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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Apr 07. 2024

예술적으로 빚어낸 마카오의 딤섬

The Eight in Macau, 2024

마카오는 테마파크처럼 화려한 도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모델로 하여 지어진 거대한 카지노 관광단지는 도박의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명소를 축소해 놓은 각종 건축물로 인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카오의 카지노 단지에서는, 왼쪽을 보면 빅 벤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고 있고, 오른쪽을 보면 에펠 탑과 그 앞에 펼쳐진 정원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실내에는 거대한 베니스의 수로를 옮겨 놓아 곤돌라를 타고 칸초네를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세계의 명소를 모두 모아 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각각의 건축물들이 역사와 함께 축적해 온, 특유의 아우라까지 가져오지는 못했다. 파리의 에펠탑은 그 자체의 건축미도 대단하지만, 그것이 파리에 있기 때문에,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마카오의 복제품들은 진품 못지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한 화려함을 자랑한다.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아니니 얼마든지 추가적인 치장을 할 수 있고, 이것이 과연 본래의 외관이나 형태를 해칠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려한 치장의 효과가 정점을 이루는 야경의 화려함만큼은 마카오의 복제품들이 진품에 뒤지지 않는다.


마카오 방문 전 한 블로그에서, 마카오의 야경에 대해 '화려한데 이상하다' 라는 평을 본 적이 있었다. 방문하기 전에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직접 보니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카오의 모든 야경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타이파 주택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포르투갈 양식의 건축물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역의 야경은 정말 오랜 시간 앉아서 호수와 야경을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었으며, 세나도 광장 일대는 번잡스럽고 관광객이 많기는 했지만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도 카지노 지구의 화려함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과해서 그런 인상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약간 과장을 해서 표현해 보자면, 잠실 롯데타워가 하나 있는 것과, 그런 롯데타워가 100개쯤 있는 풍경의 야경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100개쯤 되는 거대한 롯데타워가 각자의 빛을 내뿜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화려하기야 하겠지만 어지럽고 영화 속 광경이 아닌가 싶을 것 같다.



  




도시만큼이나 마카오의 식당들은 화려한 곳이 많다. 특히, 마카오에 즐비한 호텔들은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여러 분야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데, 고급 식당가 또한 경쟁 종목에서 빠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낙후하긴 했지만, 본섬의 그랜드 리스보아는 마카오에 있는 3곳의 미슐랭 스타 식당(현재는 오늘의 주제인 디에잇이 2스타로 떨어지면서 두 곳만 남았다)중 두 곳, 로부숑 오 돔과 디 에잇을 보유한 것으로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이들 호텔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고급 식당을 적극적으로 홍보에 활용하고 있어, 호텔 로비나 외부에서 홍보 간판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방문 시점인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여기 디에잇과 신규 카지노 단지인 시티 오브 드림즈 내의 제이드 드래곤이 모두 광동식 중식으로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며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디 에잇과 제이드 드래곤 중 어디를 방문하는 것이 좋을지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두 곳 모두 점심에 방문해 볼 수 있었다. 사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중식당의 경우에는, 특히 점심이라면 생각보다 훨씬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디에잇의 코스 메뉴는 인당 3,300MOP 수준으로 두 명이 갔다가는 100만원 넘는 식사 비용이 나오게 되지만, 점심에는 세 개에 100MOP, 그러니까 대략 17,000원 정도 수준의 딤섬을 주문할 수 있다. 당연히 딤섬 말고 한두 가지 정도 요리를 같이 주문해도 되고, 저렴한 딤섬만 먹는다고 해서 눈치를 준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다. 딤섬 가격도 결코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유명 딤섬 레스토랑인 몽중헌의 딤섬이 14,000원에서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본고장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먹는 가격 치고는 그렇게까지 높은 가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절대적으로 비싼지, 싼 지를 묻는다면 당연히 비싼 것은 사실이다. 딤섬 세 피스 먹을 가격이면 밖에서 완탕면을 두 그릇 먹을 수 있다.)



