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ize
힘들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했던가?
고생하지 않은 여행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했던가?
무탈한 여행은 배움이 없다 했던가?
인종차별 없는 여행은 평범하다 했던가?
다시 돌아온 연재일을 앞두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어디 재밌는 에피소드 없나 휴대폰 앨범을 꼼꼼히 살피다가, 잠시 눈을 감고 여행했던 모든 날을 하루하루 되짚어 본다. 숙소, 거리, 식당, 디저트, 버스, 박물관, 다시 숙소, 그리고 야경. 그리고 야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순간, 한 가지 흥미로운 주제가 머릿속을 슝 스쳐 지나간다.
그거.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았던 그거...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빼곡히 쌓아놓았던 그거!
인종차별을 당한 에피소드를 적어야겠다. 하나라도 더 기억해 내어 해외여행의 쓰디쓴 실체를 전하겠다는 굳건한 마음.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인종차별적인 말 혹은 행동을 가했었는지 머릿속에 1년의 파노라마를 펼쳐 찬찬히 들여다본다.
"튀르키예 공항에서 칭챙총을 외치는 꼬마애 부모를 찾아가 전부 다 일렀어요. 나중에는 아이가 미안하다며 울더라고요. 쿠웨이트에선 나를 보고 '곤니찌와. 칭챙종'이라 하길래 지금 뭐라 했냐고 사납게 되물었습니다. 물론, 유럽에서 캣콜링을 당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훨씬 많았지만 말이죠. 국적을 물어보지도 않고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건 기본, 한국에서 왔다고 알려줘도 여전히 니하오 밖에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더라니까요."
...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이상함을 느낀다. 너무 침착하다. 침착하다 못해 평온하다. 평온하다 못해 아무 감정이 없다. 이럴 수가 있나? 인종차별을 당하면 속에서 열불이 나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야 한다.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비웃고 조롱한다고? 그 나라가 좋아서 여행까지 간 사람한테 환영은 못해줄 망정 욕설을 퍼붓는다고? 면전에 저런 말을 내뱉는 멍청이가 있다고? 생각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땐 아무 대응도 못했던 스스로가 분하고 억울해서 손이 덜덜 떨리기 마련인데, 시선을 살짝 아래로 옮겨 지금 내 손을 보니 어쩜 이렇게 침착할 수가. 오타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에피소드를 하나라도 더 떠올리려는 조급함 뿐이다. 혹은 흥미로운 주제를 찾았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라던지.
인종차별은 사회적으로 절대 용인될 수 없는 "폭력"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는 지나가다 차별적인 말을 듣는 언어폭력 정도지만 언제든 물리적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 목숨까지 위협할 수도 있는 "범죄"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속성과 실체는 완전히 무시된 채 인종차별이 해외여행의 특별한 경험처럼 변모한 건 왜일까. 언제부터 인종차별 없는 유럽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된 걸까. 당장, 유튜브에 여행 브이로그를 검색해 봐도 수만편의 인종차별 썰을 찾을 수 있다. 칭챙종, 눈 찢기, 니하오, 캣콜링, 코로나 보균자. 나아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식당에 직접 찾아가 인종차별을 당하길 기다리는 듯한 콘텐츠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이들은 자극적인 제목과 그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클릭,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사람들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듣으며 함께 분노하던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하나의 경험치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다.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여행, 불의를 참지 못하고 반박한 용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
내가 그랬다. 20대 초반의 나는 힐링의 여행보단 어떤 것이든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을 갈구했고, 이러한 목적으로 떠난 소중한 여정이 평범하고 특별할 게 없다고 비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여행이 어땠냐는 질문을 들을 때,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인종차별을 당한 이야기를 넌지시 내던졌던 것. 한국에서는 평범하디 평범하던 내가 서양에서 소수자가 되어본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늘여놓았던 것. 사건사고를 겪으며 나는 한층 더 성장했고, 이렇게 성숙해진 내가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갈 것임을 선포했던 것. 이 모든 것이 중요한 경험은 맞다. 물론, 인종차별도 세상의 새로운 인간상을 볼 수 있었던, 그리고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었던 중요한 경험이 맞고 말고.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인종차별은 "범죄"라는 것을. 인종차별은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을지언정 "좋은" 경험은 절대 아니다. 한 번쯤은 당해볼 만한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뜻이다.
Romanticize: (실제보다 더) 낭만적으로 [근사하게] 묘사하다
인종차별은 실제보다 더 낭만적으로, 근사하게 Romanticize 된다. 인종차별을 기꺼이 당해보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까지 부른다. 필자는 인종차별이 낭만화되는 현실이 동양인은 차별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인식을 형성하지는 않을지 걱정될 뿐이다.
인종차별은 과연 낭만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