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나 마카오는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맞벌이가 많고, 주택이 협소하여 번듯한 조리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홍콩 - 마카오 여행에서는 호텔 조식을 신청하지 않고 현지인처럼 아침 식사를 해 보기로 했다.
홍콩에서는 차찬탱 식당들, 란퐁유엔이나 만와, 혹은 딤섬 식당인 린흥귀 등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마카오에서도 이러한 식당들을 방문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백종원이 방문한 맛집으로 잘 알려진 세나도 광장의 웡치케이, 그리고 정말 즉흥적으로 들어간 아마사원 근처의 동네 식당이었다. 두 곳 모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특히 아무런 기대 없이 들어간 동네 식당에서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마카오는 크게 두 지역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멋진 카지노 리조트가 즐비한 코타이 지역. 이 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네치안 마카오를 비롯해, 파리 에펠탑을 가져다 놓은 파리지앵 마카오, 역시 런던의 빅 벤을 마스코트로 삼고 있는 런더너 마카오 등 그야말로 세계의 명소를 축소하여 옮겨 놓은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이런 리조트들은 단순히 카지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다. 예를 들면, 더 런더너 마카오에는 카지노 말고도 해리포터를 테마로 한 전시회라던가, 시간마다 빅 벤 앞에서 펼쳐지는 근위병 교대식 등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명품을 비롯한 쇼핑몰도 입점해 있다. 바로 근처의 베네치안 마카오에서는 실내에 조성된 수로에서 베니스 곤돌라를 타볼 수 있는데, 중간에 칸초네 가수까지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대형 호텔인 윈 팰리스에는 유명한 분수쇼와, 호텔에 설치된 케이블카도 있다. 이들 호텔들은 모두 무료 셔틀버스들로 연결되어 있어 발품을 팔지 않고 마치 테마파크를 즐기듯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반면, 다른 한 곳은 세나도 광장과 마카오의 랜드마크인 세인트 폴 성당 등이 위치한 마카오 역사지구를 들 수 있다. 전체 지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골목마다 포르투갈 점유시절부터 이어져 온 수백년 된 건축물과 토착 도교 사원 등 문화재가 즐비하다. 관광객으로 그야말로 발 디딜 곳이 없는 곳이지만 카지노 단지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한 블럭만 넘어가면 마카오 사람들의 일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 카지노는 처음부터 대규모 레저 단지로 계획을 하고 간척지에 설계한 것이라면, 문화지구는 아주 예전부터 마카오인과 포르투갈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카오에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모두 방문해 보는 세인트 폴 성당에서 10분만 걸어가면, 관광객으로 번잡하지 않은 마카오의 거리와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또, 마카오 역사지구 가장 끝, 바닷가에 면해 있는 아마 사원까지 걸어가다 보면, 마카오 관공서라던가 일반 식당, 상점 등 관광객과 별 관련 없는 곳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행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는 모든 사람이 다 다르지만, 만약 여행지의 일상에 관심이 많은 여행객이라면 카지노를 방문하기보다는 이런 곳들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만다린 하우스, 로우카우 멘션 같은 고택들은 방문할 가치가 있다. 로우카우 멘션은 문화지구 중심에 위치해 있어 사람이 많지만, 만다린 하우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있게 둘러보기 좋다.
먼저 방문한 '웡치케이'는 사실 우리나라에 굉장히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어 한글 메뉴판까지 준비해 놓았을 정도이다. 이른 아침에 방문했는데, 기다리는 손님들 뿐 아니라 개점 이후 들어오는 손님들의 상당 수가 한국인이어서 약간은 실망했다. 역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홍콩의 란퐁유엔은 한국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현지인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관광지 식당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메뉴는 두 가지를 주문했다. 한 가지는 전통적인 완탕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콘지. 홍콩이나 마카오에서는 아침 식사로 이 죽을 즐겨 먹는다고 했는데 이 날까지 먹어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주문했다. 가격은 제법 있는 편이었다. 식당은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큼 깔끔하다.
특히 종이를 깔아 놓은 것이 정말 우리나라 식당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종업원들도 친절한 편.
맛이 어떨지 궁금하던 차에, 완탕면과 죽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완탕면은 홍콩에서 먹었던 것이 조금 더 맛있었다고 느꼈다.
먼저, 웡치케이의 완탕은 고기와 새우를 같이 넣었는데, 새우와 고기가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보다는 따로 논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대부분의 완탕보다는 맛있는데, 피가 거슬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국물은 건새우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오히려, 죽이 나왔을 때 기대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큰 그릇에 넉넉하게 나왔는데, 게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나올 때부터 게 향이 강하게 올라와 입맛을 확실하게 돋운다. 게다가 죽이라서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아 술술 들어가는 맛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게죽이나 게살 스프를 만나기 어렵지 않지만, 이렇게 게를 껍질까지 한 마리 통째로 사용한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별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게의 맛이 죽에 진하게 배어들어 마치 꽃게탕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게 맛이 느껴진다.
큰 대접에 나온 죽이었는데 계속 손이 가다보니 금새 다 먹게 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우리 다대기처럼 넣어 먹을 수 있는 매콤한 양념이 준비되어 있었다. 살짝 넣어 먹으면 역시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나올 때 보니 인스턴트화한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몇 개쯤 사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처음 기대에 비해 식사는 만족스러웠고, 특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게 콘지가 기억에 남을 만 한 직관적이면서도 강한 맛이었다. 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꼭 먹어볼 만 한 음식이다.