디에잇의 인터넷 예약은 생각보다 빨리 마감되는데,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이메일로 여행 일정을 알려주면서 이 중에 점심이 가능한 날짜가 있냐고 물었더니, 테이블이 구석이라 협소하기는 하지만 식사가 가능한 날짜가 있다며 회신을 주었다. 그래서 이 날로 예약을 잡았다. (시티 오브 드림즈의 제이드 드래곤 또한 동일하게 이메일을 통해서 예약을 할 수 있다. 해외 미슐랭 레스토랑들은 어플을 사용하여 예약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외국인이라 어플 사용이 익숙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이메일을 보내면 흔쾌히 응해 주는 경우가 많다.)



디에잇을 찾아가는 길은 다소 복잡한데, 외국인이라면 카지노를 경유해서 갈 수 있다. 하지만 카지노의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자녀를 동반하여 카지노에 들어가기 여의치 않다면 우리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이동해도 문제는 없다. (참고로, 제이드 드래곤은 정말 거대한 쇼핑몰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길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길을 잃는 손님이 워낙 많아서 식당에서도 찾으러 나가는 것을 으레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중국 문화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금방 눈치챌 수 있겠지만, 디에잇(The 8)이라는 식당 이름 자체부터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을 그대로 쓰고 있다. 서양에서는 숫자 7을 좋아하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숫자 8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8의 발음이 필 발자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발(fa) 자는 소위 대박나다, 사업이나 재물운 등이 크게 피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름뿐 아니라, 식당의 인테리어들까지 모두 숫자 8을 형상화한 장식들로 채워져 있다. 홍콩에서 방문했던 어느 식당들보다도 중국에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와 인테리어였다. 전체적인 색감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 계통이었고, 안내하는 서버들은 중국 전통 복장인 치파오를 갖추어 입고 있었다. 숫자 8을 형상화한 장식들 뿐 아니라, 역시 돈이 남는다는 뜻의 '진위'와 동일한 발음을 가져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금붕어를 주요 장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장식들을 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역시 고대로부터 옥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안내받는 자리는 사실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예약 시에 사전에 양해를 구하기도 했고, 자리를 안내하면서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기 때문에 크게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아니었다. (사실 구석 자리라고는 하지만, 정말 작은 홍콩의 테이블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면 식사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자리에 앉으면 여러 명의 서버가 일제히 서로 다른 메뉴판을 가지고 온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이렇게 여러 명이 우르르 와서 메뉴판을 주고 차를 권해서 무엇을 주문하는지도 모르고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굳이 빠르게 주문할 필요는 없다. 중국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판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하나의 시그니처 요리를 예술적으로 잘하는 식당보다 완성도는 평범하더라도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줄 아는 식당을 더 좋은 곳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함께 포함된 메뉴판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기 때문에, 미리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처음부터 별도의 차 메뉴판도 같이 가져다주었는데, 의외로 홍콩에서는 어떤 차를 마시고 싶은지 구두로 물어봤지 이렇게 차 메뉴판을 가져다준 적이 없었다. 이 날 마신 차에 대해서는 별도로 기록을 남기고 싶어 이 글에서는 따로 적지 않으려고 한다. 차를 주문한 다음, 메뉴판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너무 많은 메뉴에 당황하지 않도록 가장 첫 페이지에 별도의 추천 요리를 기재해 놓았는데, 관광객이 많은 마카오의 특성을 반영했다는 느낌도 든다. 딤섬 메뉴도 40개 가까이 될 정도로 다양하고 충실한데, 딤섬에도 추천 메뉴가 표시되어 있어 주문이 어렵지 않다. 특히, 만약 블로그 등을 통해 특정 딤섬을 생각하고 방문한 경우라면 사진만 보여 줘도 주문이 가능하다. 제목에서도 적었지만, 디에잇의 딤섬은 예술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그 모양만 봐도 어느 메뉴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작은 전복이 먼저 나왔다. 첫 음식으로는 약간 맛이 무겁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입맛에 익숙한 감칠맛이 입맛을 살려 준다. 추천에 따라 XO소스를 별도 주문했는데, 소스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고 한다. 사실 XO소스가 말린 전복을 비롯해 건어물로 만든 것이니 그 맛의 계열이 비슷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디에잇의 시그니처 메뉴인 금붕어 형태의 딤섬이 가장 먼저 나왔다. 이 딤섬은 나오자마자 주의를 끌 만큼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꼬리지느러미 세 개와 눈, 입까지 사람의 손으로 섬세하게 빚어 낸 이 딤섬은 단순히 모양 뿐 아니라 지느러미 부분의 색까지 완벽한 금붕어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정말 물 안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를 꺼내 온 것 같은 형태뿐 아니라 색까지 합쳐져 그야말로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EBS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식으로 모양을 낸 딤섬 중 완성도가 높은 것을 '예술 딤섬'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결코 과장이나 호들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렇게 모양을 내기 위해 맛을 희생했다면 처음의 감탄이 오히려 더 큰 실망으로 돌아오는 법인데 다행히 디에잇의 딤섬은 그렇지 않았다. 맛 또한 훌륭했는데, 안쪽의 새우는 익힘의 정도가 딱 적당해서 탱글탱글한 식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렇게 모양을 내기 위해 꼬리지느러미도 붙이는 등 여러 세공을 했음에도 딤섬 피가 거슬린다는 느낌 또한 전혀 없었다. 간혹 못 만든 딤섬을 먹어 보면 안의 속재료 맛보다는 겉의 피 맛이 잔뜩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 처음의 만족도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예쁜 모양의 음식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모양과 맛을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시도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모양은 모양대로 훌륭하며, (물에 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금붕어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새우 맛의 딤섬은 그 자체로 맛있다.



