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하니 어떠한 내용을 서두에 써야 나의 복잡하고 방대한 마음을 잘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현재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한 지 5년 차이고 30대 중반이다. 주변의 대표님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나이이지만 애늙은이 소리를 종종 듣는다. 어쩌다 베이커리 카페를 하게 되었고, 젊은 대표이지만 애늙은이가 되었는지부터 풀어보다 보면 어질러진 내 이야기들을 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2013년 7월 전역하기 10일 전 말년 휴가를 나온 날부터 부모님의 매장에서 일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전역한 날이 부모님의 매장 오픈 날이어서 군복을 채 벗지도 못하고, 그 누구의 축하도 못 받고 부랴부랴 업무를 배워나갔다. 당시 24시간 연중무휴인 낚시가게에서 단순히 군대 가기 전처럼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지만 그 시간은 2022년까지 흘렀다. 그동안 대학교 휴학을 6번이나 했고 두 번 정도 쓰러졌었다. 일이 바쁘다는 소리의 반증이었고 부모님 역시 항상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어떠한 투정도 부릴 수 없었다.
낚시가게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면서 운영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경험들은 다른 20대들이 겪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그러한 경험은 지금 내가 베이커리 카페를 하는데 금전적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거의 모든 기반이 되었다.
당시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도 내게는 정말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가 있는 전주로 이동했고 목요일 저녁 수업이 끝나면 막차를 타고 가게가 있는 경기도로 올라와서 야간근무를 했다. 일하는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하루에 3-4시간의 쪽잠을 자고 나머지 시간은 항상 일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20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경쟁업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했다. 미끼 원가를 계산해서 마진율을 줄이고 고객들에게 더 제공해주거나 낚시에 입문하는 고객들과 함께 낚시를 가거나, 잡은 고기는 고객들에게 주는 등 마케팅도 모르는 놈의 막무가내 영업전략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글로는 항상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지만 나름의 고충도 있었다. 낚시매장은 아무래도 고가의 장비가 많았고 그러한 장비를 구매하는 구매력 있는 고객층은 중년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의 어린놈에게 고가의 장비를 구매할 고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신뢰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들 속으로 낚시에 대해서 잘 아는지 의심부터 하거나 나이 있는 점원을 찾기도 했다.(당시엔 이게 가장 스트레스라서 빠르게 늙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몇 가지 낚시노하우를 준비해와서 알려줬다. 일종의 필살기이자 반전매력 어필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낚시에서 매듭법이 굉장히 중요하고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배워놔서 알려줬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가장 화나는 일 중 하나가 고기를 다 잡았는데 매듭이 풀려서 고기를 놓칠 때다. 그래서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법을 알려주면 다음에 나를 보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그렇게 단골이 된 분이 정말 많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애송이 어린놈의 이미지를 낚시 영재 이미지로 바꿔나갔는데 웃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리숙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응대하기도 했다.(서울토박이지만 나름 이 전략은 굉장히 잘 먹혔다.)
부모님의 매장을 한참 운영하던 2018년 수차례 휴학으로 인해 아직 졸업을 못한 나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전주에 내려갔다. 무슨 요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은 저녁에 버스를 타고 내려갔는데 창밖을 보는데 숨이 안 쉬어졌다. 온몸에 땀이 났고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괴로움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결국 정안휴게소에서 내려서 한참을 진정시킨 다음 다른 버스를 타고 전주에 겨우 왔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길게 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 후 나를 돌아보는 꽤 많은 시간을 가졌고 내린 결론이 베이커리 카페였다.(물론 고민하는 시간에도 항상 낚시가게에서 일은 했다.)
항상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고(생존형) 동시에 시간이 날 때는 생존형 커피뿐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스페셜티 커피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만큼 커피는 공과 사에서 나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개인적으로 빵은 좋아하긴 했지만 커피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커피에는 빵이라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사실 포장을 잘해서 그렇지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카페창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나오는 멘트의 표본이 나였다. ‘카페 창업을 만만하게 생각하면 큰코다친다.’,’단순히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를 차리면 환상이 깨진다.’ 등 모두 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업종도 이렇게 열심히 해냈는데 내가 좋아하는 업종이면 이것보다 훨씬 훌륭히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카페였고 지금 나에게 6-7년 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종종 찾아와 조언을 구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뻔한 생각으로는 창업할 수 없다는 말보다는 그 환상이 깨져도 여전히 이 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결심이 있는지를 물어보곤 한다. 나 역시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로망은 많이 깨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취미로 맛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고 유명한 빵집을 돌아다닌다.
Ps) 구구절절 지난 20대 이야기를 간단하게 적다 보니 할 말이 참 많은데 많이 생략되었다. 다음 스토리는 카페 창업준비부터 오픈까지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