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학점 잘 받는 요령
대학교 1학년 1학기 성적 (한 과목 D, 나머지 all F)
대학교 졸업학점 4.2
내 대학교 성적표는 대공황급 폭락 이후 급등의 급등을 거듭하여 황제주식으로 거듭났다. 대학교의 첫 학기를 ‘설렘과 떨림’으로 시작했던 나는 잘못된 연애에 빠져 대학교 한 학기를 통째로 날려먹었다. 그나마 D학점을 받은 한 과목은 하루만 출석해도 D를 주시던 자애로우신? 교수님 덕분이었고 나머지 과목은 아예 출석을 안 했으니 F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첫 학기를 날려먹고 집에 성적표가 날아왔다. 대학생활이 즐거울 것 같다고 설레발치던 아들놈이 똥통 같은 성적표를 받아왔으니 부모님의 심정은 어이가 없다를 넘어 참담한 심정이셨을 터였다.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잘못된 연애도 정리할 겸 나는 대국민 정신교육훈련소 ‘군대’를 택했다. 군대는 10억을 줘도 다시 안 간다고 할 만큼 치가 떨리는 곳이었지만, 정신교육만큼은 훌륭히 받고 나왔다. 인생의 꿈같은 2년을 허비했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빵구난 성적표를 어떻게든 땜질해야 했다.
1학년 2학기 복학생이 된 나는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함께할 동기들을 사귀지 못했다. 1학년 1학기를 통으로 날리고 군에서 2년이란 세월이 흘렀기에 동기들은 다들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전화위복이라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성적표의 땜빵을 메꾸기 위해 나는 무조건 재수강을 해야 했다. 과목이 폐강된 경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F학점을 수강취소로 돌릴 방법은 없었다. 재수강도 해야 했고, 교양 필수과목도 들어야 하니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계절학기는 필수였다.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까지는 계속 재수강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1학년 2학기에 성적이 잘 나와 장학금을 받으니, 돈 받는 맛에 추진력을 받아 계속 공부에 매진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고시생처럼 공부했느냐? 그렇진 않다. 연애도하고 놀러도 다니고 봉사활동 동아리 회장도 하고 과외 알바도 하면서 나름 여유롭게 보냈다. 이렇게 널널한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학점을 잘 맞다 보니 생긴 나름의 요령 덕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학점을 잘 받는 건 성실성보다 요령의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대단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성취한 것을 일반화해서 ‘누구나 나처럼 하면 잘된다!’고 잘난척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학점 잘 받는 요령‘ 같은 것을 글로 써도 되는지 의문이 들긴 한다. 다만 내가 이런 글을 적는 건 오늘 필사한 ’ 동양철학에세이‘를 보면서 도서관에서 시험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라 혼자 낄낄거렸기 때문이며, 내가 얼마나 꼼수로 대학공부를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놓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는 그저 재미로 읽어주시고 진지하게는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 자, 잡설이 길었다. 바로 대학교 학점 잘 받는 요령 알아보도록 하자.
대학교에서는 과목 따라 다르지만 대게 기본서가 있다. 경제학원론은 멘큐의 경제학이 있고, 법학과목은 법학통론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과목공부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기본서 정독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이렇게 기본서의 늪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대학생이 공부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수업 첫 주, 리포트 쓸 때, 중간, 기말고사 기간이 전부인데 과목이 많아지고 할 일이 쌓이면 기본서를 통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 기본서는 수업시간에만 참고용만 보고 다른 책을 봐야 한다.
내가 추천하는 것은 교양서이다. 대부분의 과목들은 훌륭한 분들 덕분에 교양서라는 게 존재한다. 경제학으로 예를 들면 ‘유시민의 경제학카페’가 있을 것이고, 과학으로 예를 들면 ‘정재승의 과학콘서트’가 있을 것이다. 내가 나온 철학과의 동양철학과목을 예로 들면 ‘동양철학 에세이’가 그런 책이다.
교양서 선정의 기준은 짧은 것이 최고다. 아무리 길어도 400p가 넘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짧은 공부시간을 벌충하려고 교양서를 택했기 때문에 읽을 분량도 그만큼 짧아야 한다. 단, 최소한 3 회독은 할 생각으로 교양서를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양서를 읽는 이유가 리포트나 시험에서 쓸 문장을 외우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기본서를 성실히 공부해서 깊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시험의 왕도이겠으나, 우리는 사짜의 쉬운 길을 택한다. 교양서를 통해 엄선된 문장을 내가 쓴 글처럼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즉 문장 바꿔 쓰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교양서 읽기를 하면 기본서는 참고서 용으로 발췌독만 하면 되고, 교수님 강의도 듣기 훨씬 수월해진다. 시험에서 많이 공부한 사람처럼 현학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건 덤이다.
