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의 힘
두 돌배기 딸아이가 좋아하는 전래동화 방귀 며느리.
한 총각이 곱고 착한 색시에게 장가를 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자랑에 춤까지 춘다.
며느리의 안색이 점점 노래어져 신랑과 시부모는 모두 걱정스레 왜 그런지 며느리에게 물어본다. 며느리는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마침내 방귀를 참아서 그렇다고 실토한다. 식구들은 괜찮으니 방귀를 뀌라고 한다. 그러나 예상외로 크고 요란한 방귀에 충격을 받은 식구들은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가있으라고 한다. 며느리를 친정에 데려다주던 시아버지가 대추나무에 걸린 대추를 보고 참 맛있겠네, 하자 며느리는 나무에 대고 방귀를 뀌어 대추들이 떨어지게 한다. 대추를 먹고 시아버지는 네 방귀가 복방귀라며 집으로 가자고 한다. 며느리는 이후로 방귀를 뿡뿡 뀌며 즐겁게 산다.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곱고 참한 며느리상. 주변의 기대에 부합하는 상에 가까운 한 여성이 있다. 그 내면이 어떨지 모르는 일이건만, 주위에서는 보이는 그의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어쩜 그렇게 곱고 참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괴력의 방귀, 자신의 구린 이면을 강하게 분출해 내는 힘이다. 헤비메탈을 하는 음악인들은 공격성을 이미 무대에서 다 쏟아 내기에 평소에는 그렇게 유순할 수가 없다는 대중음악인들 사담을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들은 적이 있다. 방귀는 이 며느리의 헤비메탈이 아니었을까.
칭찬이 커질수록 남들의 기대는 나의 족쇄가 된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직 보여주지 않은 나의 이면은 점점 더 꼭 감추게 된다. 하지만 배설을 참는 데에는 신체적인 대가가 따르고 그건 결국 겉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신랑과 가족들은 헤비메탈 방귀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급기야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한다. 대추나무는 며느리의 기회였을까 시아버지의 기회였을까. 시아버지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믿는다.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가도 충분히 자신의 자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었을 거라고. 대추나무는 어쩌면 며느리가 시아버지, 혹은 그 가족에게 준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며느리는 배설의 힘으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 보인다.
이 이야기에서 정작 신부의 동반자인 신랑은 무력하다. 신랑은 자신의 부모가 신부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걸 막지도 않고, 시아버지처럼 친정에 데려다주지도 않는다. 어린 나이에 어른의 뜻에 따라 혼인한 새신랑은 아직 자기 목소리를 낼 힘이 없다. 나름의 통과의식을 마치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어른이 되어 돌아온 방귀며느리는 신랑을 이끌어주며 함께 하게 될까?
며칠 전 꿈에서 대변이 목구멍에서 나와 입 안에 물고 있었다. 공중 화장실에서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줄이 길어서 불쾌함이 지속되고 당혹스러웠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병원에 가봐야 하나 등등의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차례가 와 변기에 뱉었지만, 그 불쾌함은 꿈을 깬 지 며칠 후인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뱉어내지 못한 대변처럼, 내게 뱉어내지 못하고 있는 말과 글이 있다. 이 글도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로 나의 노트장에 오랫동안 있었다. 꿈은 방귀며느리와 같은 이야기를 내게 고함친다. 너의 이야기를 더 이상 물고 있고 참고 있지 말라고. 그래서 이 블로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