다음 메뉴는 창펀이다. 창펀은 쌀로 만든 얇은 피에 해산물이나 야채를 넣고 말아서 찐 다음 간장에 찍어 먹는데, 보통 그 피가 흐물흐물한 식감으로 느껴져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야기가 많다. 디에잇의 창펀은 흐물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안쪽에는 유명한 광동 스타일의 돼지 바비큐와 일본 오이를 넣어 채웠다. 사실 생긴 모양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메밀전병 느낌인데, 내용물이 양과 맛 모두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여담으로, 창펀이야말로 이 날 먹은 요리들 중 최고의 가성비 메뉴다. 6조각 나오는데, 사실 이것 하나 다 먹으면 거의 배가 찰 것이다. 가격은 딤섬들 중에서 저렴한 편이다.)



다음으로 등장한 메뉴는 광동 요리에서 유명한 차슈다. 이번 여행에서 총 세 곳의 차슈를 먹어볼 기회가 있었고, 특히 경쟁 관계인 제이드 드래곤과 디 에잇 두 곳 모두 차슈를 먹어볼 수 있었다. 광동 요리 식당들은 이 바베큐를 별도 메뉴로 분류할 만큼 바베큐에 진심인데, 광동 지방이 덥고 습해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 이렇게 바베큐로 만드는 방식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디 에잇의 차슈는 겉은 바삭할 정도로 익혀 냈으면서 속은 촉촉하게 육즙을 간직하고 있다. 차슈는 보통 소스를 발라 굽기 때문에 튀김과 같은 느낌의 바삭함은 아니다. 겉면과 속살이 그 식감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특히 다른 곳들에 비해 디에잇은 소스를 자작하게 깔아 내어 왔는데, 소스에서 느껴지는 풍미와 달달한 맛이 강조되었다.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흔한 고기인 돼지고기를 고급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로 내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 것이며, 그 흔적이 요리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차슈의 식감은 쫄깃한 곳이 있고 부드러운 곳이 있는데, 디에잇의 차슈는 부드러운 쪽에 가깝다. 수육이나 보쌈의 지방 부위 같다는 의미의 부드러움은 아니고, 구운 살코기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부드럽다는 의미이다.



다음 메뉴는 다시 딤섬이다. 단품으로 이것저것 주문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가져다 주었다. 이 딤섬의 모양 또한 평범하지 않는데, 핸드백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지지대까지 튀김을 이용해 만들어 냈다. 메뉴판에는 Puff pastry with river shrimp in purse shape 라고 적혀 있는데, 민물새우를 활용했다고 한다. 

