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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벨러 Feb 21. 2024

택배업이 들춰버린 내 본성

일반적으로 택배기사를 생각하면 욕도 자주 하고 무식한 사람이 많다는 인식이 많다.

나도 지금껏 이 업계에서 수많은 동료들을 만나 보았기에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 외로 예의 바르고 심성이 착한 사람들 역시 많았는데 놀랍게도 이 사람들은 일을 할 때만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고약한 성격을 내비친다.


나와 조곤조곤 대화를 하다가도 고객이나 업무 관련전화가 오면 상당히 비꼬는 투로 말을 하는데

"예?", "뭐요?", "그래서요?" 이런 식이다.

처음 이 것을 느꼈을 때에는 이 사람들이 단체로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나도 곧 그런 이중적인 상태가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두 달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나는 시골출신답게 일하다 마주치는 아파트 경비원들을 보면 항상 웃으면 먼저 인사하고 다녔다.

살갑게 받아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멀뚱히 쳐다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뭐, 원래 어르신들이 무뚝뚝하려니 했지만 날이 갈수록 나를 하대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어느 경비원은 나에게 말도 상당히 기분 나쁜 투로 말하고 갑질 비슷한 행동을 했었기에 그 아파트만 가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경비실에 택배를 맡기는 것을 특히 싫어했기에 나도 웬만하면 직접 배송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고객 요청에 따라 상품 몇 개를 경비실에 놓고 차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그 경비가 나에게 뭐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아마도 욕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왜 물건을 여기다 놓느냐 식의 말 같았다.

오늘 그를 상대하면 나도 한소리 할 것 같기에 못 들은 척 그냥 가려고 했다.


그 순간 '툭' 하고 무언가가 내 옆으로 날아왔다.

낯익은 그 물건은 내가 경비실에 배송한 박스였다. 아마 그의 발길질에 차여 옆에까지 온 듯했다.

비에 젖고 있는 그 박스를 보는 순간 내 이성도 툭하고 끊어진 느낌이 들었고, 나는 뒤돌아서 경비원에게 달려갔다. 내 눈도 돌아 있었다. 


나는 극도로 흥분하면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사진처럼 부분적으로만 남게 되는데 그날도 그랬다.

지금은 그 상황이 두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첫 번째는 내가 큰 소리로 욕하면서 내가 뛰어가니 그가 놀라서 경비실로 들어가 문을 잠구는 것.

두 번째는 놀란 얼굴을 한 채로 숨어있는 경비원에게 문 열라면서 쌍욕과 함께 문을 걷어차던 내 모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겁먹은 그 경비원이 이해가 된다. 나는 덩치도, 눈알도 큰 편이며 조금 사납게 생겼다.

살이 찌면 약간 마오리족 느낌마저 난다. 이런 사람이 뒤집힌 눈으로 달려오니 무서울만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는 이 사건 이후로 몰라보게 친절해졌다. 아무런 마찰도 없었고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 깨달았다. 왜 동료들이 온화하다가도 일할 때만 되면 화를 못 내서 환장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지를. 되돌아보니 언제부턴가 나도 항상 화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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