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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상상 Aug 08. 2024

갓 잡은 닭육회와 닭구이를 맛보다

현지 주민들이 즐겨찾는 닭갈비 맛집-순천만 닭구이

남도밥상하면 으레 게장, 꼬막 등 풍부한 해산물과 돌산 갓김치가 곁들여진 상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머물렀던 별량면에는 그런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시골이라 식당이 적나보다 했는데 오산이었다. 그 진짜 이유는 이 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별량에 사는 현지 주민들도 즐겨 찾는 맛집이라고 하여(사실 이 곳 외에 주차가 가능한 곳이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중 식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사과와 함께 거절을 당했다. 이유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추가로 손님을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주말이라 더 바쁜 것 같았다. 그래도 가서 되돌아나오는 것보다는 미리 전화를 해보길 잘했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순간의 즉흥을 즐기는 편이지만 아이들과 다닐 때는 조금은 계획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기분 좋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첫날에는 허탕을 쳤지만, 혹시나 해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평일 오전에 전화를 해보니 식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 손님이 많은지 군중심리 비슷한 것 혹은 못 해본 것에 대한 미련같은 것이 남아있던 터에 기쁜 마음으로 방문했다. 짐싸고 숙소를 정리하느라 브런치처럼 먹은 점심이었다. 영업 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하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그래도 닭 잡는데 시간이 걸려 15분 정도 대기 시간이 있었다.

나무집의 고즈넉한 정취가 좋다. 딸은 나무 기둥을 껴안고 빙글빙글 돌며 발 밑에 밟히는 자갈 소리를 즐겼다. 이 식당은 특이하게 산 뒤에 울타리를 쳐놓고 닭을 방목해 기른 뒤에 요리 직전 잡아 대접을 한다고 한다.

여행의 묘미는 처음 해보는 것들이 주는 색다른 감각을 즐겨보는데 있지 아니한가. 육회란 소고기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먹어보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던 닭 육회가 나왔다. 핑크빛을 띈 닭가슴살 육회와 짙은 붉은 빛이 도는 근위-닭똥집 혹은 모래주머니-가 함께였다. 닭육회는 갓 잡아 나온 닭이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구워먹을 것을 권했다. 망설임 끝에 마늘소금장에 찍어 가슴살 회를 먹어보니 부드럽고 쫀득한 광어같은 식감이다. 근위는 단단 쫄깃하며 육즙이 입안에서 터졌다. 아이들은 회를 먹기는 거부했지만(사실 회는 먹겠다고 해도 안 먹일 계획이었다.) 치킨 샐러드와 구운 염통, 구운 간은 곧잘 먹었다.


 "엄마, 순대에 나오는 간하고 맛이 비슷해."


아이들도 자기 경험의 한계치 안에서 느껴본 것들과 새로운 경험을 비교한다. 어른들이 외국을 방문했을 때 "저거 꼭 한국의 ~~같네."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그래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식의 폭을 넓혀주는 경험은 무엇이든 훗날 도움이 될거라 믿는다.

사장 아주머니께서 숯불에 닭 한마리를 부위별로 일일이 구워주신다. 최소한으로 간을 한 닭갈비는 심심하지만 맛있었다. 특히 숯불향이 나는 껍데기는 튀긴 듯 바삭하고 고소했다. 계속 뜨거운 불 앞에서 가위질하느라 고생하셔서 황송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한 마음에 원래 이렇게 해주시는건지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아서 주방에서 나올 수가 없다고. 그래도 닭죽을 만드느라 압력솥 김이 푹푹 찌는 주방보다는 에어컨이 있는 테이블에서 일하는 게 쉬는 느낌이 난다고 한다. 일을 하면서도 휴식같다고 생각한다니 괜히 부끄럽다. 나는 일을 일로만, 짐으로만 여긴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살아있는 닭을 갓 잡아 구워먹는 경험이 처음이라고 얘기하니 예전에는 이 곳에도 비슷한 식당이 많았는데 한 곳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고 한다. 다 구운 뒤 사장님이 닭죽을 가지러 간 사이 의문이 남았다. 왜 그 많았던 식당들은 사라졌으며 닭을 잡아 파는 것이 불법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녹두가 고소하게 씹히는 닭죽을 먹으며 돌아온 사장님께 여쭈어봤다. 왜 식당들의 수가 적어졌으며 산 닭을 잡아파는 것이 불법인 이유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왜 이 식당은 영업을 계속 할 수 있었는지. 사장님은 더운 주방으로 들어가기 싫었는데 잘됐다며 적극적으로 대답해주셨다. 원래는 이 곳 순천만 근처에도 닭을 잡아 파는 식당들이 꽤 있었는데 그런 곳들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나이가 들면서 가게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순천만의 철새들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도 했다. 살아있는 가축들을 키우다 보면 폐사할 경우가 많아 수질오염이 심해지는데 그것을 법으로 규제하여 새로운 식당을 신고하기에는 규제가 까다롭다보니 식당 자체가 적어진 것이라고 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시골이라 식당이 적은게 아니었다. 순천 지역 자체가 습지와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생태 체험에서 해설가님이 주차장에 알을 낳은 새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 주차금지 구역을 설정한 것도, 식당 수가 적은 것도, 자연과 공생하기 위한 이 곳 사람들의 철학이 담겨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불편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곳의 메뉴는 3가지인데 구이, 백숙, 볶음탕 모두 닭 한마리를 잡아 만든 것으로 가격도 일괄적으로 7만원이었다. 사실 입 짧은 아이 둘과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지만 남은 닭은 이 가게에 어느 순간부터 눌러앉아 산다는 아기 고양이와도 조금 나누고 포장도 해갈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순천만의 철학과 현지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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