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랑을 주어야 할 책임을 알아버렸다.
40년을 조금 넘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나의 4분의 1 혹은 그것보다 더 적은 나 자신을 살아온 것 같다. 오랜 시간.. 나는 왜 나 자신을 그것밖에 살아내지 못했을까.
'어둡고 상처 많은 나',
'왜인지 잘 모르지만 무언가 늘 움츠려져 있는 나',
'오래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나도 모르게 외면하기로 한 나의 일부분'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모든 부분들을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거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그들이 무언가 나를 '텅' 비어 있는 듯한 사람으로 기억했을 것 같다. 한 번도 직접 그들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들이 나에게 가끔 "자신감 좀 가져.", "나는 당신을 못 믿겠어 왠지." 이런 말을 했었는데, 이걸로 조금의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혹은 TV에서 뭔가 나와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을 볼 때가 나 자신이 그렇게 느끼기에, 내 마음이 투영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조금 옆으로 새어 이야기하자면 저 놈의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된다'는 말은 들을 때마다 미묘한 짜증이 늘 올라온다.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면 진작에 가졌겠지, 자기가 가지라는 말을 한다고 상대가 '뿅.' 하고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도 아니고 남 속도 모르고 저런 소리나 한다며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듣고는 했었는데, 이 말은 말하는 당사자는 나름 힘내라고 한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은 더 기운 빠지는 말이다.
'이 시간'은 연재 글의 제목처럼 '어두운 나를 깊게 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내 안의 어둠과 고통 그리고 상처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아무도 보려 하지 않았던 내 안의 어둠,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내 안의 상처, 그 안의 모든 분노와 고통, 공포, 두려움, 수치심, 무기력함, 시공간 속에 마비된 마음, 그리고 슬픔.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깊게 보고 들으려 한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나조차도 그 모든 것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나의 현실과 삶 속의 일상 곳곳에서 자신들의 봐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은 일상 속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통해 나에게 매일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이 시간은 억지로라도 가져야 할 시간이자 꽉 찬 나로 살아가기 위한 책임이다.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