘하게 이상하고 쎄하면 그건 분명 ‘경고’라는 것이다. 본인의 직감을 무시하지 않는 게 중요할 듯 하다.


ps. 피부과 선생님께서 내 피부를 칭찬해주셔서 발가락이 죽도록 아픈 와중에도 잠시 기분이 좋아졌었다. 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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