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문예출판사
어느 날 밤 매슈가 집에 늦게 돌아와 파티에 갔다가 어떤 아가씨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함께 자고 왔다고 고백한 것 역시 진부했다. 수전은 당연히 그를 용서해주었다. 다만 '용서'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 뿐, '이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용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는 것이다. 게다가 매슈의 이야기는 고백은 아니었다. '고백'이란 과연 무슨 단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오래전 두 사람은 이런 농담을 나눴다. "내가 당신한테 부정을 저지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평생 충실할 수는 없어." ('충실하다'라는 단어도 그렇다. 모두 어리석은 단어들이다. 야만적인 구 세계에 속한 단어들.) 하지만 그 일로 두 사람 모두 쉽게 짜증을 내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성격이 나빠졌다. 왠지 그 일을 완전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p.283
표지는 우지현 작가의 <One Night>이라는 작품입니다. 베이지색 모노톤 벽지에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아서 방안 풍경이 더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남색 계열의 카펫이 깔려있고 침대와 화장대, 원목 협탁 위에 램프가 켜져 있고, 노란색 커튼이 전부인 방이죠. 한 여자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까만 건물들 사이로 하늘도 온통 노란빛입니다. 아침 10시에서 저녁 6시까지 프레드 호텔 19호실에 있었던 수전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는 장면입니다. 건물 사이로 사그라지는 태양을 보니 해가 지는 저녁으로 보입니다. 저 노을을 바라보며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야.' 하며 몸을 일으켰을까요?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호텔로 출퇴근하는 수전의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할게요.
<혼자 있기 좋은 방>을 쓴 우지현 작가의 작품을 왜 표지화로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네요. '방'을 매개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에세이집 <혼자 있기 좋은 방>도 추천합니다.
이 책은 1994년 출간된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to room nineteen: collected stories volume one에 수록된 작품 20편 가운데 11편을 담고 있습니다. 나머지 9편은 레싱의 또 다른 단편선인 <사랑하는 습관>에 수록되어 있어요. 읽기 힘들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1편이나 되는 작품에 우선 놀랐고 나오는 인물들에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어요. 그나마 <19호실로 가다>가 가장 정상적인 작품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이 가장 읽기 쉬웠다는 감상이 주를 이루었어요.
작품들은 6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삼아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유럽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에 따라 중산층이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19세기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표출할 때는 미친 여자로 간주되어 다락방에 갇힐 수도 있던 시대였다면 60년대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관련된 사회적 터부를 타파하는 계기가 제공되는 동시에 무책임한 과잉, 현란함, 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는 "성적인 관습의 코미디 같은 시기"였고, "예의 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규칙 같은 것도 없던" 시대였다. p.338
이렇게 혼란스러운 60년대를 책 한 권으로 경험할 수 있다니! 저는 규칙보다는 도덕이 무너진 시대로 읽혔습니다. 소설 속 남자들의 심리가 정말 재미있는데 제대로 된 남성상이 없이 자란 '어른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정에 충실한 남성은 아예 선택지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같은 남자를 두고 경쟁 관계였던 두 여성이 버림을 받자 함께 옷가게를 열자고 합니다. 다른 남자가 좋아졌어도 일은 그만두지 말고 옷가게를 지키자고요.
사랑은 끝났으나 경제적 지원이라는 끈을 끊어내지 못하는 여성의 굴욕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시대를 관통한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너무도 강렬하고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엔 60년대 남성들, 여성들의 사고가 이랬구나 하면서 읽었는데 응? 지금이랑 뭐가 다른 거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맥락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의 그레이엄은 마음만 먹으면 여성을 꼬시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평론가인 그레이엄은 무대미술가 바버라 콜스를 인터뷰하고 그녀의 집까지 가서 자고 가겠다고 생떼를 부리죠. 바버라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유부녀인데도 말이죠. 그런데 바버라는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닌 것처럼 익숙하게 대처해요. 경찰에 전화하지도 않고 이웃이 들으라고 소리도 지르지 않아요. 그저 빨리 해치우고 보내버리려고 하죠.
건물 옥상에서 일광욕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세 남자의 시선을 담은 <옥상 위의 여자> 같은 작품은 '성적 관습의 코미디'라는 명제가 아주 찰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관공 3명이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아주 재미있어요. 스탠리는 자신들의 시선에 반응하지 않는 여성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욕설을 하고 분노를 표출합니다.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자신들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태양아래 일광욕을 하고 있는 게 뿔이 난 걸까요? 해수욕장이 아닌 건물 옥상이라는 의외적인 장소여서 그런 걸까요?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고 웃었던 '시꺼먼스'라는 코미디 코너가 있었어요.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 검은 얼굴 분장이 시대가 흘러 불편한 지점이 있더라는 말이지요.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던 시절도 있었으니 어떤 한 시대나 시절은 이런 문제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리기도 하나 봅니다. 하지만 소수일지라고 이런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작지만 소리를 내었던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의식은 성숙해지는 방향으로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더디지만 꾸준히 말이죠. 그렇다고 지금은 이런 무지의 시대가 아닌가 하면 그렇지도 않겠지요.
