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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커피 Nov 12. 2024

각각의 계절

권여선 소설/문학동네

젊은 날 숲속 식당에서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결코 혐오나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연민과 공감에 가까웠다. 꼬리털이 반 넘게 벗겨진, 여자의 존재만으로도 꼼짝 못하고 휘두르는 폭력의 자장 안에서 벌벌 떠는 강아지는 나의 과거 같았고, 머리숱이 적고 군데군데 뽑힌 듯한 헌 자국이 있는 술 취한 여자는 나의 미래 같았다. 나는 여자가 될 것이고, 지나온 삶만큼이나 살아갈 여생도 끔찍할 것이다. 사는 내내 나와 유사한 행로를 살아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섬뜩한 이미지로 출몰하면서, 그렇게 삶에서 오래 겉돌다, 날파리떼가 달라붙은 거미줄 같은 수의를 입고 홀로 죽게 될 것이다. 여자를 본 순간 나는 미래를 기억하는 듯한 착란에 사로잡혔고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p.237



 1981년생 고이즈미 신지로는 일본 정치인이다. 내가 일본 정치인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이유는 이 사람의 화법 때문인데 멍청한 개그 캐릭터인지 고도의 돌려 까기 천재인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정치인으로 많은 견제를 받고 있는 탓에 '흥선대원군' 전략을 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는데 그의 유명한 어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9년 환경대신으로 취임직후 유엔기후행동 정상회의 참석 전날 했던 인터뷰는 지금도 짤로 돌 정도이니 그 유명한 '펀쿨섹좌'의 탄생이다.(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유치원생을 보고 "네가 네 생일에 태어났다는 말이지?"

형은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지금처럼 이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처럼 이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최 무슨 소리입니까~~~~

너무도 당연한 답변으로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롸? 뭐라는 겨? 내가 멍청해서 못 알아들었나 싶을 즈음 뒤통수를 딱 하고 치는 이 인간이 나 물먹이나? 싶은 자조 섞인 쓴웃음이 나는 대답. 아마도 이 대화법의 핵심이지 싶다. 

이 소설에서도 이만큼은 아니지만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을 차단하는 대화법이 나온다. 바로 '사슴벌레식문답'.

준희, 경애, 부영, 정원은 대학 때 하숙을 같이 한 사이로 친해진다.  시간이 흘러 정원은 교사생활을 하다가 연극으로 진로를 바꾸고 자살을 한다. 정원의 추모모임에 참석한 이 글의 화자인 준희는 교수의 삶이 위태로워진 경애의 소식을 듣게 되고, 사이가 소원해진 부영에게 경애의 소식을 알린다. 경애는 젊은 날 운동권 학생이었고 경애의 진술로 인해 부영의 남편이 8년간 복역을 해야 했다. 모든 걸 잊고 살려는 부영에게 굳이 굳이 하지 말라는 소식을 전하는 준희의 심보는 무엇인가?



너 어떻게 이러냐? 니가 어떻게 이래?

나 어떻게든 이래. 내가 어떻게든 이래.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다는 말은 미안할 방법이 없다는, 돌이킬 도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나온 행로 속에 존재 했던 불가해한 구멍, 그 뼈아픈 결락에 대한 무지와 무력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p. 37



정원은 30년이 지나서 사슴법레 문답이 의젓한 방어의 멘트도, 윽박지르는 강요도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쩔래?라는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을 너머 그것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막막한 절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든'이라는 한 글자의 힘이 이렇게나 막강했던가!

젊은 날의 추억은 어떻게든 아름답게 미화되기 마련이고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던 친구들이 어떤 이유로 지금은 소원해졌는지 나 또한 기차가 사라진 기차여행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밤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기억하는 듯한 겹기억이 탄생한다. 아마 부영도 잠이 안 오던 밤에 정원을 기억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신의 현재를 함께 떠올리곤 했을지도 모른다. 불면이 만드는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오래된 과거를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 끝에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그런 무서운 기억의 원환을 하염없이 더듬더듬 헤매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p.40




작가들이 뽑은 작가라는 수식어를 가진 작가! 역시나 뼈 때리는 표현들이 많았다. 대다수의 평들이 '내게는 어려웠다'였는데 그건 도저히 이해 못 할 인물들이 나와서였다고 했다.  그냥 재미있었다가 아니라 느~~~무 재미있었다는 표현을 한 이는 너무도 내 엄마 같고 동생 같고 오빠 같고 친구 같고 이웃 같았기 때문이라고.


7편은 모두 다른 듯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 단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이 되려면 관통하는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내가 뽑은 키워드는 '자기 합리화', '자기 연민'이다. 하나같이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그 기저에는 '기억의 왜곡'이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나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억말이다. 

