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나의 정갈했던 일기장이 그토록 어지럽혀졌던 건, 잠들기 전에 먹은 수면제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졸피뎀. 그러니까 나는 잠자리에 들기 십오분 전 졸피뎀을 먹고 일기를 썼는데, 약 기운이 돌면서 점점 괴상한 글귀를 쓰게 되었고 그 과정이 블랙아웃 된 것이다. 약에 비몽사몽 취한 채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곤 했는데, 다음날엔 그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났다. 설상가상으로 불면증은 점점 심해져서, 반 알이 한 알, 한 알이 두 알.... 복용해야 할 졸피뎀의 개수가 늘어가며 기상천외한 부작용의 세계가 펼쳐졌다.
약이 늘어갈수록 기억나지 않는 밤들도 늘어갔다. 그래도 가끔은 조각난 기억의 퍼즐들이 어설프게 맞춰질 때도 있었다. 대강 맞춰진 그 퍼즐의 모양새는 충격 그 자체였다. 부모님이 깊게 잠든 밤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소주 몇 병을 사고, 거리에서 나발을 불며 휘청거리다가 차도로 뛰어들었던 게 그 중 하나다. 차도로 뛰어들었을 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지나치게 밝아서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웠던 것도 기억났다.
또 어느 날은, 일어나니 반 정도 비어 있는 생수통과 약 여러 알이 바닥에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산산조각난 채로 흩어져 있는 빨래바구니와 함께. 허벅지에는 큰 멍이 들어있었고, 바지는 갈아 입혀져 있었다. 사건이다. 셜록 홈즈처럼 단서들을 모아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2L짜리 생수통이 반 정도 비어 있다는 건, 내가 그만큼 마셨다는 건데... 바닥에 떨어진 알약을 모아 갯수를 세어 보니 여러 개가 모자랐다. 내가 그만큼 먹었다는 거다. 약을 여러 개 먹느라 그만큼 물을 마신 거구나. 해결. 빨래바구니는 왜 그렇게 산산이 부서져 있었을까? 허벅지에 든 멍을 보아하니 헤롱헤롱 대다 바구니 위로 쓰러졌구나. 이것도 해결. 바지는 왜 갈아 입혀져 있지? 갈아입은 기억은 안 나지만, 어젯밤과 다른 바지가 분명하다. 생수통, 바구니, 멍, 바뀐 바지... 아, 왠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상상하던 게 맞았다. 물을 많이도 마셔서 그랬나 보다. 수치스러웠고, 무섭기도 했다. 어지러운 마음이 조금 진정되니, 허탈하고 우습기까지 했다. 내가 갈 데까지 갔구나. 그 순간 결심했다. 다시는 졸피뎀을 복용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