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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흥 없는 여행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곳, 카파도키아

by 오색경단

나는 풍경에 감흥이 없는 사람이다. 멋있는 걸 볼 때 나의 생각 회로는 이렇게 돌아간다.


"와 멋있다."

"진짜 멋있네."

"화려하긴 하네"

"오~"

"..."

"가자!"


거기까지다. 감탄은 짧으면 30초, 길어야 3분 남짓. 그다음엔 어김없이 지루함이 찾아온다. 말없이 한참을 머물며 감정에 젖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조용히 혼자가 되곤 한다. 마음은 벌써 다음 장소에 가 있다. 그렇다고 자리를 뜨진 않는다. 가만히 기다리는 건 또 잘하니까. 그럴 때마다 여행을 하면서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너무 무딘 걸까, 아니면 아직 진짜 감동이란 걸 못 만난 걸까.


예전에 스페인에서 가우디 투어를 했을 때도 그랬다. "설명을 들으며 가우디 건물을 보니 눈물이 났다, " "압도됐다, " "가슴이 먹먹해졌다"는 후기들이 넘쳐나길래 나도 무언가에 진심으로 감동받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며 투어를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서 가이드는 특별한 미션을 줬다. 바닥을 보며 스무 걸음 앞으로 걸어온 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고조에 달할 순간 고개를 천천히 드는 것. 가우디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파밀리아 성당과의 감동적인 첫 만남을 위한 연출이었다. 나는 미션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랐다. 스무 걸음을 걷고 3, 2, 1 구호에 고개를 딱. 성당은 놀랍도록 웅장하고 정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근처 카페에 앉아 수다나 떨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이 있다.

1시간을 가만히 바라만 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절경을 품은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


KakaoTalk_Photo_2025-05-28-10-18-11.jpeg 열기구를 보려면 5시에 일어나야 한다




이스탄불에서 13시간을 달려온 야간 버스는 아침 7시 카파도키아 괴레메 마을에 멈춰 섰다.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었던 터라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나아질까 싶어 비몽사몽 버스 밖으로 튕기듯 나왔다. 동굴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침 햇살이 어찌나 사납게 느껴지던지 눈을 반쯤밖에 뜨지 못했다. 하지만 흐릿한 시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있는 거지?


열기구가 떠오르는 돌산, 모두가 아는 '그' 카파도키아였다. 카파도키아에 대해 잘 몰랐기에 이런 풍경은 차를 타고 한참 나가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터미널에 도착하는 순간 이미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향했다. 작은 마을이라 걸어서 7분이면 닿을 수 있었다.


KakaoTalk_Photo_2025-05-28-10-20-46.jpeg 손 흔들어 주시는 아저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방을 보여준 뒤 옥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옥상에 올라서자 탁 트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위에서 내려다본 괴레메 마을은 아래에서 봤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늘과 하이파이브할 듯 솟아오른 돌기둥들. 그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 낮게 깔린 집들과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고요한 공기. 도심에선 보기 힘든 색깔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옥상에 놓인 빈백에 몸을 기대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압도되었지만 그 압도감은 위협적이기보다 평화로움에 가까웠다.


그렇게 옥상에서 한참을 누워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몇 분 만에 인스타그램을 켰을 텐데 그럴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만 뜨고 있는데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기에.


즐거움은 카파도키아 일정 내내 문득 문득 찾아왔다. 공용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방으로 돌아오는 짧은 복도, 야외 테라스에서 조식을 먹을 때, 밤늦게 문 연 마트를 찾아 뛰어다니는 순간조차 비현실적인 풍경이 자꾸만 시야에 들어와 카파도키아의 매력을 잊을 틈이 없었다.




카파도키아는 감히 '보는 것'이 전부인 여행지라 말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것도, 신나는 액티비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항아리 케밥이 유명하긴 하지만 특별히 맛있진 않았다. 걸어서 2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작은 마을 안에서 눈을 뜨고 이것저것 둘러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게 카파도키아 여행의 핵심이다.


마치 우주여행을 온 사람처럼. 놀이공원도, 바다도, 맛집도 없는 외계 행성에 도착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건 낯선 풍경을 천천히 살피고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카파도키아가 그렇다.


괴레메 마을을 떠나는 날 저녁, 옥상에 다시 올라갔다.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감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남들과는 다른 포인트에 반응할 뿐. 그동안 멋진 걸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무딘 사람이라 자책해 왔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는 역사가 담긴 고대 유물에, 어떤 사람은 넓고 푸른 바다에, 또 다른 이는 화려하고 높은 건물에 감탄한다.


난 다른 것에 감탄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여행 인생에 새로운 깨달음을 준 카파도키아에 고마움을 전하며, 다음 여행지에서 또 다른 감동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KakaoTalk_Photo_2025-05-28-10-18-14.jpeg 풍경을 반찬 삼아 먹는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KakaoTalk_Photo_2025-05-28-10-24-04.jpeg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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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Photo_2025-05-28-10-24-41.jpeg 어딜 가든 고양이가 많은 튀르키예


KakaoTalk_Photo_2025-05-28-10-18-25.jpeg 숙소는 Turan Cappadocia,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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