간장 양념이 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금붕어 모양 딤섬보다는 약간 모양에 치중한 느낌이 있다. 퍼프 페스츄리의 특성상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은 나지만 아무래도 약간은 퍽퍽한 감이 있는데, 내부의 속 또한 그렇게 물기가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해서, 맛은 있는데 전반적으로 약간은 퍽퍽한 느낌이 있다.



역시 모양에 많은 신경을 쓴 딤섬. Calabash shape 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이는 조롱박을 의미한다. 역시 숫자 8의 모양과 유사하게 튀겨 냈다. 안에는 구운 돼지고기와 말린 새우를 넣었는데, 이 딤섬 역시 속재료의 맛보다는 찹쌀로 만든 피의 쫀득한 식감이 더 인상적이다. 약간 찹쌀도넛 같은 느낌. 아마 속재료를 돼지고기나 말린 새우 같이 묵직한 맛이 나는 재료를 쓰지 않았다면, 아마 후식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다음 요리는 야채 볶음. 중식의 야채 볶음은 개인적으로 입맛에 굉장히 잘 맞는 편이었는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대 부분이 식감이 정말 좋았다. 잘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먹는 느낌. 체면을 차리지 않고 베어 물어야 한다는 점은 약간의 단점이지만. 

마치 잘 구운 스테이크처럼 채즙이 배어 나오고, 식감은 푹 무르거나 설익어 어석거리는 느낌이 없다. 조리 방법도 인상적이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카술레 냄비에 야채와 말린 새우를 같이 넣고 가져와 가볍게 볶아 낸다.                



이 야채의 맛이 정말 좋아서 어떤 야채인지 물었다. 중국에서 자주 즐겨 먹는 야채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KALE, 케일이란다. 케일을 모를 리가 있나. 심지어 우리 회사 급식 샐러드바에도 가끔 등장하는 채소니까. 다만 내가 알던 케일과 달리 그 대가 아주 두껍다. 잎도 붙어 있지만 볶는 열기로 인해 돌돌 말렸고, 말린 새우와 각종 양념이 있긴 하지만 분명 그 맛의 중심은 이 케일이 잡고 있다. 알던 재료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는 것은 마치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즐겁다.


마지막 딤섬은 디 에잇의 시그니처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멋진 모양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저 가시 하나하나는 그 큰 중식도로 반죽에 모양을 낸 것이다. 그러니까 저 가시 하나당 칼이 한번 들어갔다는 소리가 된다. 그야말로 '예술 딤섬' 이 많은 디 에잇에서도 이 고슴도치 딤섬과 가장 먼저 선보인 금붕어 딤섬을 시그니처로 밀고 있는 듯 하다. (호텔 로비의 홍보 영상에 이 두 가지 딤섬을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크지 않은 크기임에도 이렇게 촘촘하게 가시를 넣고, 입 모양도 살짝 뾰족한 것이 귀엽게 고슴도치 모양을 잘 살려 만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모양을 만들 수 있는지 다시 봐도 놀랍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멋진 딤섬은 포크 번이다.(메뉴판에도 Crispy barbecued pork buns) 포크 번 자체는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흔한 딤섬이다. 우리나라 딤섬 가게에 가도 있다. 빵 같은 두꺼운 피 안에 구운 돼지고기가 들어 있는 셈인데, 호빵 내지는 왕만두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하지만 멋진 모양 외에도 이 딤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 껍질 내지는 빵 부분을 너무 두껍지 않게 만들어 살짝 쫄깃한 식감이 있으면서도 안의 속재료와 그 양의 균형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호빵이나 왕만두를 생각해 보면, 빵 부분이 너무 두꺼워서 퍽퍽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 균형감이 정말 좋았다.


여담으로, 디에잇의 접객은 홍콩처럼 무뚝뚝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친근함을 표하는 정도도 아닌데, 이 고슴도치들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며 감탄하고 있으니 담당 서버가 지나가면서 정말 귀엽죠? 라며 말을 건다. 그 말 그대로다. 심지어 포크 번이다 보니 손으로 집으면 따끈하고 폭신해서 여러모로 귀여운 딤섬이다. 다만 베어 물자니 왠지 미안해서 한입에 꼭 다 넣게 된다.





