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릴 때도시는 온통 하얘졌다. 느닷없이날린 눈발에 고독이나 절망 같은 낱말들이 쓰러졌다. 익숙했던 도시의 풍경이 낯설고 생소한 곳으로 변했다. 갈 곳을 잃은 눈꽃들이거리에 난 무수한 발자국들을 따라갔다. 이리저리 흩어진 자국들의 끄트머리에선검은색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살갗을 비비는 차가운 바람에 상실된 것을 추념할 것처럼,사람들의 발길이 축축한 노면에잠시 멈춰섰다. 모든 걸 덮어버린 흰 눈은 검은색 옷차림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무관심, 무감정, 무채색을 표상하는 검은 점들이 도화지 위에서발을 동동거렸다. 누가 누구인지 분별할 수 없는 도시 풍경, 두꺼운 외투 속에 묻힌 얼굴들은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크거나 작은 점들이 가까워졌다 아릿하게 멀어졌다. 그렇게 겨울은 검은 점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흰 도시는 검은 점들을 생산하는 공장 같았다.
치킨도 공장식으로생산되고 있다. 많은 치킨들을 생산하기 위해 모양과 맛이규격화되었다.표준화된 치킨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인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가격은 낮아졌다. 이런 방식은살아있는 닭을 도시에서 추방했다. 도시인은 제품처럼 가공된 치킨만 볼 수 있기에치킨을 콜라나 맥주처럼 생각할지 모른다. 거기엔 생명의 기운이 감돌지 않는다. 따라서그걸 먹는데 감정의 소모 같은 문제는 발생되지 않는다. 그리고 치킨은 정말 공산품처럼 보인다. 흉측하게 생긴 머리, 닭발, 내장이 없는 고무인형이다. 아무런 식당, 시장, 마트를 가도 똑같은것들이 있다. 그렇다 보니 과연 정말로 맛있는 치킨이란 게 있는지 알 수 없다. 육질이나 냄새마저 똑같은 것들뿐이다.
코니쉬 크로스는 1930년대 코니쉬종을 개량한 품종으로 한 달 만에 1.5kg까지 성장한다. 2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 등을 거치면서 고기가 부족했던 시기, 코니쉬 크로스는 빠른 생육과 효율로 가장 많이 먹는 닭이 되었다. 코니스 크로스의 아류종에는 로스, 코브, 아바에이커가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시장의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림과 같은 업체들은로스 등 종계를 수입하여 육계를 생산한다.
그런 닭들은기름에 튀기거나 물에 넣어끓인다고 해서 맛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프라이드치킨은 대개 미국 메이저 업체가 생산한 옥수수 사료를 먹인 닭을 도축한 후, 옥수수 가루 반죽을 입혀 옥수수기름에 튀겨져 나온다. 여기에 옥수수 샐러드까지 곁들이면 뒷맛도 깔끔하다. 치킨의 삶은 옥수수로 시작해서 옥수수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옥수수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차라리 콘 치킨(Corn Chicken)이라 불렀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냥 팝콘이라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뜨거운 냄비 속 열기에 단단한 옥수수 껍질을 깨고 나온 통통한 팝콘, 그것은 따뜻한 부화기 안에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같기도 하다.
모든 옥수수로 팝콘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팝콘은 폭립종 옥수수에 소금과 버터를 넣어 가열해서 만든다. 목화솜 같은 하얀 팝콘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에게 바치던 음식이었다. 194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팝콘은 유럽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팝콘은 각 지역의향신료나 허브 등이 곁들여지면서 다양한 맛을 낸다. 간편히 즐길 수 있는 팝콘이 주로 서식하는 곳은 캄캄한 영화관이다. 요즘 영화관에 가면 치즈, 바비큐, 피자뿐만 아니라, 인절미, 간장새우, 마라, 고추냉이까지 별의별 시즈닝을 골라 뿌릴 수있다. 자신의 기호에 맞춰 원하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양념치킨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양념치킨은 고추장과 물엿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민무늬치킨(물반죽에 별다른 양념 없이 튀긴 닭)과 버무려 만든다. 유통되는 닭들이 모두 같은 종이므로, 맛있다고 말하는 건 고기 본래의 맛 아니라 치킨에 묻힌 양념 맛이다. 결국 치킨이 맛을 내기 위해선 염지나 양념이 맛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고기 맛을 몰라도 양념 맛을 안다. 그게 K푸드인 양념치킨의 명암인 셈이다. 그래서 양념치킨의 성패는 어떤 양념 비법을 가졌느냐에 달렸다. 프라이드치킨 가맹점은 본사가 제공하는 양념을 받아 쓰지만, 브랜드 없이 개인가게를 운영하는 경우 고유한 양념을 개발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양념 레시피를 전수받는 조건으로 창업학원에 수백만 원의 뒷돈을 지불한다.이런 창업학원에 대해수강생을 상대로 간단한 조리법만 가르친 후, 양념레시피로 수익을 올린다는 비난이일기도 한다.
결국 똑같은 육계를획일적으로 사용하고서도 성공한 가게는 특별한 양념이 있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는 프라이드치킨의 본고장인 미국 켄터키주에서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그는 미국 남부식 치킨에 한국 전통장인 고추장이 들어간 더티 소스를 개발해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그의 식당은 미국 USA투데이가 선정한 최고 레스토랑 50위 안에 선정되었다. 그렇게 모든 치킨이 겉으로는비슷해도 양념맛의 차이가특별한 음식을 만든다. 그것은 참 중요하다. 누구나 그렇게 특별한 음식을 원하지만 누구나 특별한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양념의 차이는 결국 사람의 열정과 노력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그것의 간극만큼 더 특별해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문뜩 생각했다. 거칠고 냉랭했던 당신에게간장양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윤기 나는 양념이 되어 당신의 걸음을 환희 비추고,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낙심할 때, 당신 마음속에 들어가 따뜻하게 녹여줄 양념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지친 영혼을 흥건히 적시고 달달하게 만들 것이다. 나의 입술은 고소한 땅콩 같아서 당신의 씁쓸함을 위로할 것이며, 아몬드처럼 단단한 나의 가슴은 얼음버캐 같은 당신의 마음을 깨뜨릴 것이고, 당신이 나의 간장양념으로 충분히 버무려질 될 때까지 바르고 또 바를 것이다. 이번 겨울처럼 예상치 못했던 폭설이 내려도당신 곁에 검은 점처럼 남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당신이 좋아하는 간장 맛이 느껴질 때까지 점점 배어들리라.
(참고자료)
*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닭고기로드: 궁극의 치킨>
* 조선비즈 <고추장에서 비빔밥까지.. 치킨 본고당 미 켄터키 삼킨 K푸드>(2024.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