오빠가 잘돼야 동생들이 잘된다며 차별을 받으면서 컸다는 둘째, 셋째들은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의 오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엔  카페에서 박사논문을 쓰는 오익은 '너라 부르며 의절한 여동생'을 1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 또한 밤마다 전화를 해 오숙이 도대체 왜 그러는거냐며 오히려 반문한다. 오익도 미칠 노릇이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단 말이가!

우리 첫째들의 변을 들어보자. 내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버거운지 아는가? 첫째들 또한 삶이 퍽퍽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는 엄마들, 여동생들이 소설밖에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지금은 숙이가 전생의 원한을 못 풀고 마음을 굳게 닫아걸었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정을 주고 위해주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 거다. 명채는 명으로 같고 정채는 정으로 갚아야 한단다. 그러니 우리가 날이면 날마다 숙이에게 정을 듬뿍 주자. 익아. 

정을 무슨 수로 줘요? 전화도 안 받는다면서요?

마음으로 주는 거지. 진심을 다해 정을 주면, 정은 다 통하게 돼 있다. p.187



자매들과의 갈등을 맺고 있는 멤버들이 유독 많아서인지 <깜빡이> 속의 혜영과 혜진에게, 다섯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파독한 마리아에게 특히나 마음이 간다고 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 나오는 베르타가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쓸데없거나 짙은 농을 하는 교회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은 왜 이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지, 도대체 이들은 이렇게 해서 뭐가 만족스러운 건가라고 신음하듯 생각하는 인물이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지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다르다고, 그들보다 1 정도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녀 또한 그들과 다름없음을 깨닫는다. 마리아가 입양한 아들과 손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것처럼 얘기하지만 내일이 지나면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는 대목에서 탁 하고 내 울대를 쳤다.


자신이 왜 그들과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베르타는 카디건 앞섭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p.114





타인의 죽음과 고통은 그저 잠깐의 이벤트일 뿐, 하루가 무언가? 고개 돌려 집에 오는 순간부터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관심밖의 일이 될 뿐이다.

마리아가 평생 팔리지도 않는 태극기를 팔러 다녔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누군가는 태극기를 속죄의 일념으로, 죽은 친아들의 눈색깔이 생각나서,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물건이라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폭제라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실버들 천만사>에서는  딸 채운과 엄마 반희씨의 1박 2일 여행을 다루고 있다. 반희씨는 일종의 도피로 결혼을 선택한 인물인데 딸아이가 눈에 밟혀 참고 참다가 고2 때 집을 나온다. 실제로 반희씨같은 엄마를 둔 멤버도 있었고 반희처럼 결혼을 도피처로,  일찍 졸혼을 꿈꾸는 멤버도 있었다. 

누구는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겠다는 멤버도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으잉? 하며 찐사랑을 했네라며 살짝 부러워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이해받지 못한 인물이 있다면 <기억의 왈츠>에 나오는 경서이다. 나는 경서가 너무 이해되고 좋았는데 말이다. 

경서는 주인공이 대학원에 다닐 때 몰려다닌 4명 중 한 명이다. 가을날 넷은 소풍삼아 솦속 식당을 갔었는데 동생과 제부를 따라 40년 만에 같은 식당에 다녀오면서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 당시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유산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다. 본인의 상황이 그런지라 경서가 보내는 사랑의 시그널에 눈감아야 했던 주인공. 

5월에 수박을 사준다는 것은 당연히 그린라이트 아니냐고? 수박에 이어 십 년 동안 써온 일기를 박스로 보낸 경서. 당시의 주인공은 그저 기가 차고 폭탄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고? 아무 문제없고 괜찮은 척, 무너지지 않은 척, 방어기제로 이십대를 지나오느라 힘들었으리라.


호감을 보인 상대가 일기장을 보낸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감동이다. 왜냐면 나는 절대 이런 행동을 못하니까.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최고의 방법이라고 경서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극 F인 나는 이런 경서의 마음도 몰라주고 읽지도 않은 주인공이 아타까우면서 살짝 미웠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데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사랑 아니던가?

교환일기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비슷한 류의 일기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경서의 마음을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경서와 내가 멀어지게 된 데 특별한 이유나 계기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당시 내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고 대학원이라는 접점이 없어지면서 우리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어는 순간 번쩍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것들이 뜻밖의 별자리를 만들면서 내 정신은 깊은 어둠과 무지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다. p. 230



오래전 젊은 날 내 등을 두드리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달래주던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인간의 지질함, 자기변명, 운명론, 체념 같은 명사를 문장으로 풀어쓴 작가의 문장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며 이 가을에 독서모임 책으로 강추다. 실제 책 이야기보다 멤버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 책이 있다. 자신의 처지와 대입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책이.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독서모임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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