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나를 부를 때 말 대신 나를 터치한다?

내가 나인 것을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자

by 해나HJ





오늘도 어김없이 알바를 갔다. 물류센터에서 하루만 하는 당일 알바이다. 이번 겨울에는 제발.. 물류센터에서 만큼은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국 내 마음속 의지와는 다르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겨울의 물류센터 작업장은 참 힘들다.

주문 들어온 배송수량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작업장 분위기가 흘러가고 어느 정도의 타이트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 긴장감이 조금 더 많거나 급박하게 흘러가는 곳은 일하는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무겁고 1초 정도라도 작업을 멈추고 숨을 크게 내 쉬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는 작업 감독들이 근로자들을 향해 합리적인 경우를 넘어서 소위 '자기 성질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거나 그냥 한마디로 '막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위의 작업장에 가게 될까 봐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하는 것, 그것도 겨울에 하는 것이 유독 꺼려지는 이유는 내가 추위를 정말 많이 타고, 무엇보다 체력이 잘 바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이 많이 축나있을 때에 물류센터에 가게 되면 하루 갔다 오고서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을 끙끙 앓기도 한다. 하루 벌어 병원비로 다 낼 수는 없으니... 웬만해서는 안 가고 싶은 알바 장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구정 연휴에 잘된 일인지 아닌지 알바를 구하지 못해서 억지로(?) 푹 쉬었더니 체력이 나름 많이 올라와서 그나마 구해진 물류센터에서 하루 당일 알바를 하게 되었다. (겨울 연말과 연초에 알바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40대가 되고 나서는 더 그러하다.)





#.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여기저기 단기로 아르바이트를 가게 되면 이런 경우를 종종 겪는다.


단기 알바의 일터는 그날 서로를 다 처음 만나 보게 되는데,

1. 그렇기에 서로가 낯설어 일하는 일하는 동안 말 한마디 섞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를 자주 경험하게 되고

2. 그렇기에 서로를 잘 모르니 일단 경계하고 조심해하거나,

3. 반대로 또 '오늘만 지나면 앞으로 볼 사람이 아니기에'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혹은 그런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오늘 쓸 이야기는 3번의 경우이다.


당일 알바를 갔던 물류센터 작업장에 서서 여러 명의 근로자들이 상품의 포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의 왼쪽에는 오늘 처음 온 나와 똑같은 단기 근로자, 나 그리고 오른쪽에는 직원이 위치해서 각자 맡은 프로세스를 처리하며 빠른 작업 흐름에 맞추려고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왼쪽에 있던 오늘 처음 나온 근로자가 나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아, 네." 하고 대답하고 그 근로자의 말에 맞춰 처리를 하였는데,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내가 하는 작업을 '통제'하고자 자꾸 간섭을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뭐지.. 정작 옆에 있는 직원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왜...?'



내가 초반에 별 부정적 반응 없이 이 근로자의 말에 응했던 이유는 작업을 보다 잘 흘러가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또는 너무 작업 속도가 정신없이 흘러가니 그냥 이 흐름을 끊지 않고 싶어 바로 응대하고 대답했던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간섭이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아요?" , "지금 OOO 해야 될 거 같은데?"


방을 청소하려고 자리에서 일어 난 찰나 내 방 문을 열며 "아휴, 넌 청소도 안 하니? 빨리 방 청소해!"라고 부모님이 채근할 때 올라오는 짜증, 한 번쯤 느껴본 적 있지 않나 싶다.


딱 저 심정이었다.


뭘 하려고 하면, 그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는 이 사람의 말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더 큰 짜증은 나와 이 근로자보다 손을 2배로 빨리 움직이던 나의 오른쪽의 직원은 나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무언가 일하는 것이 부족하다면, 이 직원이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람은 뭔데 자꾸 간섭인거지..?'