여기서는 가장 할 이야기가 많은 <19호실로 가다>에 집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p.277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는 한 쌍의 커플이 있습니다. 런던의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인 매슈와 광고회사에서 일한 수전은 '진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합니다.
인기 좋고 젊은 부부로서 파티를 열기도 하고 남의 파티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수전이 임신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정원이 딸린 리치먼드에 대 저택을 구입하죠. 4명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날 것 같은 이야기는
하지만...... p.280
단조로운 삶이라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적인 두 사람이기에 이것도 예상을 하지요. 집, 회사, 아이, 정원이라는 쳇바퀴를 돌던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생활도 하나의 시험처럼 대합니다. 시험 문제를 예상하고 정답을 찍는 것처럼 말이죠. 교육 수준이 높고, 안목이 있고, 판단력을 갖춘 두 사람이었기에 건조하고 단조로운 삶도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매슈가 집에 늦게 들어와 당당하게 어떤 아가씨와 자고 왔다고 말을 해요. 수전은 처음엔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다가 슬슬 짜증이 올라와요. 하지만 수전은 그런 일로 가정을 깨는 것 자체가 인정이 되지 않는 여자였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자기 방어에 들어갑니다. 내가 이 일에 신경을 쓰는 것도, 쓰지 않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며 결혼생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그날의 일'을 잊기로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지성은 계속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매슈가 간혹 달콤한 오후를 보낸다 한들, 그것이 어쨌다고 분해서 마음이 바짝 마를 때만 빼면, 수전은 자기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매슈의 바람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p.286
아이들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고 막내였던 쌍둥이들까지 학교에 들어가자 수전은 이제 일곱 시간의 황홀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오릅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집니다. 12년이란 시간 동안 아이들을 키우느라 단 한순간도 나만의 시간이 없었다며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한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죠.
방학과 개학처럼 수전의 감정도 들끓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매일 주어지는 일곱 시간이 실제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분노하죠. 집안일을 봐주는 파크스 부인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일, 매슈에게 전화 거는 일, 아이들을 픽업하는 일들로 계속 자신을 일깨워야 했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매슈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돌아온 말을 들은 수전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뿐이었어요. 한마디로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지만 그냥 견딜 뿐.
행복한 결혼생활, 이 집, 아이들을 지탱하는 데에는 이곳에 자발적으로 속박된 매슈가 그녀 자신만큼이나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왜 갑갑함을 느끼지 않는 걸까? 매슈는 왜 초조하게 안달하지 않는 걸까? 이것이야말로 그녀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였다. p.299
매슈도 나름 최선을 다한 듯 보입니다. 자유가 필요하다는 수전의 말을 듣고 맨 꼭대기 빈방에 '엄마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전의 방을 마련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설득을 하죠.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 것이죠. 어느새 그 방은 다른 이름의 거실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자 수전은 헛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정원에 나가면 적이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들이 없는 정원은 이제 정원이 아닌 것이죠. 정원+아이들은 하나의 옵션이었는데 그저 공간뿐인 정원은 이제 그녀에게 적이 나타나는 무섭고 무용한 폐허의 장소일 뿐인 거죠.
어느 날은 정원에 어떤 남자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정원에 숨어 있다가 가끔 집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 몸을 차지하려는 거야라고, 자신은 그 남자를 보았기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고 믿어 버립니다.
이제 수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방을 하나 빌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금적적으로 매슈에게 예속되어 있던 그녀였기에 포기하고 맙니다. 대신에 기차를 타고 나가 작고 조용한 호텔을 선택합니다. 호텔은 평범한 익명의 장소가 되어 주기 때문이지요.
더러운 창문을 등진 더러운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p.304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이길 원했던 수전은 혼자 휴가를 다녀오기로 합니다. 당연히 매슈도 흔쾌히 보내줘요. 하지만 휴가지에서도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집안일을 봐주는 파크스 부인에게 전화를 겁니다. 전화기가 목줄처럼 붙들고 있어서 족쇄가 채워진 휴가였을 뿐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수전은 입주 가정부를 들입니다. 가정일은 파크스 부인이, 아이들 일은 소피가 담당하게 만들지요. 수전의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역할의 빈틈을 모두 메꿔버리는 거죠. 이것을 두고 계획적이다, 패착이다라는 의견으로 갈렸는데 저는 둘다라고 보여요.
직업도 없이 주 5일 집을 비우는 안주인을 이 둘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어느새 이들이 이 집의 주인으로 수전이 손님 같은 상황이 연출되어 버립니다.
수전은 사회생활을 했던 나름 커리어우먼이었어요. 12년이란 시간 동안 일을 했으니 경력도 적지 않아요. 결혼과 임신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둘 정도로 사랑에도 열정적이었어요. 그런 그녀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는다라.
