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fcgd/20
찌뿌둥한 6시간의 버스 이동 끝에 자그레브에 도착한 날이었다. 숙소 체크인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 주린 배를 달래고 지루함도 잊을 겸 도심 한가운데 있는 맥도날드로 향했다.
2층짜리 맥도날드에는 이미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이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었다. 빈 트레이만 남아있는 걸 보니 꽤나 오래 자리를 지킨 모양이다. 먹고 남은 잔해를 전시하듯 올려놓은 건 여전히 자신이 손님임을 주장하는 조용한 항변이라고 해두자. 진상이 대다수라면 그들이 곧 정상이 된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맥도날드의 여행자들은 그런 뻔뻔한 논리 속에서 일종의 동질감 혹은 위안을 주고받는다. 직원들은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어색하게 계속 마주치고 싶진 않았다.
2층 구석에 자리를 잡은 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키오스크 앞에 섰다. 외국인이라는 걸 알아챈 건지 화면에 영어 옵션이 떴고 덕분에 나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맥모닝과 감자튀김, 제로콜라를 주문했다. 언어 장벽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세상 참 좋아졌다’ 생각한 것도 잠시, 비행기에서 외운 크로아티아어 몇 마디를 속으로만 되뇌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맥모닝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상했던 맛 그대로다. 한국에서는 맥도날드를 거의 가지 않는다. 우리 동네엔 매장이 없기도 하고 나는 맘스터치와 버거킹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외에만 오면 맥도날드가 그렇게 먹고 싶어진다. “맥도날드”라는 이름에는, 그 기업의 행보와는 별개로, 묘하게 든든한 힘이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 대사관과도 견줄 만큼.
수제비와 감자전
허기를 채우고 나니 맥모닝의 치즈와 고기패티, 감자튀김이 조금 느끼했다. 물론 맛있다. 너무너무 맛있지만, 자꾸만 전날 먹은 제육볶음 맛이 입안에 감도는 건 왜일까. 그때 L 언니가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수제비 먹고 싶다!”
햄버거의 단순함과는 비교 불가한 쫀득한 식감, 치즈와 마요네즈에겐 기대할 수 없는 매콤한 감동. 나머지 여섯 명도 참지 못하고 육성으로 소리 냈다. “맛있겠다…”
앞선 편에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중동 국가에서 유학 중이었고 11박 12일간의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여행 동안 팀을 나눠 한국 음식을 직접 해 먹기로 했다. 모든 끼니의 메뉴를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단 한 번의 저녁만이 미지수였다.
그 저녁을 담당한 H언니와 J오빠가 기꺼이 손을 들어 말했다. “우리가 할게.” 모두가 간절히 먹고 싶은 음식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크로아티아에서 수제비를 빚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혹은 난이도 높은 요리로 흐릿했던 팀 간의 경쟁 구도에 불을 지펴 명확한 승자를 가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추측만 할 뿐, 진실은 그 둘만이 알고 있다.
수제비를 끓이겠다는 홧김의 말 한마디에 상상 이상으로 들뜬 우리의 모습이 그들 눈엔 조금 얄미웠을지도. 그날부터 두 사람은 유튜브에 수제비 만드는 법을 찾아 헤맸으니까 말이다.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구분부터 물과 밀가루의 비율, 그리고 치대는 방법까지. 투박해 보이는 밀가루 덩어리 안에는 엄청난 스킬 아니. 누군가의 근심 걱정이 꽉 들어차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수제비는 한국음식을 그리워하던 여느 청년들의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우리의 ‘자그레브’ 그 자체가 되었다.
다음날, 플리트비체는 눈부시게 맑았다. 무성한 나뭇잎은 초록색이고 푸르른 강은 파란색이었다. 자연의 모든 요소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아는 것처럼 그들의 색에 최선을 다하는 듯 보였다. 적당한 거리의 트레킹 코스도 완벽했다. 만약 다리가 아팠다면 구불구불한 길이 원망스러웠을 테고 폭포의 세찬 물줄기 소리는 정신을 어지럽혔겠지만 우리가 선택한 H코스는 모든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품은 친절한 길이었다.
