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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야생 도마뱀이 나오는데 어쩌죠?

엄밀히 말하면 '도마뱀붙이'입니다

사우디는 집에서 개미가 나온다고 지난 화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개미는 그렇게까지 큰 걱정거리는 아닙니다.


일단 뭘 흘리지 않게 주의를 하면 적극적으로 침투해오지는 않고요, 발견하면 빗자루로 삭삭 쓸어버리면 되니까요. 물론 애들이 물리는 건 조심해야겠죠.


사우디에 살면 종종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의 방문을 받게 되는데요. 바로 이 녀석입니다.

차고 천장에 자주 출몰합니다

처음 이 녀석을 발견한 건 주차장 외벽이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있는데 페인트만 칠해서 새하얀 벽 위에 뭐가 있는 겁니다.


'저게 뭐지?' 가만히 보고 있으니 움직이진 않는데 아무리 봐도 우연히 생긴 얼룩 모양은 아닌 거죠.

이렇게 생겼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도마뱀이네요, 도마뱀! 집에 도마뱀이라고요! 나중에 보니 '게코'라고 하는데요, 우리말로는 '도마뱀붙이'랍니다.


아니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다리 넷 달린 파충류가  주변에 사는데.

매일 어딘가에는 붙어있습니다

사실 저 녀석이 얌전히 차고에만 산다면 정기적으로 먹이를 줄 의향도 있었습니다만, 방귀가 잦으면 X이 나오는 법, 차고, 현관, 외벽 가리지 않고 붙어 있던 녀석은 어느샌가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방 복도와 천장 사이 틈에서 발견

방 안까지 들어온 걸 발견하고는 '그냥 기절했다가 깨어났더니 모르는 사이에 다 해결됐다더라' 하면 좋겠는데 그럴 리가 있나요.


충격과 공포로 두근두근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포획 계획을 세웁니다. 불리 자극했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기라도 하면 이사를 가야 하니까 조심조심.

급조한 포획망

수돗물이 너무 뜨거워질 때를 대비해서 받아둔 비상 샤워수를 부어버리고 12리터 대형 생수통을 잘라서 포획망을 만들었습니다.


저걸 방심하고 있는 게코 위에 덮어 씌운 다음 넓은 종이로 떠서 뒤집으면 깔때기 속으로 쏙 들어가는 작전입니다.

포획 성공

그렇게 포획에 성공한 뒤 살펴본 게코는 손가락이 귀여웠네요. 눈도 귀엽습니다.


하지만 명심해야죠. 저 안에 들어 있으니까 귀여운 겁니다. 어딘지 모르는 이불 틈 같은 곳에 숨어들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도 안 귀엽죠.

사진이 여럿인데 다 같은 녀석이 아닙니다. 이 녀석이 집 안에 들어오는 빈도는 사우디 거주 2년 동안 발견해서 포획 후 놔준 것만 10번은 넘으니까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에 불을 켰는데 번개 같은 속도로 뭔가가 어디선가 움직였는데 지금은 안 보인다.


그럼 현관 신발장부터 뒤집어엎기 시작해야죠. 있는 겁니다.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분명히 있어요. 침대방까지 오기 전에 현관-복도-응접실 레벨에서 차단하면 다행입니다.


물론 항상 차단에 성공하는 건 아니죠. 일주일 이상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집 안 깊숙이 들어와서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숨졌다가 미라가 돼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볼풀 수영장 바닥에 침투했다가 사망

한 번은 한밤 중에 게코를 잡고 다음날 아침에 애들 보여줄 생각으로 바로 놔주지 않고 포획망에 나뭇가지를 넣어줬는데요. 알을 낳았더라고요.

사우디를 떠날 때 즈음해서는 게코가 나와도 놀라지 않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포획망도 쓰지 않게 됐습니다.


신문지를 길게 말아 끝에 접착력이 떨어진 양면테이프를 바르고 젓가락처럼 집어서 화단에 털었네요.


역시 사람은 적응이 동물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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