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반짝이는 웃음 속, 숨은 그림자
밝게 웃으며 “저 잘 지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양팔과 허벅지에 수없는 실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겉모습이 밝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 웃음 뒤에 숨겨둔 상처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어떤 일이 생기고 난 후에,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걔가? 왜??”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쉽게 안심할 수 없다.)
우울이나 무기력이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은 오히려 다가가기 쉽다.
적어도 티가 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일상에 문제없어 보이는 아이가 속으로 힘든 경우가 더 많다.
그 부모님과 상담할 때는 한층 조심스러워진다.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마음속은 이미 무너져 있을 수도 있다.
자해나 자살 시도를 알게 될 때도 마찬가지다.
보호자에게 알리는 건 조심스럽지만, 꼭 필요하다.
상담자로서의 내 표정은 차분하지만, 속으로는 ‘불안이’와 ‘슬픔이’가 달려 다니고 있다.
한 책에서는 '자살 시도를 부모에게 알리는 문제점을 말하며, 상담자가 좀 더 버텨줘야 한다'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청소년이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죽음을 계획하는 것을 부모는 전혀 모르고, 상담자의 관심과 버티기 만으로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모든 사례에 한 가지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마음에 후회가 덜 남으려면, 최선을 다해 부모님과 상의하는 수밖에 없다.
학교 선생님도, 친구도 도울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님의 눈빛과 한마디는 절대적이니까.
나는 자해든, 심한 자살 생각이든, 가벼운 시도든
부모님에게 반드시 전한다.
그 과정에서 전화 상담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건 흔하다.
부모님을 만나기 전, 내 마음속은 늘 웅성거린다. (흡사 단톡방 알림 창 같다.)
왜 애를 혼자 두냐!
왜 이렇게 외롭게 만드냐!
(특히 초등 저학년 아이가 애착 베개를 안고 밤길을 혼자 걷는 장면은 지금도 내 ‘슬픔이’를 울린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을 만나면, 그들 나름의 상황과 애씀이 보인다.
아이를 외면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 안의 분노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대신 함께 돕고 싶은 마음만이 남는다.
그리고 꼭 전하는 당부가 있다.
지금 느끼시는 슬픔, 화남, 걱정, 미안함은
다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하지만 오늘 아이와 마주할 때만큼은
걱정·관심·사랑만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도 복잡하다.
어린 게 뭐가 그리 힘든 건지…
관심을 주면 더 심해지는 거 아냐?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무관심이나 “네가 이겨내야지”라는 말로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죽고 싶은 마음을 ‘혼자’, ‘의지’로만 이기라는 건, 수영 못하는 아이를 풀장에 던져놓고 “헤엄쳐 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랑과 관심이 매일 똑같은 온도로 유지되긴 어렵다.
힘들다면 많은 양으로 1년 내내 주지 못해도 좋다.
단, 그 힘든 날에, 당신이 보여준 애정이 진심이었다는 것만은 느끼게 해 주면 좋겠다.
(사랑은 밀당보다 직구가 더 깊게 박힌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은 다르다.
부모도, 아이도, 저마다 다른 사정을 안고 산다.
그렇지만 결국, 바라는 건 같다. 누구나 사랑을 바란다.
한 조사에서 부부가 서로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1위는 “사랑해”였다 ¹.
초·중·고 학생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1위는 “정말 잘했어”, 그다음은 “항상 사랑해”였다 ².
‘사랑해’는 가장 값지면서도, 마음만 있으면 되는 말이다.
그 말이 오늘을 버티게 하고, 내일을 꿈꾸게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랑을 바란다.
오늘 건넨 한마디가, 아이의 오늘을 지탱하고 내일을 살게 한다.
¹ 중앙일보,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1위는?」, 2020.5.21.
² 조선일보, 「초중고 학생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 조사 결과」, 2022.10.3.
※ '왜 애를 혼자 두냐'는 내 안의 외침은 일상 중 몇 시간을 혼자 있는 상황이 아니라,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는 정도의 ‘혼자’를 의미한다는 점을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