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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봉칠 Jun 28. 2024

B1. 내 사고방식만 바꾸면 된다

미움받을 용기_기시미 이치로

시작하다.

~ 2023.12.08

반수에 처참히, 혹은 아쉽게 실패한 나는 곧바로 내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스카이가 아닌 문과 미디어 학벌로 어떻게 취업하고 1인분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말이다. 1년이 너무 고통스럽게 날아간 듯한 기분에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스스로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졌다. 친구들 만나기도,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죄송했던 나는 밖에 나가는 일을 점점 줄이기 시작했다. 바깥에 나가 사람들 속에서 걸어가다보면 아무도 내게 말은 안 하지만 "실패자", "무능력한 사람", "한심한 사람"이라고 눈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실은 내 피해의식이었지만)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심한 타격을 받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엄마는 책 [미움받을 용기]를 추천하셨다. 내게 필요한 건 작은 용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아로새기다.

: 마음속에 또렷이 기억하여 두다.


11p. 우리는 미래의 꿈과 목적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다가 만약 미래의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도 던진다. 설사 미래의 꿈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꿈을 위해 희생한 그 숱한 '오늘'은 내 인생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내 반수 생활이 떠올라 마음이 아리던 구절. 독서실에서 혼자 앉아 풀리지도 않는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애쓰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나를 응원하며 될 수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던,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척하고 위로하던 그 시간들이 안쓰럽다. 그것들도 다 내 인생인데 그런 구질구질한 모습은 내 것이 아니라며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 숱한 '오늘'들이 무의미해졌다고 느꼈던 2023년의 11월과 12월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다.


39p. 목적이 먼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불안과 공포같은 감정을 지어내는 거지.

이 책을 관통하는 구절. 결국 핑계다. 그러고 싶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이 자꾸만 나에게 면죄부를 주고 나를 지배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런 수동적인 삶은 살지 않으리.


42p.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거겠지..? 부정을 동력으로 삼는 나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긍정은 낙천과 안주로 흐르기 쉽다고 생각해서 늘 경계한다. 하지만 부정을 동력으로 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도 요즘은 긍정회로를 자주 돌려준다. 두세달 정도를 그렇게 연습하다보니 이젠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이젠 우울한 발라드보다 밝은 사운드의 음악이 좋고,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보다 긍정적인 말을 자주하는 사람을 더 찾게 된다.


110p.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

타인에 대한 열등감을 성공의 연료로 삼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진다. 이상적인 내 모습이 가장 치열한 경쟁의 대상일텐데 왜 쓸데없이 타인을 신경쓰는걸까


177.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게. 그리고 과제를 분리하게.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 냉정하게 선을 긋는 걸세. 그리고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247p. 이상적인 100점에서 감점하지 말고, 0점에서 출발하는 거지. 그러면 '존재'그 자체로 기뻐할 수 있을 걸세.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자기만의 이상적인 모습'을 멋대로 지어내고,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를 내린다네.

이상적인 1,000점부터 설정하고 타인을 마주했던 내모습이 떠오르며 엄청 뜨끔했다. 지금은 여러 군상을 마주하며 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제로에 가깝지만 어린시절 나는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많았다. 조금만 더 나랑 자주 놀아줬으면, 조금만 더 나를 배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었다. 사실 내가 타인에게 해주면 되는 거였던 건데도 말이다.


250p. 일단 다른 사람과, 한 명이라도 좋으니 수평관계를 맺을 것. 의식상에서 대등할 것, 그리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지.


266p. "신이여, 바라옵건데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반수시절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1차 발표 전날 이 말과 비슷한 기도를 드렸다. "신이시여, 바꾸지 못하는 일은 덤덤히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해선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애걸복걸했다. 다음날 계적 1차에 붙어서 날아갈 듯 기뻤다. 그리고 기도할 때 약속드렸듯 면접준비를 정말 알차고 꼼꼼히 했다. 하지만 2차에선 떨어졌다는 안타까운 사실..


294p.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행위의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도 존재의 차원에서는 도움이 된다.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

공헌감이라는 표현이 정말 집약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던 순간에 느낀 오묘한 감정을 한 단어에 응축시킨 느낌이다. 내가 반수하느라 돈도 못 벌고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할 때 엄마의 마음이 공헌감과 맞닿아 있었을까? 그냥 있어줘서 고맙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존재자체가 공헌이라면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307p. 우리 인생은 점의 연속이라네.

인생이 일직선이라고 생각하면 단 한 순간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이 생기는데, 점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듯, 점이 크던 작던 간격이 넓던 작던 결국 모이면 작품이 될테니


309p.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은 '키네시스적 인생', 춤을 추는 인생은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다.

사실 이 말에는 일부 반대를 표하고 싶다.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그대로 '기본'이므로 '심화'과정을 더 밟아야 비로소 충분해진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꿈도 진로도 정하지 못하고 그저 당장에 닥친 과제와 시험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했다. 저 구절이 말하는 것처럼 '난 지금 현재에 집중하고 있으니 괜찮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고3때 제일 후회했던 것은, 진로 방향을 대략적으로라도 설정해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 열심히 한 것에 대해선 칭찬하지만 결국 남은 건 정량적인 성적 밖에 없었다. 정성적요소도 중요한 학종에선 세특의 역할이 큰데, 세특내용이 너무 이것저것 중구난방에다가 실속이 없어서 많이 후회했었다. 현재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을 핑계삼지 않는 태도가 중요할 듯 하다.


작성 : 20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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