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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커피 Feb 13. 2024

소네치카 · 스페이드의 여왕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문학동네


그토록 사랑하는 집, 이유도 모른 채 통나무 더미로 허물어야만 하

는 철거를 앞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긴 주름이 가득한 볼을 타고 눈

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순식간에 말라버린 입술로 속삭이듯 말했다.

 "벌써 오래오래 전에 벌어질 일이었어...... 나도 늘 알고 있었잖아,

이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단 걸......"

 집으로 돌아오는 십 분 동안 소네치카는 행복했던 십칠 년간의 결

혼생활이 모두 끝났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는 것을 깨달았다.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하긴

그 사람이 언제 다른 사람에게 속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나 할

아버지에 가까웠지. 수줍음 많은 자신의 혈통을 하나도 닮지 않은 딸

타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소냐의 것이 아니었다. 밤이면 한숨짓고

신음소리를 내듯 삐거덕거려 마치 해가 갈수록 낯설어지는 자기 몸을

느끼는 늙은이 같았던 그녀의 집도 이제는 소냐의 것이 아니었다. p.76




 소네치카는 도서정보 전문학교를 마치고 도서관의 지하보관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자 상사의 권유로 대학교 러시아 문학부에 입학하기로 결심한 그 해에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으로 그녀의 가족들은 피란생활을 해야 했고 그녀의 유일한 희망의 공간은 도서관 지하실이었다.

 47세인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는 전설의 사나이었다. 1930년대 초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돌아왔고 보호관찰하에 공장관리부에서 화가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고 이용하는 사람이었고, 여자라는 마르지 않은 원천으로부터 적잖은 자양분을 얻으면서도, 의존적이 되는 것을 조심했다. 무언가를 앗아가는 사람에게는 역설적으로 관대하고 퍼주는 사람에게는 끔찍이도 잔인한 여자의 본성에 자신이 먹잇감이 될까봐 두려워했다. p.16



 외지인인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는 도서대출증을 만들 수 없었고 소네치카는 대신 자신의 대출카드로 책을 대여해 준다. 이틀 뒤 로베르트 빅토르비치는 그녀의 초상화를 들고 청혼을 한다.

 공장관리부가 예술가에게 내준 지하 난방실 옆의 창 없는 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이 주째 접어들 무렵 소냐는 남편과 러시아 문학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알보보니 남편은 러시에 문학에 관심이 없었고 러시아 문학이 벌거벗었고 경향적이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교훈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타냐의 출산 후 소냐(소네치카)에게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토록 사랑했던 책 속 이야기 대신에 상상할 수도 없는 빈곤의 짐, 가난, 추위, 번갈아가며 병이 나는 타냐와 로베르트 빅토로비치에 대한 매일매일의 끝없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1950년대 초 소냐네 가족은 살림이 피기 시작한다.  타냐에게 다락방이 생겼고, 소냐 아버지는 구석방을 차지했으며,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는 따뜻한 테라스에 작업실도 생겼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던 타냐가 야간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이 가족에게 큰 변화가 생긴다.

타냐는 같은 반 동급생인 야샤에게 흠뻑 빠지게 되는 데 그녀는 부모를 모두 여의고 학교에서 청소일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네치카는 타냐로부터 들은 야샤의 어릴 때 역경만으로도 그녀가 숨겼을 다른 이야기들까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타냐의 초대를 받은 야샤는 신데렐라가 아닌, 말아 올린 속눈썹에 섬세한 손바느질한 옷을 입고 찾아왔다. 소네치카는 비어있는 구석방에서 자고 가라고 했고, 그날 밤 야샤가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를 유혹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소네치카는 남편에게 야샤를 우리 집에서 살게 하자고  말한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자신의 가족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냐가  야샤를 받아들인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로베르트는 그 일이 있은 후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야샤가 그의 작업실에 드나들면서 둘은 뜨겁게 사랑을 하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방 전체가 야샤를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찬다.  주택철거 명령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공방에 간 소네치카는 야샤의 그림을 보게 되고(초상화로 청혼을 받았기 때문에 그 그림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네치카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편지만 놓고 공방을 나온다.



'그 사람 옆에 그렇게 젊고 예쁘고, 부드럽고, 날씬한 아가씨가 생겼다는 건 정말 공평한 일이야. 예외적이고 비범한 그이에게 걸맞게 말이야. 늘그막에 그이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은 잘된 일이야. 이제 그이가 자기한테 가장 중요한 일. 예술로 되돌아가게 되었잖아.'소냐는 생각했다. p.76


타냐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야샤는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해서 집을 나가버린다. 보통은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사를 도와달라고 소네치카는 야샤를 불러들이고 타냐는 야샤와 화해를 한다. 아~ 이 전개 무엇이냐!


 토요일이나 주중에는 어김없이 로베르트와 야샤가 홀로 있는 소네치카를 찾아온다. 오른쪽에 로베르트가 왼쪽에 예쁜 야샤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소냐. 소냐가 연극을 하는 것일까? 다른 이들은 소냐를 동정하고 로베르트를 비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족처럼 삼각형을 이룬 세 사람의 모습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야샤를 뮤즈로 생산적인 그림 활동을 했던 로베르트는 뇌출혈로 죽게 되고 소네치카는 남편의 장례식과 전시회를 동시에 치른다. 야샤가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 소네치카는 야샤를 정성스레 보살폈다.



일곱살때부터 스물일곱 살 때 까지 꼬박 이십 년 동안을 쉼없이 읽고 또 읽었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책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가 되어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p.10


 

소네치카의 재능이라면 인쇄된 글자에 너무나 공감을 한다는 것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자아를 잊을 정도로 환상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인지, 소설의 앞부분은 이런 소네치카를 자세히 묘사한다.

소네치카는 자신의 삶을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남편과 야샤의 관계를 알았을 때도 공평이라는 표현을 한다. 무엇이 공평하다는 것일까?

남편이 죽고 타냐는 독립을 한다. 그녀의 곁에는 야샤가 남아 있었다. 소중한 남편 로베르트 빅토로비치의 말년에 그와 같은 화사한 장식품, 그와 같은 마음의 위로를 보내준 섭리에 대해 경건한 감사를 느끼는 존재였다고 소네치카는 표현한다.

 나는 소네치카를 성녀의 자리에 놓고 싶지는 않다. 독서광이었고 공감능력이 탁월하며, 때는 전쟁중이었다. 남편과 딸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처럼 자식이 많지 않아서 야샤를 딸로 받아들였다.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지만 다시 그녀를 받아들인다. 남편에게 화도 내지 않는다.

얼마큼의 독서력이면 이렇게 된다는 걸까? 소냐의 심리를 파면 팔수록 너무 재미있는 책.

재독이 필수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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