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제발 표현하라고 떠미는 삶

의식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by 해나HJ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말이다.


팍팍하고 잘 풀리지 않는 현실에 은 언제나 있었다. 무언가 꿈꾸고 도전하려 하면, 마음 한 구석에서 항상 무언가가 나를 붙잡았다.


원하는 것을 하려면 언제나 그 마음의 끝에는 '나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래도 그 여정 중에서도 가장 적게 나를 드러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은 있었으나 우주의 조화랄까.. 삶 속의 신비랄까. 그 도전은 중간에 가로막혀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소위 '먹고살 수 있는' 작은 희망의 빛줄기 마저 꺾어버렸다.






#. '스스로를 표현해야만 한다', 답은 언제나 있었다.



답을 알고 있었기에 계속 피하고만 있었다. 그 답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서웠다. 어린 시절 내가 자란 환경에서는 나의 목소리를 내고, 생각을 드러내고, 순간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을 표출하면 그것에 대해 건강한 미러링이 아닌 을 내렸다. 나의 목소리는 '대드는 소리'였고, 나의 감정은 '못된 아이, 못된 자식이기에 느끼는 감정'이었으며 나의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강한 아버지에게는 이유는 상관없이 그저 '버르장머리 없고 싸가지 없는 일이었다. 그런 양육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자기표현이란 맨 몸으로 전쟁터에 걸어 들어가는 일이나 다름없다. 온몸에 총알이 박히고, 화살이 꽂히고, 칼이 온몸을 베고 관통할 거란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전쟁터로 밀어내는 일과 같다.



이렇게 느끼는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세상에 드러내고 나 여기 있다고 외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의 작은 행동과 움직임에는 대중이 아닌, 부들부들 떨면서 한두 명 정도의 누군가만을 기다린다. 나와 같은.. 누군가를.


그렇게 오랜 시간 이 여정을 걷다 보니 삶은 어느새 고여서 나를 지탱해주지 못하고 있다. 현실은 두려움을 가득 안고 내 안의 고여있는 에너지로 인해 팍팍하고 오래된 옷처럼 누추하고 건조하여 색이 바랜 그런 모습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삶은 알고 있을까. 이 우주라는 것은 그게 얼마나, 정말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고는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걸 알고 있다면 이미 나를 살찌우고, 행복하게 해주는 편안한 현실을 눈앞에 펼쳐놓았을 거다.





#. 삶 : "그대, 이대로 팍팍한 현실을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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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그래서 그걸 위해서 내가 더 힘써야 할 일은 내 안을 깊게 보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마음을 듣고 보는 일을 정말 잘해야 한다. 글을 쓸수록 그냥 말만 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에 더 글을 못쓰겠다. 미안함뿐이다.


2024년. 내가 내 마음을 깊게 들어주는 한 해를 살면 그것만으로도 올 한 해는 만족스러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만족스러움을 넘어 어쩌면 최고의 한해를 나에게 선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힘든 알바로 지친 몸에 졸려운 눈을 꿈뻑거리며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나에게 아주 작지만.. 조금의 성의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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