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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케밥, 맛있고 싸서 행복해

케밥 파헤치기

by 오색경단


이스탄불, 튀르키예


작년 5월 17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튀르키예를 여행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튀르키예는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다.


이유는 음식, 물가, 관광지, 사람 등 하나만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요소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 준 건 완벽한 '날씨'였다. 물론 5월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좋은 시기이다. 북반구는 꽃내음 가득한 봄이 한창이고 호주 같은 남반구에 가면 산들바람 부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찬란한 5월을 튀르키예에서 보냈다.

왜 하필 튀르키예였을까? 튀르키예는 어떤 매력을 품고 있길래?


이번 편은 내가 사랑에 빠진 음식, "케밥"에 대한 이야기다.




#1. 맛있고 싸서 행복해


여행을 가면 한 가지 음식에 꽂혀 깊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에 갔을 땐 '최고의 에그타르트'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눈에 보이는 에그타르트를 죄다 맛보고 분석했다. 그때의 에그타르트 자리를 튀르키예에서는 '케밥'이 꿰찬 셈이다. 케밥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케밥의 종류만 수백 가지라 하니 나 같은 여행자에겐 먹어도 먹어도 앞으로 맛볼 케밥이 차고 넘칠 테니까!


열흘간의 일정 중 케밥만 열 번 먹었다. 사실 '고기를 구워 야채와 함께 먹는 요리'라는 케밥의 정의는 아주 광범위하기 때문에 튀르키예에서 케밥이 아닌 음식을 찾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최종 소감을 미리 말하자면 나는 튀르키예의 케밥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케밥 케밥 노래를 부르며 가족들을 괴롭혔고 말고. 그럼 이제부터 케밥을 향한 나의 짝사랑 스토리를 시작하겠다.



고등어 케밥


고등어 케밥은 여행을 가기 전 가장 기대하던 음식이었다. 튀르키예를 다녀온 지인들도,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백종원도 하나같이 고등어 케밥을 극찬했다. 쫀득한 빵과 비린내 없이 고소한 고등어가 환상의 조합이라며. 그래서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 저녁, 나는 곧장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카라쿄이로 향했다.


카라쿄이 골목으로~


북적이는 골목에는 고등어 케밥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니 어디가 맛집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중 두 번째로 줄이 긴 Galata fish mekan을 선택했다. 오래 기다리엔 내 배가 그리 자비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을 서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족집게로 고등어 가시를 제거하는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저렇게 빠르게 하다 보면 하나쯤 놓칠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잘 구워진 고등어는 양파, 소스와 함께 바삭한 토르티야에 속으로 들어가 돌돌 말려 나온다.


재료와 조리 방법은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생양파를, 어떤 곳은 구운 양파를 넣는다. 향신료 맛이 강한 곳도 있다. 또 바게트 빵을 쓰는 가게도 있는데 나는 얇은 토르티야가 훨씬 맛있는 것 같다. 이럴 땐 "랩(wrap)"이 가능한지 물어보면 된다. 아, 그리고 좀 더 푸짐하게 먹고 싶다면 '더블'을 시키자. 고등어가 두 개 들어간다.


Galata fish mekan


드디어 고등어 케밥이 내 손에 들어왔다. 뜨끈한 온기를 한껏 느끼며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와... 맛있다. 빵에 바른 소스는 무엇인지 살짝 매콤하고, 고등어를 씹을 때마다 고소한 기름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그 와중에 양파는 자칫 단순할 뻔한 식감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구나. 다 모르겠고, 그냥 진짜 맛있다. 이게 4천 원의 맛이 맞는가?


이후 다른 가게에서 고등어 케밥을 세 번 더 먹었다. 한 번은 케밥과 맥주를 사서 강가 벤치에 앉아 먹었다. 가게 이름은 Sokak Lezzeti Tarihi Balık Dürümcü Mehmet Usta. 케밥이 맛있었던 건지, 분위기에 취했던 건지, 이스탄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강가에서 케밥 먹기


Sokak Lezzeti Tarihi Balık Dürümcü Mehmet Usta


세 번째로 간 곳은 Meşhur Balıkçı Eyyup Usta이었다. 맛은 물론 맛있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선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Meşhur Balıkçı Eyyup Usta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직원이 마리오 옷을 입고 음식을 만드는 일명 '마리오 케밥, ' Super Mario Emin Usta이다. 정확한 가게 이름은 몰라도 모두가 마리오 케밥이라고 기억하는 것을 보니 마케팅 대성공이다. 이곳이 내가 꼽은 최고의 고등어 케밥 맛집이다. 모든 재료가 자기주장이 뚜렷하지만 조화로웠다.

Super Mario Emin Usta


최고의 맛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고등어 케밥을 찾아 이곳저곳을 누빈 그 여정과 맛은 확실한 행복이었다.


(여기서 반전: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튀르키예 친구 세명에게 고등어 케밥을 이야기하니 아무도 모르더라..! 고등어 케밥은 관광객의 음식인가?)




되네르 케밥


이제부터 이야기할 두 가지 케밥은 모두 튀르키예의 대표 휴양지, '안탈리아'에서 맛본 것들이다.

너무 맛있어서 두말하면 입 아플 케밥들.


