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병원으로부터의 전화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 어느덧 2022년.
2020년 장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난 뒤 2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10여 년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장인어른 회사에서 제2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내는 갑상선암을 수술이 아닌 고주파절제술을 통해 치료했고, 난소에 있던 혹도 제거했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년이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전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장모님의 상태였다.
장모님이 쓰러 지신지도 햇수로 2년. 수술만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만 같았던 장모님은 여전히 병원에 계셨다. 수술했던 부천의 병원을 떠나 서울의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신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일까.
장모님보다 더 오랜 시간 병원 생활을 해오신 장인어른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면회가 되지 않는 탓에 논산의 요양병원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고 간간이 병원으로부터 상태를 전해 듣는 게 다였다.
2022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 4시부터 아내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군데 이 꼭두새벽부터 전화야!"
나는 짜증 가득한 말을 내뱉으며 침대 옆 탁자에 있는 아내의 휴대전화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발신지를 확인하자마자 잠이 확 달아났다. 발신지는 장인어른이 계시는 논산의 병원이었다.
"자기야, 논산병원인데?"
나의 이 한 마디에 아내는 극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불안함으로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불안감을 내비치는 게 아니라 아내를 진정시키면서 침착하게 전화를 받도록 하는 일이었다.
"일단 침착하게 전화를 받자." 아내를 진정시켰다
아내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전화를 받았다.
"OOO님 보호자 되시죠? 아버님께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계셔서 상당히 위중한 상태라 연락을 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내려갈게요."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논산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빠, 어떻게... 아빠 잘못되면 어떻게..."
논산으로 내려가는 내내 아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으실 거야. 전화받은 이후로 전화가 또 오지 않고 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보자."
부지런히 달렸지만 7시가 거의 다 돼서야 논산에 도착했다.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터라 곧장 병실로 가지를 못하고 병원 입구에서 간호사실로 전화를 걸었다.
"OOO님 보호자인데 전화받고 왔습니다."
"아... 네... 잠시만요."
잠시 후 야간 당직 간호사 분께서 내려오셨다.
간호사분을 보자마자 아내는
"저희 아빠 상태는 어떠신가요? 많이 위독하신가요?"
"새벽에 전화드렸을 때는 좀 심각했었는데 당직 선생님께서 바로 조치를 잘해 주셔서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황이세요."
"그럼 지금은 괜찮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지금 아빠 보러 병실에 갈 수 있나요?"
"지금은 아버님을 뵐 수는 없으세요. 오전에 주치의 선생님 출근하시면 주치의 선생님이 아버님 상태를 다시 확인하신 다음 보호자님께 연락을 드릴 거예요. 그때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장인어른의 상태가 안정됐다는 간호사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아내는 한숨을 쓸어내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7시 30분. 주치의 선생님이 출근하기까지 약 1시간 30분이 남았다. 이른 시간에 어디 갈 곳도 없고 병원 앞 주차장에서 주치의 선생님이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10시가 넘어서야 주치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님이 병원에 오래 계시기도 했고, 최근 들어 상태가 썩 좋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임종 면회를 하셔야 할 듯합니다. 코로나 상황이기는 하지만 가족 분들께서 임종 면회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아내도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아내는 친척 분들께 전화를 돌렸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감사하게 많은 친척 분들께서 논산으로 내려오셨고, 장인어른과의 임종면회를 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나와 아내는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논산으로 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일을 여러 번 반복했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장인어른은 잘 견뎌내셨다.
일련의 상황을 겪다 보니 아내도 장인어른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말을 건넸다.
"아빠가 옛날부터 산을 좋아했잖아. 그리고 예전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아빠는 자기가 죽으면 산에 뿌려달라고 했대."
"그래? 그러면 납골당에 모시면 안 되겠네. 요즘 수목장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괜찮은 수목장에 모시면 어떨까?"
"응. 납골당은 아빠가 답답해할 것 같고, 수목장을 알아보는 게 좋겠어."
이후 나와 아내는 장인어른을 모실 수목장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장인어른과의 이별준비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