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오면 소녀는 산과 들에서 싱그러움이 가득한 연녹빛 새순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녀는 분간하기 힘든 싹들 중 향취를 가득 머금은 것들만 추슬렀다. 싹에서 누런 떡잎을 걷어냈고, 잔뿌리에서 흙을 털어낸 후 물로 깨끗이 씻었다. 잘 다듬어진 어린싹들은 숙성된 된장, 간장 등에 비벼져 본연의 향긋함과 풋내음을 즐길 수 있는 나물이 되었다. 소녀의 손 끝에는 봄이 있었고, 그녀가 만든 음식에선 항상 고향 맛이 났다. 비록 소박하긴 해도 나의 입맛을 끌어당기는 건강하고 매력적인 맛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향긋한 봄나물 대신 아들의 푸석한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내일은 봄날이어서 아들의 머리카락이 새순처럼 다시 돋아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내 머리카락은 털갈이하는 웰시 코기처럼 매일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발기로 머리를 밀어 정리하는 동안, 어떤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는 것이 상실감 보단 두려움을 앞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또 다른 무엇인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소멸하는 것에 순서가 정해진 건 없지만, 천천히 하나씩 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야 모든 것의 끝이 얼마나 눈부시고 찬란했는지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작년 부암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만발했던 벚꽃들, 그 하얀 꽃잎들 사이로 햇살이 흐트러졌었다. 내 마음은 인왕산에서 남산까지 투명해진 푸른 하늘을 날듯 가벼워졌고, 아이들은 영롱한 비눗방울을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언제나 새로운 걸 기다리는 기분은 그렇게 오묘한 것 같다. 느긋해진 봄바람이 벚나무 가지에 잠시 머물렀고, 바람은 눈을 감고선 어떤 생각에 빠진 듯했다. 이웃집 토토로가 던졌을 것만 같은 도토리 하나가 맑은 소리를 내며 비탈길을 굴렀다. 그리고 어느덧 내 머리 위로 벚꽃들이 곱게 쌓여 소녀의 머리카락처럼 하얘졌다.
2차 항암치료 후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새벽잠을 설치던 소녀가 낮잠을 곤히 자고 있다. 어둠 속에서 내가 고단하거나 위험에 처하진 않을까 밤새 가슴을 졸이었던 것이다. 예민한 신경회로를 멈추자 피곤이 그녀에게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직도 작은 인기척에 놀라는 건 병원생활에 익숙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단발 소녀는 오랜만에 온기가 머문 창가에 바짝 몸을 기대어 시름을 잊는 중이다. 언제 치료가 끝날지 모르지만, 아들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며, 꿈속에서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저녁달과 어우러져 달큼해진 벚꽃들을 올해는 직접 만날 순 없을 것 같다. 금방 피었다가 지는 꽃이라서 정말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여의도 샛강을 화려하게 꾸몄던 벚꽃 풍경이 떠올랐다. 벚꽃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누구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었다. 지금도 그곳 어딘가에선 벚꽃이 여울고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은빛 단발머리가 된 엄마와 같이 벚꽃 화려한 윤중로를 거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