평화로운 휴양지, 안탈리아


보통 휴양지라 하면 물가가 비쌀 거라고 생각하지만 안탈리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스탄불보다 훨씬 저렴하다. 나는 여행지의 물가를 '식당에서 파는 콜라값'으로 가늠하곤 하는데 이스탄불에서는 콜라 한 잔이 한화로 약 2,000원, 카파도키아는 무려 4,500원, 안탈리아는 단돈 1,000원이었다. 이 정도면 너무나도 합리적이지 않은가? 물론 음식값도 음료처럼 착했다.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케밥이 바로 되네르 케밥이다. 꼬챙이에 닭이나 양, 소고기를 꽂아 불에 고루 익힌 뒤 큰 칼로 얇게 썰어 빵 사이에 넣어주는 이태원 거리의 그 케밥 말이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되네르 케밥집 Önerim Döner에 가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른 아침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대신 길 건너편 눈에 들어온 Roya Döner & Fast Food로 발길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맛집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전혀 아쉽지 않았다.


되네르 케밥의 특징은 고기양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100g짜리를 주문했는데 아마 케밥을 받고 나면 깜짝 놀랄 것이다. 보템 하나 없이 진짜 팔뚝만 하다. 엄청나게 묵직하다. 구글 리뷰에 보면 두 끼에 나눠 먹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내가 시킨 건 100리라, 한화 약 3,600원. 아주 착하다.


Roya Döner & Fast Food (a.k.a. 넘버원)


맛은 뭐 속된 말로 미쳤다.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진 빵 안에는 불향이 깊게 벤 닭고기가 가득 들어있다. 잡내란 찾아볼 수 없고 안에 들어있는 소스는 어찌나 감칠맛 나는지 배불러도 자꾸 먹고 싶어진다. 토마토소스도 들어 있어서 마치 얇은 피자를 말아서 먹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예술이다.


다음 날, 오픈 전이라 못 갔던 그 Önerim Döner도 가봤지만 만약 안탈리아에 가서 되네르 케밥을 먹는다면 무조건 Roya Döner & Fast Food로 가야 한다. 내가 먹어본 되네르 케밥 중 최고다. 그 케밥 때문에 언젠간 안탈리아에 다시 갈 것이다.


Önerim Döner의 되네르 케밥과 감자튀김


이 맛은 전 세계에 꼭 필요하다.

너, 나랑 어디 좀 가야겠다. 어디? 한국에.




대구 케밥


대구 케밥은 안탈리아 올드타운의 명물이다. 몇 분만 걸어가면 푸른 바닷가가 눈앞에 펼쳐지는 명당자리에 위치한 이곳은 점심시간이면 줄 서는 사람들로 붐비는 맛집이다. 나는 오픈 시간에 맞춰 갔더니 운 좋게도 웨이팅 없이 테라스 자리에 여유롭게 앉을 수 있었다.


파란색의 인테리어가 참 마음에 든다:)


메뉴에는 다양한 생선이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건 '대구 케밥(Çıtır Balık), ' 가게 이름과도 같다. 대구 케밥은 115리라로 한화 약 4200원 정도다. 한 끼에 이 가격이라니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음식은 금방 나온다. 받아보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바게트 빵 사이에 대구 튀김만 딱 끼워져 있는 단출한 비주얼이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을 수 있으나 실망하긴 이르다. 옆 테이블의 가족분들께서 내 뒤쪽을 가리켰다. 돌아보니 신선한 야채와 소스, 피클이 가득한 셀프바가 있다. 푸릇푸릇한 야채들이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이 케밥은 손님이 직접 완성해야 한다. 내 입맛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한다. 그렇다. 내 사랑 케밥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다양한 야채가 가득한 샐러드바!


나는 당근, 양배추, 양파 등의 야채를 가득 넣고 느끼함을 잡아줄 할라피뇨도 아낌없이 담았다. 소스는 머스터드와 요거트, 스리라차를 뿌려 마무리. 딱 봐도 한입에 절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큰 케밥이 완성되었다. 욕심 좀 냈다.


첫 입은 아직 빵과 소스뿐이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점점 가운데로 갈수록 부드러운 대구살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넣은 야채와 소스, 대구살, 그리고 대구살을 덮은 튀김옷까지 한입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고소하고 아삭하고 매콤한데 살짝 느끼하다. 이게 하나의 케밥에서 느껴질 수 있는 맛이란 말인가?


가득 담은 대구 케밥^^


오랜만에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밥을 먹었는데 엄마께선 ‘너는 계속 먹는데 샌드위치 크기가 안 줄어든다’며 양이 얼마나 많은 거냐고 놀라셨다. 양과 맛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이곳은 안탈리아의 Çıtır Balık이다.


이제 안탈리아에선 되네르 케밥만 먹고 올 수 없다.

대구 케밥까지가 세트다.




튀르키예의 진짜 매력은 '먹는 즐거움'에 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케밥들은 마치 내 지갑 사정을 다 안다는 듯이 '싸기'까지 하다. 그래서 '행복'하다. 맛있고 싸서 행복하다.


고등어 케밥, 되네르 케밥, 대구 케밥. 어떤 케밥이든 상관없다.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왜 이토록 케밥에 진심이었는지.


그래서 결론은 하나.

날씨 좋은 5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튀르키예에서 케밥 한 입.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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