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 때부터 먹은 에싸 베이글
저희가 뉴욕에 살 때 큰 애는 만 3살이었고 둘째는 돌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들이 불가피하게 미국 음식에 빨리 노출이 됐지요. 피자나 햄버거, 케이크 같은 건 워낙 짜고 자극적이라 집에서 해 먹였는데 베이글은 그나마 먹일만하더라고요. 둘째는 20개월, 그러니까 만 2살이 되기 전에 뉴욕 베이글 맛을 봤네요.
뉴욕 최고의 베이글은 단언컨대 에싸 베이글입니다. ess-a-bagle이죠. 45가쯤 되는 중심가에 하나 있고 저희 아파트가 있는 18가에도 하나 있었어요. 정말 맛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저는 베이글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그냥 물에 삶은 건강빵이고 대신 맛은 좀 없고 뭐 그런 인식이었죠. 뉴욕에 가서도 비슷했어요. 아무 슈퍼마켓에나 가도 흔하게 쌓아놓고 1달러에 팔고 있는 게 베이글이었습니다. 그래서 크림치즈 맛으로 먹곤 했죠.
그런데 이 에싸 베이글에 가보고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먹었던 건 베이글이 아니라 단지 베이글st, 베이글을 흉내 내다 망쳐버린 빵 비슷한 것일 뿐이었다고요.
온갖 종류의 크림치즈가 진열된 매대에 서면 일단 빵을 물어봅니다. 플레인, 참깨빵, 야채빵 종류도 많죠. 빵을 고르면 그냥 반으로 갈라서 크림치즈를 고르라고 하는데, 이때 빵을 구워달라고 따로 말해야 합니다. 토스트를 해 나온 뉴욕 베이글은 그냥 먹어도 어찌나 바삭하고 촉촉하고 쫀득하고 고소하고 맛있는지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많이 넣어봅니다. 연어도 넣어보고 샌드위치처럼 토마토와 야채도 넣고, 크림치즈도 특별한 걸로 골라보죠. 이것저것 먹어보고 결국 나중에 정착한 저의 종착지는 플레인 베이글에 시나몬 건포도 크림치즈였습니다.
뉴욕 특히 에싸 베이글의 특징은 엄청난 크림치즈 양에 있습니다. 크림치즈를 뻥 하나도 안 보태고 베이글 두께보다 두껍게 바르거든요. 이건 바르는 게 아니라 얹어서 줍니다. 한 입 베어 물면 양옆으로 짜부돼서 다 흘러나올 것 같은 비주얼인데 막상 먹으면 이게 또 빵과 크림치즈의 경도가 잘 어울려서 한 입 잘 베어집니다.
처음에는 크림치즈 맛이 너무 강해서 베이글을 일단 집에 싸 온 다음 크림치즈를 긁어서 통에 덜어내고 먹었어요. 그렇게 해도 엄청 맛이 강하고 좋거든요. 크림치즈는 나중에 트레이더조 같은 데서 플레인 베이글 한 봉지 사다가 집에서 구워서 발라먹는 거죠.
에싸 베이글 맞은편에는 탈 베이글이 있습니다. 에싸 베이글에서 일하던 직원이 나가서 차린 곳이래요. 그래서 그런지 에싸 베이글의 단점 - 매장이 어둡다, 인테리어가 구식이다 -를 완벽하게 커버해 냈죠. 그래도 몇 번 먹어보니 확실히 맛은 에싸만 못하더라고요.
글 쓰면서 사진 찾아보다 보니 또 먹고 싶네요. 베이글 정말 맛있었는데 말이죠. 한국에 와서도 유명한 빵집에 들를 때마다 베이글을 먹어봤는데 그 맛이 안 나와요. 아무래도 추억뽕도 있을 거고 현지뽕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엄청 맛있었습니다. 그립네요.
뉴욕을 떠날 때가 됐을 때 아쉬워서 자주 가던 매장의 굿즈를 하나씩 샀어요. 에싸 베이글에서도 에코백을 내놔서 하나 샀습니다. 그럼 참 예쁘지 않나요? 약해서 장바구니로 쓰기는 어렵겠더라고요. 장식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