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많은 걸 해내야 할 때 나는 그곳을 떠난다

by 해나HJ


알바가 구해질 때는 당일 알바나 이틀, 삼일 하는 알바도 구해질 때가 있지만, 일주일 혹은 2주간 하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 하는 알바도 구해질 때가 있다.


긴 기간 동안 하면 일단 일하는 날이 많은 만큼 돈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좋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이유는.. 그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따라서, 근무지의 환경, 분위기가 어떤지에 따라서 근무 기간이 정말 행복할 수도 반대로 지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알바 공고 내용이 50% 부족할 때


2%도 아니다. 한 50% 부족하게 느껴진다.


물론 가끔가다 100% 넘치는 공고도 있다. 그때는 소위 '꿀' 알바라고 부를 만하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알바 공고 내용이 실질적인 일의 내용을 얼마나 담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담느냐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공고에 너무 자세히 쓰는 것도 조금 이상할 거다. 내가 말하는 건, 일의 '전체적인 그림'과 '현장에서 하게 되는 일에 맞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와 최고의 경우가 있다. 먼저 최고의 경우는 알바는 '전체적으로는 이러이러한 업무이고, 세부적으로 이런 작업, 업무를 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경우인데, 출근해 보면 정말 공고 내용 그대로인 경우이다. 반대로 최악의 경우는 공고에 쓰여있는 내용과 현장 업무가 완전히 다른 경우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고용노동법에 어긋난다고 알고 있다.) 내 기준에서의 최악의 경우는 공고 내용과 현장의 업무가 많이 다른 경우이다. '완전히 다름'까지는 아니고, '조금 멍해지는 정도의 다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제품 스티커 제거 작업' 이렇게 해놓고 가보았는데 제품의 무게가 몇 kg이라 두 손으로도 힘들게 들어야 하고, 거기에 스티커 제거 작업 자체라는 것이 스티커 제거 스프레이를 계속 뿌리면서 칼 같은 도구로 벅벅 긁어도 잘 제거가 안 되는 업무 상황 정도이다.


이런 경우, 공고 내용에는 'OOkg의 제품 이동 작업 + 스티커 제거 스프레이와 칼로 제거 작업 수행'에 더 나아가 '스티커 제거 스프레이 냄새가 독할 수 있습니다. 냄새에 민감한 경우는 지원에 참고에 주세요.'까지 들어가면 정말 훌륭한 공고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알바를 지원하는 사람들 기준에서.)




#. 너무나도 많은 걸 해야 할 때 나는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최악의 경우는 현장에 출근했을 때 업무 '양'이 공고 내용으로서 도저히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다가 복잡한 경우이고, 서비스에 관련된 업무라 고객을 대해야 하는데 심지어 고객의 컴플레인을 많이 들어야 하는 상황, 이에 더해서 현장에서 쉬는 시간도 없이 (담당 직원이 직접 쉬는 시간을 따로 줄 수 없다고 말한 경우) 식사시간 제외, 화장실 갈 시간 제외, 약 8시간 동안 쭉 업무 수행에 대해 몰아치는 경우인데, 여기에 심지어 급여까지 최저시급을 책정해서 주는 경우이다. 이 정도로 복합적으로 상황이 막막하면 나는 가령 일주일 예정의 알바였을지라도 내가 5일 내내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고 첫째 날 담당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물론, 다른 이유로 말이다.) 그곳을 떠난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기분이란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하나의 기계가 되어 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알바 전문 용어에 '추노'라는 말이 있다. 어느 드라마 제목과 같은 말인데 담당자에게 말없이 그냥 조용히 근무지를 떠나는 것이다. 즉, 도망가는 것이다. 이런 추노는 내가 말한 위 최악의 상황의 최악의 상황일 때 일어난다.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란 저런 환경에 플러스, 담당자나 주변 알바 근로자들 혹은 근무지의 다른 직원들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할 때가 있는데, 알바 근무지에서 만난 다른 알바 근로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론 각자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알바 갔을 때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내가 인간임을 스스로 무시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이 불문, 그냥 "야!"로 부르거나 다짜고짜 반말은 기본인 그런 경우.)





#. 사회생활로 얻는 것이란, 나만의 기준과 가치관을 세우게 되는 일


사회생활을 하면서 특히, 단기 알바로 수년간 이곳저곳,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일은 바로 많이도 부족했던 나만의 생각과 기준,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된 부분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30대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해보기도 했고, 해외에서 짧게 지낼 때 파트타임으로 근무해 본 적도 있지만... 그뿐이었다. 그것도 분명 '사회생활'이었지만, 내가 30대 초반부터 40대까지의 단기 알바를 하면서 겪었던 사회의 경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이 알바를 하며 겪는 사회 경험이 때로는 너무 고통스럽고, 상처가 되고 우울하고 힘들지만 분명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기에 그것이 어느 정도 소진될 때까지는 이 삶이 이어질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카르마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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