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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r 15. 2024

실력은 좋은데 같이 일하기 무서운 사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한지 벌써 8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사업이민으로 영주권을 받았던 만큼, 취업에 대한 생각은 없었었다. 물론 처음부터 주변에 얼마 되지 않는 한국사람들은 취업을 권유하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취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는 일 없이 아이들만 키우면서,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통장을 보고 있자니 일을 안 할 수 없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캐나다 경력은 전무하고, 경력을 증명해 줄 만한 회사들도 모두 한국에 있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모두 한국에 있었다. 그렇다고 전문대학을 다시 다니면서 인맥과 실력을 증명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여행이 아니라 이사를 왔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살 수 없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전화로 면접을 봤을 때, 제일 문제는 당연하게도 영어였다. 학교 다닐 때도 영어는 완벽히 포기했었다. 영어시험날은 학교를 일찍 끝나는 것이 좋을 뿐이었다. 국어나 수학 같은 시험은 한 문제, 한 문제 한숨을 쉬면서 풀었지만, 영어는 그런 한숨조차 나오지 않아 편하게 느껴졌다.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글씨겠거니 하면서 풀었었다. 그런 내가 영어로 면접을 보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니. 그래서인지, 실력적인 부분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결과는 매번 좋지 못했다. 아무리 이력서를 멋있게 써도, 한국에서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회사를 다녔어도, 같이 일하는 데에 있어서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같이 일하고 싶으랴.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었다. 거의 매주 이력서를 내려고 직접 뛰어다녔다. 도시가 워낙 작아 IT 개발자를 찾는 회사는 손에 꼽았고, 그곳들에 들려서 프린트한 이력서를 봉투에 넣어 하나씩 찾아가 돌리는데,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그러던 중, 그런 나를 딱하게 본 건지, 아니면 귀찮은 일을 시키기에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취업에 성공했다. 시급도 낮고, 3개월 계약직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주급이란 걸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생활비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지만, 어떠랴. 실력을 보여주면 시급도 올려주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정규직으로 재계약했다. 하지만, 영어점수를 늘려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면서 시급을 택도 없이 낮게 책정했고, 영어점수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정한 사람에게 수업과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었다. 그리고 영어점수가 좋다면 3개월 후에 연봉협상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당연히 나는 해당 조건들을 수락했고, 정말 열심히 일만 했다. 하지만, 그 영어선생이란 사람을 구경도 할 수 없었고, 1년 가까이 말은 안 통하지만, 일을 시키면 제법 잘하는 그냥 그런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옮겼고, 정말 운이 좋게 좋은 자리 좋은 시급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캐나다 IT 개발자의 삶이 벌써 9년 차가 되었다.


지금은 벌써 5번째 캐나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 토론토로 이사, 코로나 등을 겪으면서 조금 잦은 이직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HR팀에서 직원평가리포트가 나왔다. "an outstanding engineer.", "the first person the team thinks of whenever we have what seems an insurmountably complex problem", "a big source of knowledge to those working with him", "He makes himself available to discuss any issues and I always learn a lot through discussions with him"  등등등.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물론 칭찬을 듣기 위해 번역기를 돌려야 하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단점 부분. 올해는 조금 줄기는 했지만, 작년에 이어 또다시 받았다. "sometimes pushes a bit too hard on the smaller details"

"실력은 좋지만 같이 일하기 무서운 사람"


사실 조금은 의도했던 리포트이다. '성격도 좋고 실력도 좋은 사람' 이면 왠지 '성격이 좋아서 실력도 좋아 보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성격은 뭐 같아도 실력은 좋은 사람'이 되면 '성격이 나빠도 실력만큼은 진짜인 사람'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조금은 통한 방법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나 회식에서는 착한 사람이지만, 일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은 빡빡한 사람. 이제 이런 리포트를 받는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올해는 조금 아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더 이상 '점심도 거르면서 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고 '일은 제일 많이 하지만 월급은 제일 적게 받는 사람'이 아닌, '복잡한 문제를 풀기는 해도 일의 양도 적고, 월급도 많이 받아가는 사람'으로서 조금은 더 친절해져야 하나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는 좀 착하게 말해 볼게, 같이 열심히 일해보자 얘들아..... 그래도 내가 너희들보다 거의 20살 이상 많은 거 잊으면 안된다. .. 아 맞다. 니들 한국어 못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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