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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주차난(2)

방심은 붉딱을 부른다

지난번에 뉴욕의 스트리트 파킹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살인적인 주차요금에도 불구하고 맨하탄에서 차량 운전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고마운 제도인데요. 오늘은 스트리트 파킹을 하다가 주정차 지시를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운데 열일하시는 폴리스 오피서가 계시네요

저희 집에서 내다본 길가인데요. 중앙선 바로 옆으로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요, 그 옆에 SUV 있는 곳이 무료 스트리트 파킹 주차 라인입니다. 그 옆으로 보행섬이 있고, 그 옆에 파란 차가 서 있는 줄도 주차 라인이에요. 그 옆에 주차 자리 찾아다니는 차가 지나가는 길이 있고, 그 옆 은색 차가 있는 곳이 또 주차 라인입니다. 그러니까 여긴 차 5대가 동시에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인데 그중 3줄이 주차라인이에요.


이 라인은 주 2회 청소하는 곳입니다.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1시. 청소차는 예고한 시간 중에 언제 지나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지나갔다고 끝이 아니에요.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고된 시간 내내 운전자가 차 안에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통 경찰관이 돌아다니면서 운전자가 있는지 확인을 해요. 그러다가 운전자가 없는 차를 발견하면 살포시 붉딱을 끼우고 갑니다.  

저런, 왼쪽에 있는 차에 붉딱이..

그렇게 차 안에서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백미러 뒤편으로 청소차가 등장하면 그 앞에 있는 차들이 모세가 바다 가르듯 이동을 시작합니다. 멀리 가는 건 아니고 살짝 옆으로 비켜서 청소차 지나갈 길만 터줘요. 이때 멋모르고 멀리 가거나 블록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그새 누군가 차지해 버린 '자기 자리였던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청소차 뒤에는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하이에나 같은 차량이 3~4대씩 줄줄이 따라오거든요.


이렇게 주 2회, 한 번에 2시간씩 운전대를 지키고 있어야 무료 주차가 가능합니다. 길마다 청소하는 요일이 다르다 보니 가끔 자기가 어디에 세웠는지 헷갈릴 때도 있어요. 위에 있는 사진에서 한 줄은 월목, 다른 줄은 화금입니다. 그러니 아차 하면 붉딱입니다. 붉딱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시죠? 


이렇게 생겼습니다. 붉은 딱지. 이걸 제가 왜 갖고 있냐면요, 저도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 참 거 사람 거 참 됐다니까 뭘 이런 걸 다 넣어둬 넣어둬 제발 넣어두세요

여담입니다만 왜 두 장이냐면 아빠 속도 모르는 아들 녀석이 티켓을 보더니 자기도 갖고 싶다고 하여 집에서 파워포인트로 비슷하게 만들어서 뽑아줬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떻게 얻은 기념품인데 홀랑 줘버릴 수는 없잖아요.


봉투를 열어보면 안에 고지서가 들어있습니다.

속지도 똑같이 복제. 아빠의 정성이죠

흰색 토요타 미니밴 차량이 20가의 동쪽 410번 건물 앞에 세웠다가 단속됐네요. 일요일 오전 7시~오후 6시까지 주차가 허용되는 곳입니다. 단속 시점은 2020년 11월 2일 월요일 오전 7시 7분입니다. 벌금은 65달러!


이 딱지를 끊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저희가 주차장 월 정기권을 비싸게 구입해서 전용 주차장이 있을 때였거든요. 갓 돌 지난 딸내미가 있다 보니 매번 2시간씩 운전석을 지키고 있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애가 화장실이라도 간다고 하면 망하는 거죠. 그래서 한 달에 50만원 내는 비교적 저렴한(?) 주차장을 찾아서 쓰고 있었습니다.


기억하기로 전날 저희가 어디 놀러 갔다 왔을 겁니다. 짐이 좀 많았어요. 그런데 마침 집 바로 앞에 스트리트 파킹 자리가 떡하니 있는 거지 뭡니까. 그래서 일단 차를 세우고, 얼른 집에 짐만 올려놓고 차를 주차장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집에 들어가서 그만 깜빡 잊은 거죠. 월요일 아침에 불현듯 생각나서 서둘러 나가 봤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벌금은 바로 냈고 붉딱은 기념품으로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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