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 바로 그날
겨울 냄새가 조금 섞인 바람이 선선하던 어느 가을날의 이야기다. 가득 쌓인 낙엽들 위로 걸으니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누군가는 이 낙엽을 전부 치워야 할 텐데, 꽤나 고되겠다’ 걱정이 들었지만, 잎이 져야 또 자라나지 않겠는가. 길고 치열했던 여름을 마냥 붙잡아 둘 수 없는 노릇이니, 변화하는 계절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찰나의 애매함을 온전히 즐겨야지 싶었다.
‘그날’에도 여전히 일기를 쓰고 잠에 들었다. 그날의 나는 왠지 모르게 몸에 기운도 없고, 기분도 울적하고, 어딘가 계속 아팠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몸이 맘을 안 따라주네.’ 생각하며, 일기장을 펼쳐 하루를 기록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대단히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저 병원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검진을 받다가 마지막으로 신경정신과에 갔을 뿐.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고, 약을 타왔다. 끝.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밤 일기장을 펼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별일이었다.
흐릿하고 힘이 없는 필체, 뱅글뱅글 돌아가는 낙서, 뒤로 갈수록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 이런 글귀도 적혀 있었다.‘ 우와! 내가 우울증이래! 파티다!’와 같은. ‘별일’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나는 분명 여느 때와 같이 일기를 쓰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잔 기억이 선명했다. 둘째. 그러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썼던 기억은 마치 도려낸 듯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우울증이라는 것을 ‘파티’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것이 뭘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머리가 일기에 그려진 낙서만큼이나 어지러워졌고 숨이 점점 가빠져 왔다. 가슴은 두근댔고, 마음은 불안해졌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걸까? 정신이상자가 된 걸까? 우울증을 겪으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난 고작 스물한 살인데.’
나는 스물한 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스물하나. 이 얼마나 어리고 예쁘고 당찰 나이인가. 당시 나는 ‘쉬지 않고 뭐든 해야만 하는 열정적인’ 청년이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펙'을 위해 대외활동을 하고, 영어 공부까지 하며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채우는 그런 청년. 도서관에서 자기 계발서를 탑처럼 쌓아놓고 열심히 읽는 젊은이. 나는 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미 정해둔 상태였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으니 그 계획에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스물네 살에는 평창올림픽 통역봉사를 해야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A 기업에 가야지.’ 내 인생 계획은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렇게 열정적이고 활발한 내가 우울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날, ' 여러 군데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었다. 내과에서부터 한의원까지. 한의원에서는 ‘화병’이라고 했다.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었다. ‘화병’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무언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명확한 병명을 찾을 수 없었고, 마지막으로 설마설마하며 엄마 손을 잡고 간 곳이 바로 신경정신과였다.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이건 십여 년 전 얘기다. 병원을 나오면서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정신과에 다닌다는 거, 약 먹는다는 거,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무덤까지 가져가야 해.”라고. 그것이 나의 우울증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부끄러운 것. 감춰야 하는 것. 비정상적인 것. 내 발목을 잡을 거대한 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