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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May 18. 2024

도끼 열 번 찍어 내린 나무 쓰러뜨리고

난 뒤 허무한 결말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나 역시도 그 중의 하나였다.

정호는 군대에 있었고 나는 코로나 역학조사 일을 하느라 바빴다.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 관계는 변함이 없을 거라 믿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하다 보니, 정호 생각이 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정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인 선물로 향수를 선물하려다가 정호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찾아서 바로 구매한 적도 있었고,

왁스를 보고 머리 만지는 걸 좋아하던 정호가 생각나서 구매한 적도 있었고,

건강에 좋은 비타민을 선물하고 싶어서 구매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정호가 문득문득 생각나서 산 선물이 한 상자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그렇게 얼굴도 보지 못하고 연락만 하고 지내며 4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느새 정호는 제대했고, 내가 맡은 코로나 업무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코로나에 걸렸고, 그 후에는 다리 부상으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을 집에 가만히 있다 보니, 정호 생각이 더 간절히 났다.

정호 중심으로 살아온 인생이다 보니, 내가 너무 정호에 집착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집착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마음의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정호 생각해서 샀던 물건들과 직접 적은 편지를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냈다.

정호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혼란스러웠지만,

그렇게라도 표현해야될 것 같았다.

그래야 정호도 나를 대하는 부분에 있어 달라지고 나도 정호를 조금 덜 부담스럽게 할 것 같아서.


사실, 우리는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고백으로라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너를 좋아해. 무슨 반응을 바라는 건 아니야.

너랑 이런 일로 멀어지고 싶지 않아. 내가 알아서 마음 정리하고 다시 연락할게.'

비겁한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호랑 멀어지고 싶진 않았다.


정호는 카카오톡 한 페이지가 꽉 차게 답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팬지는 나한테 점점 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갔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팬지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계속 내 옆에 있어 주면 좋겠어.'


'감정이 잊히고 무뎌져서 친구로 지낼 수 있을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됐던 내가 계속 이 자리에서 기다릴게. 오래 걸려도 괜찮아.'


그 이후에는 내 건강이 안 좋아져서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건강을 되찾아갈 즈음에 나는 정호에게 다시 연락했다.

어색하던 사이를 점점 풀어갈 때쯤, 정호의 SNS 배경 사진이 연인과 찍은 사진으로 바뀌었다.

내가 정호와 친해지기 위해서 모든 부분을 따라한 언니와 연인사이가 된 것이었다.


언니의 어떤 부분을 따라 하고 노력했는지 아는 정호가 한 마디 언질도 없던 게 서운했다.

언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모르는 체하던 정호에게 섭섭했다.

본인의 연인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헤어지겠다고 이야기하던 정호가 그 언니와 연인이 됐다는 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준 것 같아서 슬펐다.


한 사람만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아서 우울했다.

이젠 정호를 내 삶에서 빼버려야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옆에서 매번 내게 해주던 말을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정호한테 나는 '딱, 그 정도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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