자 이제 무슨 수업을 택해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교수님들께서 수업을 재밌게 해 주시는 경우 대게 점수가 짜다. 왜냐하면 수강생도 많고 그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아져 경쟁이 심할뿐더러, 교수님도 쉽게 설명하시는 만큼 시험 변별력을 위해서 시험을 어렵게 출제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기가 없지만 오래 계셨던 교수님의 강의를 택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수강신청 경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택한 사람들은 학점 경쟁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교수님의 반복된 수업습관을 통해 시험 출제내용을 미리 예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는 교수님이 반복하는 개념에 집중해야 한다. 수업내용을 전부 알아들으려 용쓰기보다는 반복되는 개념이 무엇인지 계속 카운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되는 개념은 시험에 반드시 출제된다. 만약 시험에 출제되지 않더라도 리포트나 시험답안에는 반드시 그 개념을 집어넣어 교수님에게 ‘나는 수업을 잘 듣고 있다.’라고 어필해야 한다. 학생들 시험 채점을 도와주는 대학원생 친구들이 알려주길, 교수님들은 핵심 개념을 잘 알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시험 점수를 잘 받고 싶다면 교수님이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개념을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 7시에는 무조건 갔다. 그래서 7시부터 첫 수업까지 첫 수업용 교양서를 읽다가 잤다. 10시에 첫 수업이면 30분 정도 책을 보다 2시간 반정도 꿀잠을 잤다. 시험기간에는 저녁 9시-10시 정도까지 도서관에 있었는데, 학교식당에서 밥 먹고 7시부터 도서관에 앉아 1시간 정도 책을 보다가 또 2시간 이상 꿀잠을 잤다. 정말이지 민폐의 끝판왕이었다.
그래도 잠은 도서관에서 자는 게 이롭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있다 보면 나도 어느 순간 집중하게 되고, 최소한의 공부시간은 확보하게 되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책과 친해지는 첫걸음이 도서관이다. 수업이 어렵다면 도서관에 관련서적이 있는 곳을 둘러보며 내 수준에 맞는 아주 쉬운 책을 고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만화책 같은 책도 도움이 된다. 나는 프랑스혁명에 대해 이원복선생의 ‘먼 나라 이웃나라’ 만화책으로 공부했다.(물론 교양서에서 시험에 쓸 문장은 따로 암기해놔야 한다.)
리포트는 너무 주제가 다양하고 분량이 제각각이라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관련 논문을 찾아보는 것이 유용하다. 논문을 하나씩 연구하듯이 보면 진 빠지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쉬운 길을 가기로 했으니 논문도 쉽게 본다. 논문은 목차와 요약만 본다. 논문은 전체내용을 한 페이지가량으로 요약한 요약문을 반드시 적게 되어있다. 우리는 여기서 논문저자의 문제의식, 접근방법, 결론만 파악한다. 결론에 이르는 상세한 논의과정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에겐 과유불급일 따름이다.
논문을 베끼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논문의 문제의식과 접근과정을 보고 참고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논문을 여러 편 참고하다 보면 쓸 말이 생긴다. 가령 철학에서 ‘사람이 안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으로 인식론이 시작된다고 볼 때, 논문에는 ‘플라톤은 이랬고, 칸트는 이래서, 현대 비트겐슈타인은 이랬는데 요즘에는 이런 게 문제다.’라는 식으로 적혀있다.
우리는 여기서 리포트에 쓸 주제가 칸트의 인식론이라면 ‘플라톤은 이랬는데 칸트는 이랬다.’에 주목하여 ‘플라톤과 칸트의 인식론적 관점 비교’라는 제목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최근 논문의 문제의식과 접근방식을 통해 과거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교 공부는 연애사업, 자격증취득, 봉사활동 등으로 인해 공부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요령이 절실히 필요하다.
요령을 요약하자면, 기본서가 아닌 교양서로 기본기를 닦고, 수업을 선택할 때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을 택해서 교수님이 반복하는 개념을 잘 암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리포트는 관련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좋으며 수업에
필요한 쉬운 책을 고르기 위해 도서관과 친해지는 것이 좋다.
대학교는 공부만 하러 다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배우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졸업학점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우 중요한 점수는 아니다. 다만 대학교 이후에도 다른 곳에서 더 공부하고 싶다거나, 연구를 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학점관리도 잘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우직하고 성실함이 최고의 미덕이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약간의 요령을 부린다는 것이 큰 죄는 아닐 것이다. 약간의 요령으로 시간을 벌어 좋은 경험에 쓴다면 인생을 더 다채롭게 살아갈 스 있을 것이다. 사짜로 학점을 따더라도 진짜로 인생을 살면 그만 아니겠는가?