그러다 내가 표현할 결심을 한 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이 근로자가 말을 하는 대신 나의 팔을 툭툭치고, 손가락으로 까딱거리며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 상자 쪽을 가리켰는데, 이때 너무 불쾌한 느낌이 들면서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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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모르는 사람 몸을 터치하는 건 무례한 거 아닌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타인이 나의 경계선(Personal Boundary)을 넘어올 때이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알바를 갔을 때 그날 처음 보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말 대신 나의 몸을 툭툭 건드리며 부르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엄청난 저항감과 불쾌함이 올라온다. 그런데 지난 경험들을 살펴보면 항상 이런 상황이 펼쳐지기 전에 그 어떤 패턴 혹은 전조 단계가 있는데, 이는 꼭 상대방이 나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야 몸에 터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더 기분이 나쁘게 느껴졌었지만 나를 툭, 툭 건드리며 부르는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느껴지는 불쾌함이 무언가 내 안의 열등감 때문일까 봐, 그렇다면은 이 불쾌함은 오롯이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었다. 상대방은 전혀 나쁜 의도가 없이, 그냥 상대방의 기준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툭툭 친 건데, 단지 나의 감정이 안 좋아서 말을 한다는 건 과거의 나의 가치관에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이번의 경우처럼 나의 상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내 의사를 좋게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열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조금씩 변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아무리 상대방의 의도가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기준으로 불편한 무언가를 경험한다면 '목소리를 내어 나의 경계선을 표현해도 된다.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정한 상황 '잘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 몸을 툭툭 치는 행위'가 무례하다는 생각이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어떤 자신만의 이유로 무시하는 생각이 없다면, 반대로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상대방 동의도 없이 몸을 터치할 수 있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잘 모르는 사람의 몸을 터치하는 거지?



아마도 이때 내가 더 불쾌하게 느꼈던 건 이 사람이 지난 몇 시간 동안 했던 명령조의 간섭하는 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더 무례한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직감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의사를 표현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 툭툭 치는 일이 있고 1시간 정도 지나 쉬는 시간이 돌아왔을 때 최대한 불쾌한 감정을 배제하고 옆 근로자에게 말을 건네었다.



"저기, 무언가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로 해주세요. 아까 저를 부를 때 말없이 몸을 그냥 터치하셔서 조금 불편해서요."


"몰랐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아.. 네. 무의식적으로 그러신 건 느꼈는데요. 다음부터는 도와달라고 로 해 주세요."


짧은 대화가 끝나자 조금은 어색해진 분위기로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말을 하고 나서 순간 '아.. 그냥 퇴근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두어 시간 더 참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짧게, 아주 짧게 들었지만, 이런 후회를 금세 지워지게 만들었던 건, 이후 이 사람의 복수(?) 아닌 복수 같은 더 짙어진 간섭과 잔소리 덕분이었고, '아, 그나마 그거라도 말하길 잘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A Lack of Boundaries Invites a Lack of Respect
자신의 부족한 경계선은 타인으로부터 부족한 존중을 야기한다.




#. 아.. 그래도 뭔가 내가 잘못한 거 같은 느낌이 계속 든다.



내가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사적인 경계선을 침범당한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건,


1. 유년기 시절 나의 목소리를 내면 반드시 자신의 기분 나쁜 감정을 다른 형태로 풀어서 수동적으로 공격했던(passive-aggressive) 아버지와 오빠에 대한 경험으로 그 기억 속 두려움과 공포가 DNA에 각인될 정도로 트라우마로 남아서였고,

2. 1번과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부모님의 시각으로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로하면 '나쁘고 버릇없는 아이'라는 프레임이 씌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알바를 끝나고 나서도 마음 한편에는 '잘했어. 그때 잘 말했어.'라는 생각과 반대로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냥 이번에도 참았어야 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의 경계선을 잘 지키는 것은 평생의 연습이자 숙제



어찌 되었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는 정말 비일비재한데, 이상하게도 경계선이 침범당하는(personal boundary violation) 일이 생기면 이를 표현하는 것이 왠지 '쪼잔하거나', '모나거나', '예민하게' 느껴져서 '말하느니 그냥 내가 참지..'하고 넘어가고 집에 와서는 일터에서 꾹 억눌렀던 생각과 감정들에 우울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그냥 '일 때문에 피곤해서 그렇지 뭐..' 하고 하루를 넘기며 익숙하게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그런데 이번을 계기로 표현을 연습하려 한다.

나는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내 선이 뭉개질 때마다, 침범당했다고 느껴질 때마다 목소리를 내고 싶다.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짜증 내지 않아도 담담하게 '나는 이런 게 싫습니다. 나의 선을 존중해 주세요.'라고 덤덤하게 좋게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고치기보다 그걸 말하고 딴지를 걸었다고 수동적으로 공격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40대 중반으로 향해가는 나는, 이제는 나로 사는 것이 조금 편했으면 한다. 내가 이제는 조금은 더 편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이전보다는 덜 두려웠으면 한다.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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