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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9. 2024

80 老母에 카카오톡을 알려드렸다

못해도 괜찮아요. 신문물 소통의 즐거움만 알면 됩니다

3월 개강을 하면, 의례 첫 수업은 학생들 대면, 수업 방식 이야기 하는 것으로 첫 수업을 진행한다. 준비해 간 슬라이드 마지막 장에는 내 휴대전화 번호와 사용 가능한 이메일 정보를 넣어둔다.  이렇게 첫 수업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가고, 난 잠시 남아 업무 처리와 이메일 확인 등을 했다.

예상했지만 첫 수업을 마치고 남는 시간은 항상 기분 좋다. 정말 나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부터 거의 5주 정도를 해외 출장으로 보내 그동안 못 했던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전화기 카톡을 확인해 보니 처음 본 이름이 친구 추천으로 올라와 있다. 좀 전에 출석체크하며 불렀던 이름이었고 얼굴도 확인하니 맞는 듯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강의실을 나와 전철역으로 향했다. 6시 전에 운동하러 가면 사람들도 별로 없어 쾌적하게 운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역에 닿으니 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 문득 이번에 대학 입학한 조카가 떠 올랐다. 지난달엔 명절이라고 카카오페이로 세뱃돈(물론 세배는 받지 않았다)도 보내주었다. 문득 어머님께서 조카 즉, 손주에게 입학이라고 은행에 가서 송금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말씀이 떠 올랐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머님이 쓰시는 전화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무늬만 스마트폰이다. 따라서 카카오톡도 없고 은행업무, 가끔 이용하시는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플랫폼도 없다.

가끔 집에 가면, 내 전화기의 카톡 소리와, 뱅킹 업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가끔 송금도 부탁하셨다. 물론 택시는 길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손짓으로 세우신다.

오늘 집에 가서 운동하기는 틀렸다 생각하고 어머님께 전화 걸어 저녁 먹으러 가겠다 했다. 어머님 댁 근처 역에 내리자마자 LG유플러스 매장으로 갔다. 인터넷 되는 전화기 바꿔드리러......

내 이름으로 개통된 전화를 어머님이 쓰기 때문에 교체는 문제없었다.


매장 직원이 내 정보를 입력해 확인해 보니 어머님 기종은 2018년에 판매된 기종이라며, 날 한번 쳐다본다. 그동안 뭐 했냐는 것이겠지. 난 매장 직원의 요금제 설명을 듣고 적당한 요금제를 선택해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으로 교체했다. 새 전화기와 매장에서 제공하는 충전기, 계약서 등을 가지고 집에 갔더니 어머님은 저녁시간이 되었는데 왜 늦었냐, 갑자기 전화기가 먹통이라며 아들을 보자마자 찰나의 민원을 말씀하셨다.

물론, 전화기 바꿨다고 새 단말기를 보여드리고 '사용방법은 동일'이라고 매우 건조하게 말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옆에서 어머니는 새 단말기가 영 불편한 듯 만져보고 측면의 버튼도 눌러보신다.


식사 후 새 단말기 핑계로 내 옆에 바짝 앉으신 어머니는 왜 멀쩡한 전화 바꿨냐고 나무라신다. 그래서 이제부터 대학 입학한 손자와 카톡 하시라고 바꿔드렸다니 신기해하는 얼굴을 만드셨다. 물론 집에서는 와이파이 사용해야 하고 외출 시에는 데이터 사용하면 된다는 설명은 할 수도 없다. 전화기 인터넷 세팅을 맞추고 어머님께서 기대하는 카카오톡을 열었다. 주소록에 있던 내 전화번호는 물론 몇십 명의 주소가 동기화되어 카톡 친구에 있었다.

내가 테스트로 어머님께 보내드리고 그 답장을 해 보면서 카카오톡 사용을 개시하셨다. 당연히 자판도 느리고 어떻게 해야 전송이 되는지, 친구와 대화를 시작하는지 익숙해하지 않으신다.

미국에 있는 조카, 대구에 있는 동서로부터 신기해하며 카톡 답이 오니 어머님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손자의 카톡을 가장 반가워하시고 내게 자랑하신다. 손자가 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어머님, 어른들의 소통 방식은 바쁜 아들, 딸들에 전화하는 것보다 문자 보내기를 선호하는 듯하다. 카카오톡은 우리들 입장에서 사진, 이모티콘 써 가며 다양한 감정표현이 있는데도 내가 어머님 생각을 해 드리지 못했음은 금번 부활절 기간을 통해 고해성사 감이다.


하루 지나 어머님께 카톡 할만하냐 여쭈니 아직 어렵다는 카톡 답이 온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에 가면 택시 호출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또 '고급 기술'인 카카오 송금과 은행 뱅킹도 알려드리려 한다.


내 친구들 중에 부모님과 카톡을 주고받고 또 단톡방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그냥 전화하시면 될 텐데 무슨 카톡을 배우시려 하느냐고 귀찮아했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 어머님이 새 단말기 이곳저곳 만져보며 익숙해 지기를 바랄 뿐이다. 또 여러 사람과 재미있게 소통하기를 바란다.


 - 역지사지 : 나도 내 직원들이 내가 모르는 앱을 사용하면, 궁금하기도 하지만 점차 소외됨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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