다음 장소는 아마사원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즉흥적으로 들른 동네 식당이었다. 아마 사원 일대에는 정말 현지인들이 방문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허름한 식당들이 많이 있었는데,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곳들이 많았다. 일단 외부에서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거나, 아예 오픈형이라 내부가 보이긴 하는데 위생상태가 다소 우려되는 곳들이었다. 그런 곳들을 지나다가 번듯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곳이 있어 그냥 여기서 먹자 하고 들어간 곳이다. (심지어 구글 맵에서도 영어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식당 이름은 '인기면가' 정도로 읽으면 될 것 같은데, 영어로는 왠지 Choi kei noodle이라고 적었다. 메뉴는 전형적인 차찬탱 식당이다. 내부는 깔끔한 인테리어인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말끔한 분식집을 생각해 보면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메뉴판에는 영어와 한문이 같이 적혀 있어 주문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가격은 굉장히 저렴한 편이었는데, 관광지에 위치한 동네가 아니어서 그렇지 싶었다. 식사하는 손님들은 전원 현지인이었고, 외국인인 우리를 오히려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자기들끼리 잠시 의논하더니, 영어가 있는 메뉴판을 보여주며 추천 메뉴도 있으니 고르기 어려우면 이 쪽에서 고르라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추천 메뉴에서 밀크 토스트 하나와 소고기가 올라간 완탕면을 주문했다. 그리고 밀크티도 같이 주문했는데, 이렇게 전부 합쳐도 100MOP가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환경에 만족하며 맛이 그냥저냥 하더라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 음식이 나왔다.
토스트는 기성품에 버터를 발라 나온 것이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무난하게 먹을 수 있었다. 만약 향신료에 지친 입맛이라면 이러한 음식이 입맛에 맞을 것이다.
다음 메뉴는 소고기가 제법 많이 올라간 완탕면. 48MOP니까 대략 8,500원 정도의 가격이다. 보통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먹었던 완탕면은 대부분 건어물 내지 해산물 육수를 사용했는데, 섞어서 쓰거나 고기로 육수를 낸 것 같았다. 면도 적당하고, 국물 맛 또한 중국 스타일의 향신료가 과하게 느껴지지 않아 우리에게도 익숙한 맛이었다. (육수라는 표현보다 국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야채 또한 아삭아삭한 느낌이 있기도 하고, 홍콩영화 등에서 주인공들이 한 끼를 간단하게 때우기 위해 후루룩 먹는 음식 같은 모양새라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물론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맛이라거나, 이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 반드시 여기에 방문해야 한다고 할 정도의 맛은 아니지만, 예기치 않게 들어간 식당에서 만나기에는 충분히 좋은 음식이었던 것 같다. 특히 대부분의 손님들이 현지인이어서 현지인같은 식사를 하고 싶다는 우리 의도에도 잘 맞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항상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곤 한다. 일단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는 돈보다 귀한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식사는 더욱 귀하다. 시간을 허비했다면 아침에 일찍 출발하거나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님으로써 만회해 볼 수 있지만, 식사는 일단 먹었으면 또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마카오 여행에서는 마카오의 3스타 레스토랑인 디 에잇과 제이드 드래곤을 모두 예약하고 방문했으며, 포르투갈과 마카오 스타일이 독창적으로 진화한 매캐니즈 음식은 오 카스티요에서 먹어야겠다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새로움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아무리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갔다 하더라도, 직접 가서 보고, 먹고, 느끼는 것은 당연히 새로울 수 밖에 없다. 현장 특유의 느낌도 있고, 음식의 경우에는 직접 먹어보지 않는다면 사진과 동영상으로는 결코 맛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은 해 볼 수 있다. 아, 저런 음식이라면 대략 이런 맛이 나겠구나. 예를 들자면, 크리스피 치킨은 먹어본 사람들이 모두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묻어 나올 정도로 촉촉하다고 하니, 대략 그렇겠구나 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렇게 알아보고 간 식당은, 기대를 충족하는 경우에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기억에 남지만 조금이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동안의 기대까지 포함해 모두 실망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한 점에서 보자면, 마카오의 아침식사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식당이나 메뉴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때 그 감정은 몇 배로 다가온다. 완탕면은 기대했던 맛 내지는 약간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면, 게죽은 단순한 메뉴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게죽을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리고 그 맛도 뛰어났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게 느껴졌다. 사진을 보지 않으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은 동네 식당은 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현지인처럼 한 끼를 먹었는데 그 음식이 맛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여러모로 기대 이상의 만족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할 때 느끼는 감정이 끊임없이 새로운 여행을 갈망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사실 여행은 귀찮은 점도 분명 있다. 일단 익숙한 공간을 떠나야 하고, 실제로 방문하면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예상과 달라 실망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후와 음식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내가 사람 구경을 온 것인지, 여행을 온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 많은 인파를 뚫고 바티칸에 갔는데, 피에타는 관람 종료라고 해서 보지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 속에서 느끼는 새로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바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피에타를 보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본 멋진 회랑은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너무 많은 사람으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들어간 길거리의 카페에서 예상 외로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그 상쾌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아쉽기는 하지만, 대신 기대하지 않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경험이 될 만한 음식을 만났을 때는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가 좋을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먹어볼 수 있을지 즐겁게 상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