돌아온 저녁 8시, 자그레브의 숙소 부엌 한켠에선 H와 J의 손끝에서 밀가루 반죽이 익어가고 있었다. 수제비만 먹기 아쉬우니 특별한 '한국' 재료가 필요 없는 감자전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 수제비 반죽 재료는 중력분, 물, 소금, 식용유다. 영어로도 뭔지 모르는 중력분이 크로아티아어로는 무엇이란 말이냐. 영어로는 medium wheat flour 라는데 이곳은 크로아티아다. 영어 알파벳을 쓰면 뭐 비슷한 말이겠거니 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밀가루 봉지를 구글 번역기에 입력해 보아도 이상한 말만 나오는걸. 대충 파스타면이 그려진 밀가루를 집었다. 중력분이고 박력분이고 우선 해보자는 거지!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넣으며 주먹으로 치댔다. 유튜브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찐득찐득하게 변해가는 반죽에 밀가루를 더 넣어봤지만 여전히 껌처럼 손에 달라붙었다. 사람이 일곱이라 양을 많이 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으로 더 과감해졌다. 소금 몇 꼬집을 넣어 간을 하고 식용유로 두 스푼 추가하며 반죽이 탱글해지길 바랐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처럼 깔-끔하진 않았지만 맛있을 거란 크나큰 희망은 남아 있었다.
끓는 물에 깍둑썰기한 감자, 양파, 당근과 애호박을 넣고 고이 모셔온 된장과 간장, 소금을 넣어 풀어줬다. 이상하게 엄마가 된장 한 스푼 넣고 끓인 찌개는 그렇게 깊은 맛이 났으면서 우리가 만들면 왜 이렇게 맹맹한지. 된장을 넣어도 넣어도 콩 건더기만 늘어날 뿐 맛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온갖 양념장을 때려 넣다 보면 미묘하지만 짭조름한, 맛있다면 맛있다고 할 수 있는 우리만의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번 요리도 다르지 않았다. 수제비는 왜 이렇게 안 익는지 밀가루 맛은 국물에 베어 사라지질 않고, 국물은 여전히 심심했다. 사실 나는 H와 J가 요리하는 걸 여기까지만 봤다. 잠깐 눕는다는 게 그만 1시간을 내리 잠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 밖의 고군분투 소리를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다. 어쩔 땐 한숨, 그다음은 우당탕탕, 가끔은 웃음소리도 들렸는데 그 소리들이 왠지 모르게 듣기 좋았다. 둘은 아주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었겠지만. 누군가 나를 깨우며 말했다.
"밥 먹어..! 00아"
11시 반이다. 식탁에는 곰탕 냄비에 된장 수제비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옆에는 감자전을 만드려다 실패한 흔적을 감자채 볶음으로 무마한 요리가 올라와 있었다. 아, 풀린 눈의 H와 J도 함께. 잠든 한 시간 동안 어떤 사투를 벌였는지 둘은 녹초가 되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니 미안함과 대견함(물론 언니 오빠지만), 웃음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조심스레 맛본 된장 수제비는 아주 맛있었다. 밀가루 전분이 만든 걸쭉한 국물과 쫄깃한 수제비. 나머지 다섯 명은 연신 "맛있다"는 말을 내뱉었다. 정말 맛있기도 했고, 두 사람의 노력이 그대로 느껴져 더 맛있게 먹었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감자전은 왜 볶음이 됐어?" 묻는다면 프라이팬과 밀가루에게 공을 돌리오니...
다 먹고 났더니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맥모닝을 먹던 자그레브의 어느 아침, 느끼함에 말해버린 수제비가 진짜가 되어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수고했다, 고맙다, 맛있다는 말을 건넸다.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랐던 일곱 명의 여행자들은 11일 동안 매일 같이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으며 어설프게나마 따뜻한 말로 서로의 하루 끝을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수제비도 그랬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누구 하나 불평 않고 싹싹 긁어먹는 소리가, 서로의 빈 밥그릇에 밥 한 숟가락을 더 얹어주는 배려들이, 누구의 음식이 제일 맛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저녁 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나면 가장 그리울 게 우리가 함께 차린 밥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홧김에 '수제비'를 외쳐주길 기다리고 있다.
<밥상 모음>
여정을 함께 해준 여섯 동료들에게 큰 감사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