식사가 마무리되고, 후식이 나올 차례. 대부분의 중식당에서 후식은 서구권의 파인 다이닝에 비해 그렇게 그 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은데, 디 에잇은 전반적으로 음식의 모양에 많은 공을 들인 식당답게 디저트 또한 멋진 모양으로 나왔다.


첫 번째 디저트는 참깨 푸딩인데, 심심한 모양으로 내지 않고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 모양을 내서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냈다. 왠지 서구권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전형적인 동양 식당의 디저트 모양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동양 관광객인 우리에게도 멋진 모양은 충분히 자극이 된다.


사실 이 디저트의 킥은 옆에 나온 참깨를 올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참깨의 고소함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달달한 맛의 조화는 정말 훌륭하다. 종종 방문하는 식당에서 볶은 메밀을 올린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때도 감탄했는데 그보다 좀 더 맛의 조화가 훌륭하다. 아마도 그냥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참깨의 맛을 아이스크림에 배도록 하기 위해 복잡한 가공 작업을 거치지 않았을까. (메밀 아이스크림의 경우 볶은 메밀을 우린 물을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사용한다고 한다.)



다른 디저트 또한 모양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디 에잇의 상징인 금붕어 모양을 살려 만든 푸딩이다. 생각해 보면 두 디저트 모두 푸딩이긴 한데, 적어도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보인다. 두 금붕어는 각각 망고와 코코넛으로 만들었다. 맛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맛의 수준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마지막까지 식사를 즐겁게 해 주기에는 충분한 맛. 두 푸딩이 섞이지 않도록 코코넛 푸딩으로 물결 모양의 자연스러운 구획을 만들어 두었는데, 얼핏 보면 태극 문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두 색이 보기 싫게 섞였다면 요리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모든 식사가 끝나고, 별도의 주문 없이 나오는 마지막 디저트의 차례가 되었다.

마카오답게, 마카오를 상징하는 디저트인 에그 타르트와 밀크티가 나왔다. 밀크티는 먼저 맛을 보고, 원하면 파우더를 더 뿌려 줄 수 있다고 한다. 한 입 마셔 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을 만큼 맛이 진해서 괜찮다고 했다. 에그타르트는 마카오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인 만큼, 식사의 마지막에 여기가 마카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좋은 메뉴였다.






그야말로 테마파크나 다름없는 화려한 마카오에 어울리는 내부와 그에 걸맞은 공예품 수준의 예술적 형태의 음식들까지. 디에잇에서의 식사는 마카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식사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더 화려하고 더 고급 요리들이 많겠지만 점심 메뉴인 딤섬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음식이 인상에 남는다. 하나는 당연히 세공이라고까지 표현할 만큼 정교했던 금붕어나 고슴도치 딤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음식이었다. 다만,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기대를 뛰어넘는 멋진 모양과,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설프게 모양 따라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포크 번, (아무래도) 하가우와 같이 원본 음식의 맛을 철저하게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양과 같이 색다른 맛을 기대했다면 그 점에서는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설프게 색다른 맛을 찾아가다 이도저도 아닌 괴작이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다를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은 케일 볶음이었다. 분명 내가 아는 이름의 채소를 활용했음에도 전혀 다른 요리가 나왔고, 말린 새우와 돼지고기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케일을 중심에 놓고 고기와 해신물은 철저히 조연으로 사용했다. 높은 온도에서 재빨리 볶아 낸 야채는 채즙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식감 또한 생 야채의 아삭함도, 푹 익은 야채의 물렁거림도 아닌 그 가운데 어딘가를 절묘하게 잡아 내어 전체적으로 주문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마카오 여행에서도 이런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카지노 단지의 화려함이나 세나도 광장을 비롯한 유명한 포르투갈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멋진 일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마카오 본섬의 끝 쪽, 아마 사원 근처의 작은 공원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였다. 그냥 공원에 있는 작은 커피 매점 정도로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가 갖추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맛도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만들어 낸 공원 한편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바람을 맞는 일은 마카오 여행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이런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 음식도, 여행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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