자신의 유전자를 옮겨줄 아이도 4명이나 낳았으니 할 일을 다했다는 허무함을 느꼈던 걸까요?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려는 여자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야박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냥 쉴 수도 있지. 꼭 뭔가를 해야만 해?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 돈만 있으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이때 매슈는 바람까지 피우고 있었으니 섹스파트너도 이미 가지고 있던 참이었지요.
보바리부인과 수전의 공통점은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지만 지루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과정은 전혀 달라요. 바람둥이 로돌프에게 이용당하거나, 젊은 서기 레옹과 밀회를 거듭하다 결국 버림을 받아요. 가사를 돌보지도 않고 남편 몰래 물건들을 사들여요. 사치와 빚에 허덕이는 보바리부인에 비하면 수전은 너무 양호해 보여요. 남자를 만나지도 않고 사치나 낭비도 하지 않으니까요. 집안은 빈틈없이 잘 돌아가요. 자신의 역할을 할 대체재도 모두 마련해 놓고요. 유일한 일탈이라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다가 그녀가 원하는 한 가지였어요.
모든 돈의 행방이 투명했던 부부였기에 수전은 매슈에게 호텔비로 5파운드를 요구합니다. 매슈는 돈의 행방을 물어보지도 않고 마치 그냥 돈을 주고 치워버리려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조금 의문이 들어요. 그렇게 지성적인 수전인데 호텔비 하나 마련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리고 그녀는 이제 프레드 호텔로 출퇴근을 합니다. 그녀가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손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방은 끔찍했지만 그녀에겐 이 사실이 더 컸나 봅니다.
방은 끔찍했다. 하나뿐인 창문에는 얄팍한 초록색 문직 커튼이 걸려 있고, 크기가 보통 침대의 4분의 3밖에 되지 않는 침대에는 초록색 새틴으로 만든 싸구려 이불이 덮여 있었으며, 가스를 사용하는 벽난로에는 1실링 미터기가 달려 있어다. 서랍장, 초록색 고리버들 안락의자도 보였다. p.316
이 방에서 수전은 무엇을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익명의 존재로서 그냥 만끽할 뿐이었어요. 그녀가 아내로, 엄마로 수행해야 했던 모든 일들로부터의 역할에서 벗어나 낡은 소파에 팔을 늘어뜨린 채 앉아있을 뿐이지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 1년쯤 지났을 때 매슈는 수전에게 이혼하고 싶은지 물어봅니다. 수전은 매슈가 탐정사무소를 통해 자신의 일과를 알아낸 걸 알게 되죠. 매슈는 걱정이 돼서 그런 거라고 말합니다. 매슈는 자신의 바람을 고백하면서 수전도 그런 것이 아닌지 물어봅니다. 수전은 여기서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당신과 아이들 없이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노라고 말이죠. 마이클 플랜트라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미지의 남자를 만들어냅니다.
남자와 바람났다고 말하는 것이 혼자 있고 싶어서 주 5일 호텔에 간다는 사실보다 더 인정받기 쉬웠기 때문이죠. 바람난 와이프가 미친 와이프보다 더 이해받기 쉬웠던 걸까요?
"수전, 우리 더블데이트를 하는 게 어때?"
그렇지, 매슈는 당연히 저런 말을 할 사람이지. 그녀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현명하고 이성적이고, 단 한 번도 저열한 생각이나 시기심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저런 말을 하겠지. 우리 넷이 같이 가자! p.330
이제 수전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있지도 않은 애인을 만들어서 더블데이트를 할까요?
서문을 보면 작가조차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수전 롤링스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단 한순간만이라도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고 말이죠.
누구에게나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마음이 아플 때는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이런 마음의 병이 들게 만든 건 수전 자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들었음에도 지성이라는 오만으로 견뎌낼 수 있다고 믿었던 수전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매슈가 바람 폈다고 말했을 때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수전은 싸우고 지지고 볶고 울었어야 했어요. 우아를 떨게 아니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어야 했어요. 솔직했어야 했어요. 더블데이트란 말이 나왔을 때 더블백으로 패줬어야 했어요.
결국 인간은 이성만으로도 본능만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 p.287
각자 19호실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수전이 부러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맨 꼭대기 방이 어디인가? 19호실 호텔이 어디인가 하고 말이죠.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일이 필요하다고 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살짝 비틀어보겠습니다. 사실 이 말은 대다수의 여성에게 필패감을 안겨주는 말이기도 해요. 결국 싱글이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가 없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부엌, 화장실 같은 대답이 나올 때마다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물리적인 공간인 방을 가지면 가장 좋겠으나 라테맛이 으뜸인 카페일 수도, 책으로 모일 수 있는 독서모임일 수도, 고즈넉한 고궁일 수도, oo대학 연못 3번째 의자일 수도 있듯이 공간을 확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저는 돈이 들지 않는 심리적인 공간을 갖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소통이 되는 저에게는 브런치가 아닐까 싶어요.
아래 그림은 손정민 작가의 <자기만의 방>입니다. 이 그림으로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손정민, 자기만의 방
#19호실로가다 #도리스레싱 #문예출판사 #독서모임 #독서토론 #책리뷰 #헌제일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