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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색경단 Sep 11. 2024

반전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지은이' 뿐이다


제목에서 등장한 이름 지은이, 하나뿐인 내 동생이다. 


그 누구보다도 잘 맞고 인생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사람, 자기전 불을 끄고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베스트프렌드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지은이. 이런 지은이를 두고 항상 이런저런 말이 들려온다. 특히 엄마를 통해서 말이다. 쟤 어떡하냐고. 분명히 이해한다. 왜 가족 중 그런 사람 한 명쯤 있지않나?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모두 입을 모아 지은이를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부정할 수 없는 모범생 이미지의 언니인 나를 부러워하고 가끔은 질투한다. 


"왜 언니만 이뻐해?", "왜 나만 혼내!", "언니는 외국도 많이 가잖아. 나도 보내줘."

심지어는

"언니가 내 운을 뺏어갔나봐"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동생은 모르는 내 마음을 말하기로 했다.


나도 동생에게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는 걸.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본받고 싶은 사람이 지은이 자신이라는 걸. 사실, 질투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 동생이 지니고 있는 건 성격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고, 막무가내로 빼앗을 수도 없으니 이건 부러운 것이겠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것은 바로


반전은 항상 지은이만 누린다는 점.



동생하고 자주 영화를 본다. 밥 먹을 때든 일을 끝냈을 때든 시간만 있으면 같이 영화를 보는데 나는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아-주 길다. 꽤 까탈스럽다. 고고한 취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첫번째, 장르를 따져야 한다. 액션/스릴러는 내 입맛이 아니다. 

두번째, 네이버 평점. 

세번째, 왓챠 평점. 

네번째, 블로그 평. 

다섯번째, 수상 목록. 

여섯번째,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했던 말 다 고려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주인공부터 감독까지... 


골랐다가 홱 돌아서버리는 것도 한순간이다. 하지만 동생은 그렇지 않다. 설명을 보고, 포스터를 보고 바로 틀어버린다. 나는 튼 후에도 엄청 짜증 내는 스타일이다. 조금만 재미없으면 '에이 재미없네... 지금이라도 다른 거 볼까..?' 그러면 동생이 말한다. '조용히 하고 그냥 봐라!'


나는 바로 핸드폰을 켜고 영화에 집중을 못한 채 시선을 두 군데에 두고 있다. 하지만, 동생은 계속 영화에 집중한다. 집중해서 보다 보면 이상하게 확 재밌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해줘 지은아.' 이에 대한 답변은 '지금까지 안 봐놓고 방해하지 마라. 진짜' 

그럼 그제서야 영화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금방 잠에 들어버린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아빠도 함께 모두가 잠에 든 사이 TV 앞에 남아있는 건 지은이뿐이다. 그리고 영화크레딧이 올라갈 때 동생이 나를 깨운다. 


'언니, 방에 들어가서 자.' 

'어...? 영화 어땠어...?' 

'미쳤어. 미쳤어. 마지막이 대박이야. 반전이 있는데...' 

'아아아아, 말하지 마. 나 나중에 볼 거야.'


하지만 나중에 절대 보지 않는다. 


나는 명작을 본 것도 안 본 것도 아닌, 내용과 결말을 어쩌다가 귀와 뇌로 이해해버린 애매모호한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최고의 반전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은 지은이뿐인 것이다.


동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뭐든지 쉽게 놓지 않는다. 끈질긴 구석이 있다. 

엄마는 동생이 금방 포기해 버린다고 답답하다 하시는데 지은이가 포기하는 건 애초에 진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을 때만이다. 나는 브이로그를 찍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까먹어서, 귀찮아서라는 이유로 찍지 않았다. 근데 동생은 어떻게든 찍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린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격리기간 동안 작은 핸드폰 속 무료 편집앱을 만지작 거리며 힘들게 편집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노트북 사양이 낮고, 편집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유로 영상 편집을 1년 동안 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뷰티 쪽에 관심이 많아서 메이크업 자격증 필기시험도 독학해서 땄다. 그 어렵다는 메이크업 실기 시험도 학원 없이 혼자 공부했다. 상황을 극복하기 보단 목표를 바꾸는 걸 더 쉬이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다. 대학교 때 교환학생을 간다고 주말마다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지금부터 돈을 모은다




내 동생이 모두에게 롤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본받고 싶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이 글을 지은에게 보여줬을 때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웃으며) 언니, 진짜 내가 롤모델이야?!"

"어." 한치의 의심없이 말할 수 있다. 지은아, 넌 내 롤모델이야. 사고뭉치라고 불릴지언정, 몰래 햄버거를 시켜먹다 들켜서 혼날지언정, 자다가 수업에 지각할지언정, 내가 너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아. 아주 확실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 타고난 구석이 없다고 느껴질 때 모두가 기억하길 바란다.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이미 누군가의 롤모델이라는 것을!






※ 참고로 이 글은 2년 전에 작성한 글이다. 지은이는 열심히 공부해 올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그 누구보다 멋있고 재밌게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영화를 틀었다 끄는 걸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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